사랑과 이별

뱅크(정시로), <가질 수 없는 너>

국어의 시작과 끝 2007. 8. 5. 13:21
 

뱅크, <가질 수 없는 너> 

 

술에 취한 니 목소리

문득 생각났다던 그말

슬픈 예감 가누면서

네게로 달려갔던 날 그 밤


희미한 두 눈으로

날 반기며 넌 말했지.

헤어진 그를 위해서

남아있는 네 삶도 버릴 수 있다고.


며칠 사이 야윈 널 달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마지막까지도 하지 못한 말

혼자서 되뇌였었지.


사랑한다는 마음으로도

가질 수 없는 사랑이 있어

나를 봐 이렇게 곁에 있어도

널 갖지 못하잖아.


눈물 섞인 네 목소리

내가 필요하다던 그 말.

그것으로 족한 거지.

나 하나 힘이 된다면 네게.


붉어진 두 눈으로

나를 보며 넌 물었지.

사랑의 다른 이름은

아픔이라는 것을 알고 있느냐고.


며칠 사이 야윈 널 달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마지막 까지도 하지 못한 말

혼자서 되뇌였었지.


사랑한다는 마음으로도

가질 수 없는 사랑이 있어

나를 봐 이렇게 곁에 있어도

널 갖지 못하잖아.

 

공교로움에 대하여

시가 사람을 궁핍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궁핍한 이의 시가 마침내 공교로운 법이네(非詩能窮人 窮者乃詩工). 소동파가 구양수로부터 들은 말이라면서, 공감을 표하고 있는 시구이다. 시가 원래 풍요나 사치와 친하기보다, 궁핍(窮乏)이나 한()과 친한 것이니, 이해하기 그리 어렵지 않다. 다만 공교롭다는 표현이 좀 까다롭다. 그냥 좋다(=)’고 해도 될 텐데, 굳이 공교롭다고 한 까닭이 뭘까? 궁핍한 이들의 시정(詩情)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연찮게도 아름답게 된다는 뜻이 아닐까? ‘마침내()’가 바로 그 뜻 아니겠는가? 청산유수처럼 술술 흘러나오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더듬거리는 듯 터져 나오는 아름다움 말이다.

대중가요도 사정은 비슷하다. 항용 대중가요는 아름다운 사랑보다 아름다운 상처를 노래한다. 대중가요는 다 아는 것처럼 이별과 마음속의 상처 또는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과 아픔과 친하다. 현대인은 현실적으로는 풍요와 쾌락을 추구하지만, 내면적으로는 궁핍과 아픔을 원한다. 일견 모순처럼 보이지만, 외적으로는 화려해 보이는 방탕함을 즐기더라도, 실존적으로는 물질문명으로 야기된 타락으로부터 멀리하고자 하는 인간 본성이 그렇지 않겠는가?

또 이것이 현대인만의 특성이겠는가? 시대를 초월하여 그렇지 않았겠는가? 다만 아쉬운 것은 둘을 함께 가지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크게 아쉬워 할 것은 없다. 꽃이 아름다운 초목은 열매가 실하지 않은 법이며, 열매가 실한 초목은 꽃이 아름답지 못한 법이다. 사과처럼 실한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장미, 부자연스럽지 그렇지 않은가? 둘을 동시에 얻고자 하는 것은, 날개와 지느러미를 동시에 갖고자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욕심일 뿐이다.

적절한 유추인지 모르겠으되, 사랑과 우정이 그렇지 않을까? 물론 우정이 사랑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많다. 행복한 경우이겠으나, 그래서는 우정 또는 사랑 자체의 극진한 아름다움은 빛을 발하지 못한다. ‘뱅크(정시로)’<가질 수 없는 너>가 그렇지 않은가? “사랑한다는 마음으로도/가질 수 없는 사랑이 있어/나를 봐 이렇게 곁에 있어도/널 갖지 못하잖아.” 제목도 그렇거니와 이 노래의 주제는 ‘(사랑한다는 마음으로도, 곁에 있으면서도) 가질 수 없는 너에 대한 아픈 사랑을 노래한 것으로 보인다. 분명히 그렇다. 그렇다면 이 노래 역시 아픈 사랑의 노래일 뿐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 노래의 아름다움은 다른 곳에 있다. “눈물 섞인 네 목소리/내가 필요하다던 그 말./그것으로 족한 거지./나 하나 힘이 된다면 네게.” 내가 필요하다는 그 말, 그게 도대체 무엇인가? (내가 원하는) 사랑은 아닐 테고. ‘우정(友情)’과 비슷한 그 무엇이 아니겠는가? 그녀는 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내가 힘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가 사랑하는 것은 이다. 에고, 이를 어쩐단 말인가? 진정한 사랑의 아픔은 바로 이런 안타까운 상황,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 야기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지만. 하지만, 이 노래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바로 이 지점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은 그 사연이 슬프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말 못함, 가슴앓이에 있다. “며칠 사이 야윈 널 달래고,/집으로 돌아오면서/마지막 까지도 하지 못한 말/혼자서 되뇌었지.” 도대체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정말 어찌해볼 수 없는 답답한 상황이 마지막까지도 말을 하지 못하게 한다. 혼자 되뇌게 할 뿐이다. 꾹꾹 참는다. ‘사랑한다는 마음으로도/가질 수 없는 사랑이 있어라고 차마 말할 수 없다. ? 도대체 왜? 이미 그녀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다른 이름은/아픔이라는 것을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다시 그것을 확인시켜 주는 일은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하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그녀에게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오는 길. “며칠 사이 야윈 널 달래고/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깨 너머로 넘쳐흐르는 서러움에 몸을 가눌 수가 없다. 야윈 그녀의 볼을 생각하면 더 서럽다. 곁에 있으면서도 우정을 넘어선 그 이상의 힘이 되어 줄 수 없는 내가 못났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을 는 줄 수 없다. 너에게 필요한 것은 '달래는 말'이 아닌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곁에 있으면서도 나는 널 갖지아니 너같이못한다.(왜일까? 자꾸 '널 갖지''너같이'로 들린다. 난 너같이 드러내 놓고 사랑도 못한다는 뜻일까?) 그리고 마침내[]’, ‘마침내[]’. 터져버린다. 슬픈 예감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닌데, 서럽고 슬프다. 엇나가버린 사랑이 슬프다. 그리고 되뇌게 된다. 입 밖으로도 내뱉지 못하고 홀로 되뇔 뿐이다. “사랑한다는 마음으로도/가질 수 없는 사랑이 있다고.

-‘마침내 공교로운 아름다움은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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