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

권진원, <나무>

국어의 시작과 끝 2007. 7. 5. 04:55
 

권진원, <나무>


그대가 바람이면

내게로 와 흔들어 주오.

나 혼자 외롭지 않게.


그대가 장미라면

가슴에 안을 수 있게.

내게로 와 꽃피어 주오.


그댈 바라보면서

속삭이며 향기에 취해

잠들고 싶어.


내게로 와 꽃피어 주오.

그댈 바라보면서

속삭이며 향기에 취해

잠들고 싶어.

 

 

10306


삶이 그대를 속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사람과 부대끼는 일이 싫어질 때, 뭔가를 열심히 하는 것마저 부질없다고 느껴질 때. 나무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나무처럼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한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나무가 쑥쑥 위로 키를 올리는 것은 밝은 해를 닮고자 함이다. 나무가 날로 푸르러지는 것은 하늘을 닮고자 함이다. 나무가 저들끼리 어울려 사는 것은 별들을 닮고자 함이다. 나무가 촉촉이 수액을 빨아올리는 것은 은핫물을 닮고자 함이다. (오세영, <나무> 중에서) 공감이 가는 사람이 많을 성 싶다.


숲을 이뤄 늘 푸른 것 같지만, 항상 날로 푸르름을 더해 감으로써 푸르름을 유지해가는 나무의 생리. 사람들은 그 변함없음과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의 조화로움을 사람들은 닮고 싶은 것이 아닐까? 또 해(=향일성)와 하늘과 별 그리고 은핫물을 가슴에 담고 살지만, 땅에 발을 묻고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는 나무의 생리를 닮고 싶은 것이 아닐까? 세상살이가 힘들고, 외로운 것은 무엇보다 그런 여유로움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 때, 사람들은 나무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닐까?


젊은 날에 사랑을 할 때라면, 그런 여유를 갖는 것은 참 어려울 것 같다.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늘이 아니면 미칠 것 같은 불타는 사랑을 하게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무처럼 사랑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한 사랑이 어떤 것인지는 사실 한 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자칫하면 세상 다 산 것 같은 서둘러 늙어버린 사랑의 원리를 내세우기 쉽기 때문이다. 권진원의 <나무>는 이 점에서 나무와 같은 사랑의 한 방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이런 부류의 노래는 예술적 취향이 강해서 대중성을 획득하기 힘들다. 대중의 생각과 정서에 아첨 떨면서 적당히 박자를 맞춰주는 노래가 아니기 때문이다. 노래방에서 이런 노래를 불렀다간 시간 아깝다는 평을 받기 십상이다. 하지만 홀로 이제까지 지내온 삶을 조용히 반추하는 시간에 듣는다면 참으로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을 성 싶다. 또 사랑하면서도 때로 사랑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힘겹게 느껴질 때, 뭔가 깨닫는 바가 많을 성 싶기도 하다.


이 노래에서 시적 화자는 나무이며, 어떤 의미에서 수동적이다. 그대가 바람이라면 자신에게로 와서 흔들어 달라고 한다. 또 그대가 장미이면 가슴에 안을 수 있게 와서 꽃을 피워달라고 한다. 그 향기에 취해 잠들고 싶다고도 한다. 이를 두고 수동적이라고 한 것은 바람이 동적이라면 나무는 정적인 존재이며, 꽃을 피우는 일이 화사하다면 나무가 되는 일은 무덤덤한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꽃을 피울 수 있는 그릇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는 태도의 표명으로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떤 의미에서 헌신적이거나 희생적인 자세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니 수동적이라는 해석은 매우 제한적인 범위에서만 그렇다고 말해야 될 것 같다. 스스로 꽃이 되기보다, 사랑하는 그대가 꽃을 피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자식들에게 갖는 사랑의 마음과 같은 것 말이다. 물론 젊은이들 간의 사랑에서 ‘어머니와 같은 마음’을 바라는 것은 무리이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제일 밑바닥에는 ‘어머니의 마음’과 같은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마음이 놓여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희정 wizbook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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