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영, <거울 앞에서>
나 이제 잊을래.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아
그대의 추억을 벗고,
다시 날 찾을 거야. 거울 앞에서.
난 머리를 잘랐지.
그대가 날 떠난 오랜 뒤에야,
난 화장을 했어.
예전에 내 모습을 지우려고
한참동안 기다렸지.
그대를 만나던
그 모습 그대로
혹시나 그대가 다시
나를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기대 속에.
난 이젠 알았어.
그대가 영원히 떠난 걸.
흐르던 눈물이 메말랐을 때
비로소 느낀 거야.
난 이제 잊을래.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아
예전에 초라한 모습을 벗고
다시 날 찾을 거야.
거울 앞에서
난 이젠 바꿀래.
혹시 그대가 날 봐도 모르게
난 모두 버릴래.
내 맘속에 남겨둔 추억까지
지금껏 난 애태웠지.
그대의 기억을 가슴에 안고서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는 그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난 이제 알았어.
그대가 영원히 떠난걸.
흐르던 눈물이 메말랐을 때
비로소 느낀 거야.
난 이제 잊을래.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아
예전에 초라한 모습을 벗고
다시 날 찾을 거야. 거울 앞에서
요즘 거울은 참 흔하고 값싸다. 하지만 100년 정도만 거슬러 올라가도 그리 흔한 것이 아니었다. 얼굴만 겨우 비출 수 있는 조그만 벽걸이 거울이 아닌 전신 거울은 특히 그랬다. 이발소나 양장점 같은 곳이 아니라면, 집안에 전신 거울을 두고 사는 집은 드물었다. 만약 그런 집이 있다면, 지역에서 꽤나 특권적인 지위에 있음을 의미했다. 흔히 거울은 침실을 겸하는 안방에 비치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므로 전신 거울은 그냥 특권이 아니라, 특권이 넘쳐서 그 집안 여성의 영역에까지 미치고 있음을 의미했다. 그렇지 못한 집안의 여성은 조그만 손거울 정도에 만족해야했다. 요즘도 혼수로 귀족 취향의 장식으로 치장한 큰 거울의 화장대가 빠지지 않는 이유가 아닐까?
묘한 것은 안방에 비치된 전신 거울이 안주인에 대한 관능적인 상상을 자극한다는 점이다. 은밀하게 나신(裸身)을 거울에 비춰보았을 것이라는 상상과 바깥주인과의 육체적인 관계에 상당히 적극적일 것이라는 상상이 그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거울에 비춰진 나신을 보며 홀로 은밀한 쾌락을 즐겼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중세 서양에서는 심지어 처녀가 욕조 물에 자신의 나신을 비춰보는 것마저 금하게 하기 위해, 목욕물을 흐리게 하는 특수한 가루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 정도였으니 거울에 대한 다소 엉큼한 상상이 요즘만의 일은 아니었나 싶다.
김태영의 <거울 앞에서>는 이별 후에 슬픔을 삭이며 새롭게 출발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내용의 노래이다. 거울을 테마로 한 관능적인 상상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또 그러한 면을 찾아낸다하더라도, 이 노래를 두고 그것을 중심으로 한 것이라 말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이 노래 속에 감춰진 관능적 상상을 찾아보는 것은 그 재미가 쏠쏠하다. 아니 은밀히 감춰져 있기 때문에, 들춰내는 재미까지 가미되어 더 재미가 있다고 말해도 될 성 싶다.
거울 앞에선 그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대의 추억을 벗고, 다시 나를 찾을 것이란다. 그렇다. 그녀는 벗는다. 추억을 벗는다는 그와의 기억을 지운다는 말인데, 그게 옷을 벗는다, 또는 나신을 드러낸다하고 무슨 관련이 있냐고.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실제의 그녀는 그냥 생각에 빠져 있을 뿐이지만, 거울 속의 그녀는 분명히 벗었을 것이다. 그와의 추억이 머릿속에 남아 있을 것이라는 흔한 생각은 틀렸다. 이성과의 추억은 몸으로 기억하는 것이지, 머리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온 몸 가득 남아 있는 그와의 추억을 지우려면, 욕조에 들어가는 자세로 벗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리고 무엇을 할까? 난 머리를 잘랐지, 그대가 날 떠난 오랜 뒤에야, 라고 노래하고 있다. 쉽게 생각하면 변신을 하려고 헤어스타일을 바꾼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으레 여자들은 남자와 헤어지면 머리를 자르지 않는가? 하지만 노래라는 것은 대개 순간적인 감정을 노래한다. 전후의 스토리는 그 순간적인 감정을 노래하기 위한 보조 출연일 뿐이다. 거울 앞에선 그녀는 머리를 매만졌을 것이다. 거울 속에 그녀는 머리를 자르고 있었을 것이고. 머리를 만지는 것은 사실 몸을 어루만졌다는 것의 대유적 표현이다. 즉 부분으로 전체를 노래하는 표현 방식이다. 그녀는 지금 그와의 추억이 배어있는 몸을 어루만지고 있는 것인데, 아직도 충분히 관능적인 육체가 차라리 서러웠을 것이다.
정신은 애써 그와의 추억을 잊으려고 한다. 그럴수록 육체는 더욱 또렷하게 추억을 되살려놓는다. 그것을 부추기는 것이 전신 거울이다. 혹시 그가 다시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릴 수가 없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그와의 아름다운 추억을 회상한다. 그리고 거울 속의 나신, 그 눈부신 육체에 차례차례 옷을 입히고, 곱게 화장을 한다. 당연히 그를 만나던 그 때의 그 모습 그대로이다. 여전히 아름답고, 관능적이다. 아무리 눈이 높은 귀족 청년이라도 한번 보면 유혹을 당하고 말 것 같다. 하지만 슬프다.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실제의 나는 눈물이 메말라 눈물을 흘리지도 않는데, 거울 속의 그녀는 눈물을 흘린다. 거울 속의 그녀는 여전히 눈부신데, 자신은 너무나 초라하다. 슬프다. 거울 앞에서는 그녀도 어쩔 수 없다. 그것이 거울이 갖는 마력이 아닐까?
하희정, wizbook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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