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원, <유리벽>
내가
너의 손을 잡으려 해도,
잡을 수가 없었네.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나를
슬프게 하였네.
나는
느낄 수 있었네,
부딪치는 그 소리를.
우정도 사랑도
유리벽에
안에 놓여있었네.
유리벽
유리벽
아무도 깨뜨리질 않네.
모두 다 모른 척 하네.
보이지 않는
유리벽.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것을 가로막는 원인을 사회과학에서는 모순과 갈등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와의 갈등, 큰 나라와 작은 나라의 갈등 등이 우리의 삶을 결정짓는다고도 한다. 분명히 그런 측면이 있다. 하지만 때로는 사회 과학적 담론이 참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우리의 삶을 옭아매는 것은 그런 사회 구조적인 요인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고 사소해 보이는 편견(흔히 합리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들이 사실은 더 절박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삶 속에도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세한 그물을 연상케 하는 벽이 존재한다. 그 벽은 구질구질하게 우리의 삶에 개입하면서 피곤하게 한다. 그리고 그 작은 피로가 쌓이다보면, 어느새 심대한 고통으로 느껴진다. 원인을 알면서 어디서부터 끊어야할지 모르기 때문에, 답답하기가 이루 형언하기가 어렵다. 신형원의 <유리벽>은 그 삶 속의 보이지 않는 장벽과 벽을 넘어서지 못하는데서 오는 안타까움을 노래하고 있다. 보이는 장벽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장벽인 까닭에 사람들은 모른 척하고, 아무도 깨뜨리려고도 하지 않으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
우선 노래는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사이에 두고 소통하지 못하는 슬픔을 노래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앞에 서 있는 상대의 손을 잡으려고 해도 잡을 수가 없고,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 언뜻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노래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신형원이 <터>에서 “한라산을 올라서서 백두산을 바라보면/머나먼 고향을 생각하니/가슴이 뭉클하구나.”라고 노래한 적도 있으니,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자연스럽다.
하지만, 유리벽 안에 놓여 있는 것은 ‘우정과 사랑’이다. 신형원은 민족 분단과 같은 큰 문제를 노래한 것이 아니다. 우정과 사랑과 같은 일상생활 속의 작은 벽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좀 의아한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우정을 나누는 두 친구 사이에 벽이 있다든가, 사랑을 나누는 두 연인 사이에 벽이 있다는 발상은 쉽다. 세속화한 세계에서 살다보니, 인간성이 메말라 진정한 우정과 사랑을 찾기 힘들다는 정도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형원은 ‘우정도 사랑도 유리벽 안에 놓여 있었네.’라고 노래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유리벽은 우정을 나누는 두 친구 사이, 사랑을 나누는 두 연인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실은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은 각자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가 자기 주변에 유리벽을 치고 있다는 말이다. 유리 상자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다고 노래하고 있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즉, ‘스스로 갇힌 존재’인 현대인의 슬픈 초상을 노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니 조금만 힘을 쓰면 깨어지는 유리벽임에도 깨뜨리기가 쉽지 않다. 그 유리벽은 보이지도 않으며, 내 안에 있는 탓에 의식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스로 유리벽을 깨뜨리려고 하질 않는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그것을 진짜 모를까? 아니다. ‘나는 느낄 수 있었네’라고 노래하고 있듯이. 사람들도 그것을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왜 사람들은 애써 모두 다 모른 척하고 마는가? 그물에 걸린 사자는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치게 마련이다. 하지만 더욱 격렬하게 발버둥 칠수록 그물은 더욱 강하게 옭아 매 버린다. 일상 속에 편재하는 작고 투명한 편견들을 극복하는 일은 그렇게 어렵다. 그것을 너무 빨리 알아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하희정, wizbook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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