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이별

김용임, <사랑의 밧줄>

국어의 시작과 끝 2007. 5. 1. 02:38
 

김용임, <사랑의 밧줄>


사랑의 밧줄로 꽁꽁 묶어라.

내 사랑이 떠날 수 없게.

당신 없는 세상은 단 하루도

나 혼자서 살 수가 없네.

바보같이 떠난다니

바보같이 떠난다니

나는 나는 어떡하라고.

밧줄로 꽁꽁 밧줄로 꽁꽁

단단히 묶어라 내 사랑이 떠날 수 없게.


사랑의 밧줄로 꽁꽁 묶어라

그 사람이 떠날 수 없게

당신 없는 세상은 단 하루도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네.

나를 두고 떠난다니

나를 두고 떠난다니

정말 정말 믿을 수 없어

밧줄로 꽁꽁 밧줄로 꽁꽁

단단히 묶어라 그 사람이 떠날 수 없게

밧줄로 꽁꽁 밧줄로 꽁꽁

단단히 묶어라 내 사랑이 떠날 수 없게.

8201


밧줄. 거기에 ‘사랑의’라는 수식어가 붙었지만, 사실 두려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것은 결박(結縛)을 의미하고, 나아가 죽음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죄수(罪囚) 또는 포로(捕虜)를 옴짝달싹 못하게 묶는 수단이 바로 밧줄이다. 그런가 하면 사형수가 삶의 최종 순간에 같이 해야 하는 것이 밧줄이다. 어찌 무서운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비유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밧줄’이라는 은유가 뒤늦게 등장한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닐까?


물론 이 노래의 가사는 뜻하는 바가 비교적 단순하다. ‘사랑의 밧줄로 꽁꽁 묶어라’라는 말은 임이 떠나지 못하게 붙잡아두어라, 정도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우리의 평상적인 정서에 따른다면, 바람아 불어라 바람아 불어서 임을 발길 멈추어 다오, 정도가 적당하지 않은가? 그에 비할 때 밧줄로 ‘꽁꽁/단단히’ 묶어 버리라고 얼마나 거친가? 그 정도라면 사랑이 아닌 집착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면 이 노래는 단순한 비유에 불과한 것일까? 꼭 그렇지만 않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밧줄이 포승(捕繩)같은 느낌을 자아내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것은 정박하고 있는 배를 뭍에 꽉 묶어두는 굵은 밧줄을 연상시킨다. 떠나려고 하는 것은 배와 같은 남정네이고, 묶어 두려고 하는 것은 항구와 같은 여인네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밧줄은 무엇인가를 얽매는 밧줄이 아니라, 둘 사이가 더 벌어지지 않도록 묶어주는 끈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몸믈 오싹하게 만드는 어둡고 부정적인 의미는 가시고, 밝고 긍정적인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물론 그럴 수 있지만, 그렇게 볼 만한 근거를 제시하는 구절이 없지 않은가 하고 반문할 수 있다. 사실 그렇긴 하다. ‘바보같이 떠난다니’에서 ‘바보’는 순진하다는 뜻도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임이 날 버리고 떠나는 것은 아닌 것이며, 그러므로 그렇게 볼 여지가 있지 않은가, 하고 답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근거가 미약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김영임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밧줄을 긍정적인 의미를 갖는 것으로 자꾸만 생각이 쏠리는 것을 말이다. 김영임의 창법에서 그 해답을 찾으면 안 될까? 밝고 경쾌한 느낌의 민요를 듣는 것 같은 창법에서 밧줄의 어두운 이미지를 가시게 하는 힘이 느껴진다고.


그렇다면 여인은 왜 임을 밧줄로라도 꽁꽁 묶어 놓고 싶은 것일까? 답은 분명하다. 임을 묶어서라도 곁에 두지 않으면 스스로가 묶여버리기 때문이다. 당신 없는 세상은 단 하루도, 나 혼자서 살 수가 없네, 라고 하고 있지 않은가? 임이 떠나고 나면 보이지 않는 그리움의 밧줄에 여인이 꽁꽁 묶여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그녀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단 하루도.


그렇다고, 임을 괴롭게 해서야 되겠는가? 임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임이 자유로울 수 잇도록 해 주어야 하지 않은가? 사랑을 핑계 삼아 구속해서야 되겠는가?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사랑은 구속이 아닌가? 아름다운 구속, 행복한 구속 말이다. 서로 묶여 있음으로 해서, 더 자유로워지는 것, 그것이 사랑의 밧줄이 아니겠는가?  물론 이 때 밧줄은 서로를 이어주는 끈이 되고, 서로를 아름답게 묶어 주는 매듭이 된다. 그리고 비로소 밧줄은 온전히 긍정적인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희정 wizbook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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