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이별

김정수, <내 마음 당신 곁으로>

국어의 시작과 끝 2007. 8. 1. 02:01
 

김정수, <내 마음 당신 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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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빛나던 눈동자 위에

흐르는 한 줄기 눈물 때문에

이 마음 차가운 바람 불어와

떨어진 낙엽이 되었네.


잊으려, 잊으려 애를 써 봐도

당신의 따뜻한 미소 때문에

이 마음 영원히 함께 타오를

사랑의 촛불이 되었네.


바람 불어와 내 몸이 날려도

당신 곁에선 외로운 내 마음

모든 것이 다 지나가 버려도

내 마음은 당신 곁으로


당신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수많은 미련이 나를 찾지만

이제는 영원히 잡을 수 없는

지나간 추억이 되었네.


바람 불어와 내 몸이 날려도

당신 곁에선 외로운 내 마음

모든 것이 다 지나가 버려도

내 마음은 당신 곁으로.


중절모의 가수, <당신>이라는 트로트로도 큰 인기를 얻었던 가수, 김정수의 노래이다. 이 노래가 처음 발표된 것은 70년대 말이다. 그 이후 조용필, 민해경 등이 리메이크해서 불렀다. 요즘 뜸하게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민해경은 자신의 히트곡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 당신 곁으로>를 빼놓지 않는다. 그녀의 음악적 성향과 잘 어울리는 노래가 아닌가 싶다. 조용필 버전은 기억하는 사람이 좀 적다. 그런데 조용필이 워낙 많은 히트곡을 냈기 때문에, 조용필이 먼저 부르고, 김정수가 리메이크한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사실 이 노래는 흥겨운 리듬이 인상적이다. 그래서 노랫말이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후렴구에 해당하는 “바람 불어와 내 몸이 날려도/당신 곁에선 외로운 내 마음/모든 것이 다 지나가 버려도/내 마음은 당신 곁으로”가 얼마나 멋지냐고 반문할 지도 모른다. 전적으로 동감이다. ‘내 마음은 당신 곁으로’라는 구절만큼 연정을 노래하는 대중가요의 가사로서 쉽고도 묘미 있는 표현은 의외로 찾기 힘들다. 생각해 보면 금방 떠오를 만한 노랫말인데, 이런 표현이 왜 금방 떠오르지 않는지 의문일 따름이다.


노랫말이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고 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사실 노랫말을 한 구절, 한 구절은 떼놓고 보면 쉬운데, 구조화하여 읽어보면 간단치 않다는 것이다. 그 전체적인 구조 말하자면, 이야기 구조를 주목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말이다. 먼저 첫 부분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당신의 빛나는 눈동자에 눈물이 흘렀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이 마음은 차가운 바람에 떨어진 낙엽이 되었다고 했다. 이별을 했다는 뜻이고, 외로운 처지가 되었다는 뜻이니 찬찬히 따져보고 말 것도 없다. ‘낙엽’이라는 비유도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 다음은 좀 어렵다. 잊으려고 애를 써 봐도 못 잊겠다고 했다. 그 이유는 당신의 따뜻한 미소 때문이란다. 여기까지는 어렵지 않다. 그런데 잊지 못해서, 마음이 사랑의 촛불이 되었다고 한다. 이게 무슨 뜻인가? 우선 ‘촛불’은 ‘낙엽’과 대비되는 이미지일 가능성이 높다. 낙엽이 하강 이미지의 대표적 소재라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된다. ‘떨어진 낙엽’이라고 했는데, 사실 ‘떨어진’은 잉여적 표현이다. 그렇다면 촛불은 상승 이미지의 소재인가? 그렇게 볼 여지가 많다. ‘타오르다’는 단어가 그 증거가 아니겠는가? ‘타다’와 ‘오르다’의 합성어가 ‘타오르다’이니까 말이다.


이 때 상승이란 무엇인가? 대체로 상승이란 인간적인 영역에서 신적인 영역으로, 육체적인 영역에서 혼의 영역으로 상승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고체가 액체의 상태를 지나 기체의 상태로 변형되는 과정이 곧 상승의 과정이며, 그것은 곧 상승의 상상력의 과정이다. 그리고 그 상승의 상상력이 펼치는 드라마가 바로 ‘바람 불어와-’로 시작되는 노랫말 부분이다. 바로 이 관점에서 그 구절을 찬찬히 살펴보자. 의외로 흥미진진한 드라마가 전개될 것이다.


먼저 바람 불어와 내 몸이 날린다고 했다. 이 구절은 월명사의 <제망매가>를 떠올리게 하고, 박제천의 <월명(月明)>을 떠올리게 한다.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같은 나뭇가지에 나고서도 가는 곳을 모르겠구나.” 그렇다. 육신이 그 생을 다하고 저승에 이르는 것을 월명사는 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에 비유한 바 있다. 한편, 박제천의 <월명>에서도 나뭇잎의 떨어짐과 인간의 죽음이 같다는 등식은 여전하다.


그렇다면 바람에 내 몸이 날리는 것은 육신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일까? 육신은 날아가 버리고 혼만 남는다는 뜻이니, 그렇게 보는 것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낙엽이 되고, 촛불이 되고(그렇다, 촛불이 타오르는 것이 아니라, 낙엽이 제 몸을 사르는 것이다), 다시 공기(=바람)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건대, 바람이 쓸어가 버리는 것은 나의 육신만이 아니다. 모든 것이 다 지나가 버리는 것이다. 이 점에서 바람의 시간의 다른 이름이라고 봐야 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흩어지게 해버리는 존재는 시간 말고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시 당신 곁에선 외로운 내 마음은 뭔가? 그것은 ‘내 마음은 당신 곁으로’와 동의적 표현일 뿐이라는 것이 정답 아니겠는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허무 속에 빠뜨려 버리는 시간마저도, 당신을 향한 내 마음(=사랑)만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희정 wizbook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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