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주니어, <로꾸거>
로꾸거 로꾸거 로꾸거 말해말
로꾸거 로꾸거 로꾸거 말해말
아 많다 많다 많다 많아
다 이쁜 이쁜 이쁜이다
여보게 저기 저게보여
여보 안경 안보여
통술집 술통 소주 만병만 주소
다 이신전심이다 뽀뽀뽀
아 좋다좋아 수박이 박수
다시 합창합시다
로꾸거 로꾸거 로꾸거 말해말
로꾸거 로꾸거 로꾸거 말해말
니 가는데는 가니 일요일 스위스
수리수리수 몰랑몰랑몰
아 좋다좋아 수박이 박수
우리 집 거실에는 여느 집처럼 서예 작품이 하나 걸려 있다. 그리 멀지 않은 일가(一家)이신 장전(長田) 하남호(河南鎬) 선생께서 몇 년 전 보내주신 것이다. ‘시중화화중시(詩中畵畵中詩)’ 내가 시(詩)를 전공하는 것을 감안한 것일까? 자네가 하는 시와 내가 하는 그림이 일맥상통(一脈相通)하는 일이라는 뜻이 아닐까? 표구를 맡기러 간 길에 주인인 젊은 서예가에게 넌지시 작품이 어떠냐고 물었다. 정말 몰라서 묻느냐는 투로 ‘국내 서예 최정상급 대가의 작품을 감히 평하겠느냐’란다. 그래도 서예에 문외한(門外漢)인지라 제대로 평가할 수가 없다. 다만 그냥 보아도 예사 글씨가 아닌 것만 알겠다. (*참고로 ‘보해소주’의 '보해(寶海)'라는 글씨가 바로 장전 선생의 작품이다.)
내용인 즉,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는 뜻이다. 중국의 시인 소동파가 왕유의 시와 그림을 두고 한 말로 알고 있다. 한시(漢詩)와 동양화의 기본 이론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사의전신(寫意傳神) 입상진의(立象盡意), 화가는 말로 뜻을 전할 수 없으니 경물로 말을 해야 한다. 시(詩)도 마찬가지이다. 감정을 그대로 노출하는데 그치면 넋두리가 되고 만다. 감정을 노래하되, 경물에 투영시켜 노래하는데서 시의 묘미가 산다. '객관적 상관물'이라는 개념으로 더 잘 알려진 서구의 이미지즘 시론이 바로 여기에서 연유한 것이다.
원래 이 구절은 시중유화 화중유시(詩中有畵 畵中有詩)인데, 줄여서 시중화화중시(詩中畵畵中詩)로 표현한 것이다. 줄여놓고 보니 보는 맛만 아니라 읽는 맛도 난다. 좌(左)로 읽으나 우(右)로 읽으나 소리가 같고 의미가 통한다. 사실 이러한 작시법은 한시에도 상당수 있다. 청나라 때 북경의 ‘천연거’라는 술집을 두고 노래한 ‘객상천연거(客上天然居) 거연천상객(居然天上客)’도 그렇다. 우리말로 풀면 ‘객이 천연거에 올라가더니 느긋이 천상의 나그네가 되었네’ 정도 되겠다. 뜻도 뜻이지만,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슈퍼쥬니어의 <로꾸거>가 바로 이런 재미를 추구한 노래이다. ‘아 많다 많다 많다 많아/다 이쁜 이쁜 이쁜이다’는 앞으로 불러도 거꾸로 읽어도 뜻하는 바가 같고 소리도 같다. 발상이 참으로 기발한데, 알고 보면 수천 년의 전통인 회문체를 이어받은 것이 되는 셈이다. 근본적으로 재미를 추구하는 노랫말이겠으나, 이러한 시도는 그 자체로 의의가 적지 않다는 생각이다. ‘장가간 가장 시집간 집시/다 된 장국 청국장된다’ 정도에 이르면 웃지 않고는 배기기가 어렵다.
이러한 시를 두고 희작시(戱作詩)라고 하거니와, 희가사(戱歌詞)라 하면 좋을 듯하다. 그런대 희작시가 큰 의의를 가지려면 파격성과 해학성 못지않게 민중성을 지녀야 한다. 파격성과 해학성에만 치우치면, 말 그대로 언어유희(言語遊戱)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중성의 핵심이랄 수 있는 풍자(諷刺)의 미학이 덧붙여져야만 알찬 희작시가 된다는 말이다. 흔히 김삿갓의 시라고 알려져 있는(혹은 잘못 알려져 있는) 한시들이 그런 예가 아닐까? 예컨대, 시비비시시비비(是非非是是非非) 시시비비시시비(是是非非是是非)는 읽는 재미와 함께 뜻도 살렸다. ‘그른 것을 옳다 하고 옳은 것을 그르다함이 그름이 아닐진대,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이 시비로구나 정도로 해석된다. 옳은 것과 그른 것을 분별하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풍자와 야유가 깃들어 있음은 물론이다.
사실 대중가요에 그러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김광석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로 알려진 양병집의 <역(逆)>(=거꾸로)이 그런 예가 아닐까? 물론 이 노래는 밥 딜런의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를 개사한 것이다.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네 바퀴로 가는 자전거/물속으로 나는 비행기 하늘로 나는 돛단배/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위로/오늘도 애드벌룬 떠있건만/포수에게 잡혀온 잉어만이 한숨을 내 쉰다” 포수가 노루를 잡는 것이 아니라, 물속의 잉어를 잡는다. 그물을 써야 할 때, 총을 쓰는 격이다.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이 도둑은 잡지 않고, 생사람 잡는 것이나, 나라를 지켜야할 군인이 민간인 잡는 것을 암유한 것으로 봐도 되지 않겠는가? 직설적으로 노래할 수 없어, 비꼬아 노래한 것이다.
이 점에서 양병집의 <거꾸로>를 직설적으로 바꿔 부른 것이 이정현의 <바꿔>가 아닐까? 모두가 제 정신이 아니고, 모든 것이 제 상태가 아니니 모든 걸 다 바꾸라고 노래하고 있지 않은가? 이를 두고 거창하게 전복(顚覆)의 미학이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 세상이 많이 좋아져서 그렇게 직설적으로 노래해도 별 탈이 없다. 그렇다면 슈퍼쥬니어의 <로꾸거>가 인기를 얻는 이유는 뭘까? 사람들의 마음속에 여전히 모든 것을 뒤집어버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는 증표로 봐도 되지 않을까? 시절이 그렇게 수상하고 답답한 것은 아닐까? 하기사, 내가 알긴 뭘 모르고, 모르긴 뭘 알겠는가?
하희정 wizbook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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