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이별

강인원, <매일 그대와>

국어의 시작과 끝 2007. 9. 16. 23:34
 

강인원 < 매일 그대와>

 

12387

 

 

매일 그대와 아침햇살 받으며
매일 그대와 눈을 뜨고파
매일 그대와 도란도란 둘이서
매일 그대와 얘기 하고파

새벽비 내리는 거리도 저녁노을 불타는 하늘도
우리를 둘러싼 모든걸 같이 나누고파

매일 그대와 밤의 품에 안겨
매일 그대와 잠이 들고파

새벽비 내리는 거리도 저녁노을 불타는 하늘도
우리를 둘러싼 모든걸 같이 나누고파

매일 그대와 아침햇살 받으며
매일 그대와 눈을 뜨고파
매일 그대와 잠이 들고파
매일 그대와 얘기 하고파
우~ 매일 그대와 매일 그대와


‘늦었으니 얼른 자라’는 어머니의 호통을 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이불 덮고 누워도 잠은 안 오고, 머리는 더 말똥말똥해지고. 혼날까 봐, 자는 척하고, 그런 유년의 경험이 누구에겐 들 없으랴.


어둠이 깊어지면 사람들은 잠을 잔다. 하지만 사람은 밤잠만 자는 것이 아니다. 자는 시기에 따라 낮잠, 초저녁잠, 아침잠, 늦잠이 있다. 그 뿐인가? 잠의 종류는 많다. 단잠, 선잠, 새우잠, 노루잠, 토끼잠, 개잠, 꾀잠, 등걸잠, 나비잠 등도 있다. 삶에서 잠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사람들 역시 잠에 꽤나 신경을 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나열한 단어들을 보면 잠과 동물을 연결시킨 말이 많음을 알 수 있다. 대부분 자는 모습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런데 잠과 가장 잘 어울리는 동물은 아무래도 누에가 아닌가 싶다. ‘잠’의 어원이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어쩐지 ‘잠’이라는 말과 ‘잠(蠶)’이라는 한자가 연관이 있을 성 싶기도 하다.


또 인간 생활의 기본 단위랄 수 있는 가족도 실은 같은 집에서 자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할 수 없을까? 매일 같은 공간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강인원의 <매일 그대와>도 사랑 노래이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잠의 노래이다. 돌아갈 것도 없이 매일 그대와 아침 햇살 받으며 그대와 눈을 뜨고 싶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같이 자고 싶다는 것이다. 같이 잠을 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남녀 간의 동숙이니 야릇한 상상을 하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하지만 좀 더 젊잖게 표현한다면 하루하루의 시작과 끝을 같이 한다는 뜻이 된다.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요, 잠자리에 드는 것이 하루의 끝이랄 수 있기 때문이다. 시종을 같이 한다는 것은 고락을 같이 한다는 뜻도 된다.


이 노래에서는 ‘잠이 들고파’를 세 번 반복하고 있다. 단순히 강조를 위한 반복일 수 없다. 뭔가 깊은 속뜻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첫 번째 잠은 사랑의 잠이다. 남녀 간의 동숙이니만치 육체적인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밤의 품에 안겨 매일 그대와 잠이 들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밤의 품’은 한갓 은유일 뿐, 실은 그녀의 품에 안겨 자고 싶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두 번째 잠은 뭘까?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을 같이 나누고 싶다고 했다. 일상(日常)을 공유하겠다는 뜻이겠다. 이것은 둘이 하나가 되었음을 의미하는데,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둘이 하나가 됨에 의해 동일한 환경에 놓이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단위가 되지 않고는 그들을 둘러싼 환경이 동일한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나의 문제는 나만의 문제가 아니고 동시에 너의 문제도 되는 것이다.


마지막 잠은 무엇일까? 사실 이에 대응되는 구절은 명시적으로 제시되고 있지 않다. 생각해보라,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공유할 수 있는 잠이 무엇이겠는가?  ‘잠이 들다’가 영면(永眠) 즉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답이 분명해지지 않는가? 그는 죽음을 더 정확히 말하면 이승의 삶이 아닌 저승의 삶도 공유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저녁노을 불타는 하늘’을 같이 나누고 싶다는 구절이 의미심장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다분히 불교에서 말하는 서방정토(西方淨土)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면, 이 노래는 남녀 간의 잠이라는 문제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현대인에게 그 나름의 가르침을 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남녀 간의 잠을 쾌락, 부귀영화, 권력을 얻는 수단  쯤으로 쉽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너무나 현세적이다. 서방정토에서나 얻을 수 있는 것을 이승에서 취하려고 하면, 삶은 망가진다.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종의 거래일뿐이다. 예나 지금이나 거래는 경제의 영역이지 사랑의 영역이 아니다. 거래에 사랑이 개입되면 계산이 흐려지고, 사랑에 거래가 개입되면 추해진다.

 

 

'사랑과 이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널 사랑하니까, 너는 내 여자니까  (0) 2011.03.17
이별 그리고 재회  (0) 2011.03.17
리아, <눈물>  (0) 2007.08.07
뱅크(정시로), <가질 수 없는 너>  (0) 2007.08.05
김정수, <내 마음 당신 곁으로>  (0) 2007.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