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

빛과 소금, <샴푸의 요정>

국어의 시작과 끝 2007. 7. 29. 16:31
 

빛과 소금, <샴푸의 요정>


네모난 화면에

살며시 다가와

은빛의 환상 심어준

그녀는 나만의 요정.


이른 아침

안개처럼 내게로 다가와

너울거리는 긴 머리

부드러운 미소로

속삭이네.


그녀만 보면 외롭지 않아.

슬픔 마음도 멀리 사라져.

그녀는 나의

샴푸의 요정.

이제는 너를 사랑할거야.


멀리서 나 홀로 바라보던

그녀는 언제나 나의 꿈.

 

11033

 

 

1980년 후반 문화예술계에는 포스트모더니즘이 화두였다. 현대시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의 유하나, <햄버거에 대한 명상>의 장정일도 같은 맥락에서 주목을 받는다. 자연 친화적이라는 의미에서 농경 사회적인 시적 전통이 지배적 위상을 잃기 시작한 시점이 그쯤일 것이다. 이전 세대와는 썩 다른 성장 배경을 갖는 신세대가 사회의 주류로 진입하기 시작한 것. 한 마디로 그들을 키운 건 8할이 텔레비전이었다. 영상세대, 나아가서 디지털 세대가 등장하고, 그들의 취향에 어울리는 대중문화 상품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장정일의 <샴푸의 요정>과 모티브가 유사한 ‘빛과 소금’의 <샴푸의 요정>은 그 대표적인 사례가 아닌가 싶다. “네모난 화면에 살며시 다가와 은빛 환상을 심어준 그녀는 나만의 요정”이라고 했다. ‘네모난 화면’이 텔레비전이라는 것, ‘그녀’가 샴푸를 선전하는 광고 모델(=탤런트)이라는 것, ‘은빛 환상’이 브라운관이 만들어준 환상이라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다. 장정일의 시에 등장하는 샴푸의 요정은 이렇다. “미용주식회사가 있다. 아시아 굴지의/미용주식회사가 있다. 그리고/우리들에겐 요정이 있다. 현존하는 유일한 요정/매일 저녁 여덟시 반, 티브이 화면을 찢으며/우리 곁에 날아오는 샴푸의 요정. 그녀는 15초 동안 지껄이고/캄캄한 화면 뒤로 사라진다.”


둘의 공통점은 인공(人工)의 요정을 진짜 요정과 동등한 반열에 올려놓는다는 점에 있다. 우선 요정(妖精)이란 무엇인가? 정령(精靈)의 일종이 아닌가? 자연에 깃들어 있는 영적인 존재 일반을 보통 정령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크게 요정(妖精)과 요괴(妖怪)로 구분된다. 통상 착하고 작은 것은 요정이고, 해악을 끼치고 거대한 것은 요괴라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텔레비전 속의 샴푸 모델은 요정인가 요괴인가? 상품 소비를 긍정적인 것으로 보느냐 부정적인 것으로 보느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진다. 전자에게는 요정이겠지만, 후자의 입장에 서면 요괴가 된다. 전자의 입장에서는 소비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대상이지만, 후자의 입장에서는 (이윤 창출이라는 숨은 의도를 숨긴 채) 소비 욕구를 부추기는 여우(女優), 아니 여우(=狐)일 뿐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넉넉해진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젊은이들에게 샴프 모델은 요정이다. 그들에게는 이미 조금 더 가진 것과 덜 가진 것의 차이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빛과 소금이 노래하는 샴프의 요정과 장정일이 보여주는 샴푸의 요정은 조금 차이가 있다. 먼저 장정일의 경우 샴푸의 요정이 본래부터 착하고 귀엽기만 한 것이 아니었던 듯싶다. ‘아시아 굴지의 미용주식회사’가 만들어낸 요정이라는 점을 표 나게 드러내고 있음이 그 증거. 자본주의의 산물임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장정일은 “그녀는 15초 동안 지껄이고/캄캄한 화면 뒤로 사라진다.”라고 했지만, 15초 동안 ‘지껄이는’ 것이 아니라, ‘속삭인다’고 수정되어야 한다. 적어도 요괴가 아닌 요정이라면.


'빛과 소금'의 노래에는 요괴로서의 흔적이 없다. 시와 대중가요의 차이일 뿐이라고? 물론 그렇다. 문자와 노래의 차이는 원래 그렇게 큰 것이다. 문자의 세계에서는 비판적 성찰이 불가피하지만, 노래의 세계에서는 공감과 동조가 기본이니까. 그렇지 않은가?  비판적 성찰이 노래에 끼어들면, 대개는 어색해진다.


이러한 차이는 노랫말을 문자로, 그러니까 시의 형태로 옮기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고민을 초래한다. 제2연에 해당하는 부분이 바로 그것. ‘이런 아침 안개처럼 내게로 다가와’로 해야 하는가, ‘이른 아침/안개처럼 내게 다가와’로 해야 하는가를 두고 한참 고민했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아니다, 그것은 정말 다르다.


전자의 경우에는 그냥 ‘아침 안개’가 되면서, ‘아침 안개’는 ‘샴푸의 요정’과 은유의 관계를 맺는다. 사실 묘한 상상을 하게는 부분이 되고 만다. 아침에 솟는 힘을 어제 저녁 잠들기 전에 본 텔레비전 속의 요정과 함께 탕진(?)한다는 뜻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자에 있어서는 ‘안개처럼’은 ‘내게로 다가오’는 모습을 직유적으로 표현한 것이 된다. ‘아침 안개’가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아침에 요정이 안개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묘한 상상의 근거는 많이 사라져 버린다. 아침에 습관처럼 또 텔레비전 앞에 선다는 정도일 뿐이기 때문이다.


앞의 것은 원관념(=주지)과 보조관념(=매체)을 동일시하는 은유(隱喩)의 세계이고, 뒤의 것은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유사성만을 인정하는 직유(直喩)의 세계이다. 그리고 둘의 차이는 분명한 것이다. 노래의 세계는 동일성의 세계일 수 있었지만, 문자의 세계에서는 유사성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 이것이 ‘빛과 소금’과 ‘장정일’의 차이인 것이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느 쪽인가? 샴프의 요정이 막바로 요정인가?, 그럴싸하게 흉내 낸 허상일 뿐인가?


하희정 wizbokk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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