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아, <눈물>
이럴 줄은 몰랐어. 사랑을 느꼈어.
떠난다는 그 말에.
나 울어 버린거야.
내겐 그런 슬픈 일이 없을 줄 알았었는데.
우리 처음 만난 날 기억하고 있어.
널 닮아 버린 모습도 그 무슨 소용 있니.
이제 너를 본다는 건
욕심이 되버린거야
울었어.
눈물을 참지 못해 울었어.
부은 눈을 감고
잠이 들었어.
미칠 것만 같았어.
하늘도 울고 말았어.
이런 게
이별인줄 몰랐던 거야
혼자 남아 버렸어.
믿을 수 없었어.
세상이 날 버리고 모두 날 버린거야.
나는 지쳐만 가는데 이젠 어떻게 살라고
울었어. 눈물을 참지 못해 울었어.
부은 눈을 감고 잠이 들었어.
미칠 것만 같았어.
하늘도 울고 말았어.
이런 게 이별인줄 몰랐던 거야.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러고도 남은 시간은 침묵할 것. 강은교 시인이 제시하는 사랑법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이별을 고할 때에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라고 한다.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이 영면(永眠)하는 때에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라고 한다. 인내와 침묵 속에서 발견하는 큰 사랑을 말하는 것일 터이다. 사랑 나아가서는 죽음마저도 뛰어넘는 숭고한 가치를 염두에 둘 때에나 가능한 상상력이다.
하지만, 범인(凡人)으로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랑법이다. 하물며 이제 막 사랑을 알게 된 묘령(妙齡)의 여인에게 그것을 기대하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스무 살 안팎의 여인이 겪는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리아의 <눈물>이 그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사랑을 느꼈는데, 임은 떠나고 혼자 남아 버렸고, 내겐 그런 슬픈 일이 없을 줄 알았기에 믿을 수 없었으며, 그래서 울어 버린다. 세상이 날 버린 것 같고, 모두가 날 버린 것 같고, 미칠 것만 같다. 이게 보통 사람의 사랑법이다.
일견 평범해 보이는 이 노래에 주목하게 된 것은 두 가지 때문이다. 첫째, 리아(김재원)의 인상과 노랫말이 잘 어울리지 않는다. 군인을 연상하게 하는 머리, 박박 밀고 다니는 그녀라면, 김현정의 <되돌아온 이별>과 같은 노래가 어울린다는 느낌이다. “너만을 사랑했는데, 네가 말해 온 사랑이란 게 다 이런 거니? 변명은 하지 마, 이건 나 아닌 누구도 이해 못해. 용서를 바라지 마!” 정도가 그녀의 인상과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뿐일까? ‘떠난다는 그 말에 난 울어 버린거야’와는 썩 태도가 다르기에 하는 말이다.
<되돌아온 이별>과 <눈물>이 모두 감정을 노래한 것이긴 하되, <되돌아온 이별>이 어느 정도 이성적인 판단이 가미된 것이라면, <눈물>은 감정 그 자체에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이러한 분류는 상당히 주관적이지만,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을 법도 하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해 보는 것이다. 어느 것이 진짜일까? 이별의 상황에서 둘 다 가능한 반응이긴 하지만, 후자가 더 진정성을 갖는 것이 아닐까? 리아를 곁에서 보면, 외면적인 인상과는 달리 보통 여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겉모습과 달리 속마음은 음전(말이나 행동이 곱고 우아함. 또는 얌전하고 점잖음)해 보인다는 말이다. 물론 이 역시 인상에 근거한 판단일 뿐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보면 그녀와 썩 잘 어울리는 노랫말이었던 셈이다.
두 번째는 이 노래의 제목과 관련된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 노래의 “미칠 것만 같았어. 하늘도 울고 말았어” 하는 부분을 기억할 것으로 생각한다. 리아의 가창력이 돋보이는 곳이 바로 그 부분이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검색할 때 약간 고생하게 된다. <눈물>이라는 제목이 언뜻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 부분만을 놓고 본다면, <이별인 줄 몰랐던 거야> 정도가 제목으로 적당하지 않나 싶다. 아니면 <난 울어 버린 거야>도 좋고, 특히 ‘-거야’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어서 더욱 그렇다. 아마 그랬으면 검색이 좀 더 용이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제목을 너무나 평범해 보이는 <눈물>로 했을까? “울었어, 눈물을 참지 못해 울었어.”에 그 의문을 해결할 단서가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통상적으로 눈물이 먼저일까? 울음이 먼저일까? 뭐, 그리 사소한 문제를 놓고 심각하게 따지냐고? 결코 그렇지 않다. 사소하다고 여겨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아주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낳기도 하는 법이다. 예컨대, 안견의 일화가 그러한 예이다. 옛날 정말 훌륭하다는 평을 받는 그림이 하나 있었다. 큰 소나무를 아래서 한 사람이 쳐다보는 그림이었다. 사람들은 너무나 실감나는 그림이라고 칭찬했다. 그러나 안견이 말했다. 사람이 고개를 들어 높은 곳을 쳐다보면 자연스럽게 목 뒤에 주름이 잡히는데, 이 그림에는 그것이 없어서 진짜가 아니다. 이처럼 진짜와 가짜는 아주 작고 사소한 데에서 갈라진다.
다시 노래로 돌아가자. 리아는 눈물을 참지 못해 울었다고 했다. 울음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린 것이 아니다. 먼저 울고 눈물을 흘리는 것은 약간은 상황적 판단이 가미되게 된 결과이다. 하지만 눈물을 참지 못해 우는 것은 꼭 그렇지 않다. 우는 것 자체가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 둘의 차이는 이별이 있고 슬픔이 있는 것과 슬픔이 있고 그 안에 이별이 있는 것에 있다. 이별이라는 객관적 상황을 노래한 것이 아니고, 울고 있는 심적인 상황을 노래한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기에 내가 미칠 것 같아 우는 것과 동시에 하늘도 울어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이별>이 아닌 <눈물>이 제목이 까닭이 아닐까? 이렇게 설명해 보아도 모두가 다 동의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하희정 wizbook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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