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이별

최유나, <별난 사람>

국어의 시작과 끝 2007. 4. 23. 01:25
 

최유나, <별난 사람>


오다가다 마주칠 때

뭐 그리 바쁜지

눈길한번 주지 않더니

누가 말해 주지도 않은

내 생일 알고서

꽃다발을 보내준 사람

난 몰라요 몰라 그런 당신 마음

오락가락 알쏭달쏭해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안아보고 싶다고

쉽게 말해주면 될 것을

오늘도 지나쳐 가시렵니까

내 마음 변하면 어쩌시려고

당신 정말 별난 사람



이리저리 스쳐갈 때

무표정한 얼굴

인사 한번 하지 않더니

내가 먼저 묻지도 않은

전화번호를

은근 슬쩍 두고 간 사람

난 몰라요 몰라 그런 당신 마음

오락가락 알쏭달쏭해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안아보고 싶다고

쉽게 말해주면 될 것을

오늘도 지나쳐 가시렵니까

내 마음 변하면 어쩌시려고

당신 정말 별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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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어(疊語). 동일한 음이나 비슷한 음을 가진 단어를 반복적으로 결합한 말을 첩어라고 한다. 쉽게 설명하면, ‘소근소근’, ‘덩실덩실’처럼 동일한 음을 가진 말을 반복하거나, ‘싱글벙글’, ‘허둥지둥’처럼 비슷한 음을 가진 말을 반복하여 만든 말이 첩어다.


눈치 빠른 사람은 벌써 알아챘겠지만, 의성어나 의태어에 특히 많다. ‘소근소근, 웅성웅성, 첨벙첨벙, 덜거덕덜거덕, 딸그락딸그락’ 등은 의성어의 경우이고, ‘덩실덩실, 달랑달랑, 머뭇머뭇, 힐끗힐끗, 두리번두리번’ 등은 의태어의 경우이다. 그렇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데, ‘집집, 곳곳, 나날, 겹겹’과 같이 동일한 명사가 반복된 경우도 있고, ‘고루고루, 따로따로, 영영’과 같이 동일한 부사가 반복된 경우도 있다. 나아가  ‘-디-’를 사이에 두고 형용사 어간이 반복되는 ‘차디차다, 짜디짜다’ 등도 일종의 첩어로 분류된다.


그렇지만 역시 첩어의 주류는 의성어나 의태어라 할 수 있고, 그래서 그런지 첩어를 사용하면 말을 하는 맛이 산다. ‘덜거덕’이라고 하고 마는 것보다는 ‘덜거덕덜거덕’이라고 해야 실감이 나고, ‘허둥대다’보다 ‘허둥지둥하다’가 훨씬 실감이 난다. 단순한 강조 차원이라고 말하기 어려운데, 그냥 ‘차다’보다 ‘차디차다’라고 하면 단순히 강조한 것 이상의 실감이 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우리 대중가요에서 첩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박현빈의 <곤드레만드레>, 장윤정의 <이따이따요>는 제목부터가 첩어로 이루어져 있다. 최유라의 <별난 사람>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 노래에도 전형적인 첩어 또는 준첩어가 등장한다. ‘오락가락 알쏭달쏭해’ 하는 부분이 대표적일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비슷한 뜻으로 이해될 수도 있는 두 개의 준첩어를 다시 중첩시키면서 말의 묘미를 살리고 있는 것이다. 실감을 살리면서 동시에 말의 재미를 살리기 위한 것임에 분명하다. ‘몰라요 몰라’나 ‘은근슬쩍’도 비슷한 차원에서 이해되는 것은 물론이다. 아니, 제목부터도 그렇게 하고 싶었을 성 싶은데, 그렇게 하자면 대안은 ‘별별 사람’이었을 텐데, 좀 어색해 보여서 ‘별난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위의 한 구절만으로 <별난 사람>이 첩어가 갖는 말의 묘미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첩어가 갖는 말의 묘미를 좀 더 폭넓게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그렇다면 비슷한 구절을 찾아보자. 먼저, ‘오다가다 마주칠 때는’, ‘이리저리 스쳐갈 때’의 경우. 여기서 ‘오다가다’나 ‘이리저리’도 첩어라는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결국 이 노래는 제1절과 제2절의 첫구절이 모두 첩어의 묘미를 살리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건대, ‘오다’와 ‘가다’는 반대말이지만, 사실 좀 다른 맥락에서 보면 (방향이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면) 같은 말을 반복한 것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나아가 이 노래에서 중첩의 묘미를 살리는 전략은 구절 차원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안아보고 싶다고’라는 부분을 살펴보자. ‘사랑한다’와 ‘안아보고 싶다’는 말은 결국 같은 뜻이라는 말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너무나 쉬운 공식이다. 사랑의 프로포즈를 할 때, 사랑한다는 말 대신에 안아보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 사실 아닌가? 이런 생각을 좀 더 밀고 나가보면 어떨까? 제1절의 ‘말해 주지도 않은 내 생일 알고서 보내준 꽃다발’과 ‘먼저 묻지도 않았는데 은근 슬쩍 두고간 전화번호’도 결국 같은 뜻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이런 제안을 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별난 사람>이라는 노래 제목을 ‘별별 사람’이라고 바꾸고, 마지막 구절도 ‘당신 정말 별난 사람’을 ‘세상에 별별 사람, 당신 정말 별난 사람’이라고 바꾸자고. 에고에고, 노래 평하면서 좋디좋은 노래 제목에까지 이러쿵저러쿵 시비 걸면서,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할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뭐 어떻습니까? 세상에는 별별 사람 다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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