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과 추억

김정호, <이름 모를 소녀>

국어의 시작과 끝 2007. 5. 3. 01:09
요절한 천재 아티스트. 문학에 이상(李箱)이 있다면, 가요에는 김정호가 있다. ‘대중가요계의 모차르트’라는 찬사는 그의 천재성에 대한 높은 평가를 대변하며, 비극적인 삶은 역설적으로 천재성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면이 있다. ‘하얀 나비’ ‘이름 모를 소녀’ 등이 모두 불후의 명곡이라 해도 결코 과찬이 아니지만, 그의 음악에 너무 무겁게 접근하는 것은 불만이다. 진지하되 가볍게, 진중하되 너무 어둡지 않게 접근해 볼 필요도 있다.

‘이름 모를 소녀’는 알려진 바와 같이 애타게 짝사랑하던 한 여인에 대한 사모곡이다. 제목처럼 이름 모르는 소녀에 대한 노래가 아니라, 가까이 있으면서도 마음의 문을 쉽게 열지 않는 여인을 향한 애타는 사랑의 마음을 노래하고 있는 곡이다. 버들잎 따다가 연못 위에 띄워놓고, 쓸쓸히 바라보는 이름 모를 소녀. 이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가? 젊은 남성이라면, 어느 누가 이 소녀에게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 여인은 나중에 실제로 김정호의 반려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 노래가 실제로 그 쓸쓸한 소녀와의 첫 만남 정도를 연출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추측은 너무나 순진하다. 기실 소녀는 지금 작중 화자의 시선에 포착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부재하는 여인에 대한 그리움의 노래인 것이다. 그렇다면 작중 화자는 도대체 연못 위의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물론 수면 위의 그 무엇은 실제의 대상이었을 수도 있고, 일종의 환영이었을 수도 있다. 아니 여인의 모습과 포개지는 환영이라고 보는 것이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짐작건대 작중 화자는 백조 또는 그와 유사한 조류를 떠올렸을 것이다. 버들잎이 떠다니는 연못을 배경으로 수면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백조와 자신이 연모하는 여인의 이미지가 포개지는 몽상에 잠겨 있었을 것이다. 노래에서는 ‘밤은 깊어 가고 산새들은 잠들어, 아무도 찾지 않는 조그만 연못’이라고 했다. 그리고 ‘달빛 젖은 금빛 물결 바람에 이누나’라고 했다. 달빛 젖은 연못 위에 작중 화자는 백조 한 마리를 상상력을 발휘해 그려 넣고 있었을 것임에 분명하다. 환상적인 한 폭의 수채화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정경이 아닌가?

생각해 보건대 백조는 문학에 있어 항용 벌거벗은 여인의 대용물이다. 그것은 눈부시게 하얀 나체를 드러내고 멱을 감는 여인의 상상적 변용이며, 그 밑바탕에는 그것을 엿보고 싶은 남성의 성적 욕구가 꿈틀거리고 있다. 달빛 젖은 연못에서 멱을 감는 여인의 나체, 그 은밀하게 허용된 나체는 얼마나 환상적인가? 이를 두고 너무나 속되고 음험한 상상력이라고 성급하게 단정 짓지 말지어다. 남성이라면 그 아름다운 백조의 날개, 그 멱 감는 여인의 옷을 훔치는 나무꾼이 되는 상상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은 연못 위의 백조는 과장된 백색의 이미지로 착색되는 것이 보통인데, 왜 하필이면 ‘달빛 젖은 금빛’으로 치장을 해 놓았는가 하는 점이다. 이러한 설정을 두고 조금 비약하여 그것이 시대의 우울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하면 안 될까? 자유로운 비상을 억압하는 시대 현실에 대한 저항의 한 방식이라고 하면 안 될까?

 

하희정·문학평론가 wizbook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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