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이별

신승훈, <미소 속에 비친 그대>

국어의 시작과 끝 2007. 5. 3. 01:21
신승훈의 ‘미소 속에 비친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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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微笑)’와 ‘미소(美笑)’. 어느 것이 옳은가? ‘아름다운 웃음’에 손을 드는 사람도 많을 듯싶다. 사실 ‘작을 미(微)’가 들어 있는 단어 중 긍정적인 뜻을 내포하는 것이 드물지 않은가? ‘미미(微微)하다’ ‘미천(微賤)하다’ ‘미력(微力)하다’ 등등. 한자에 밝지 않다면 착각할 만하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아름다운(美)+웃음(笑)’은 얼른 떠오르는 조합이 아닌가? 그런데 ‘미소(美笑)’라는 국어 단어는 왜 없는 것일까? ‘웃음(笑)’에 대해 우리 민족이 썩 좋은 평가를 내리지 않았다는 방증이 아닐까? 헤프게 웃는 것을 경계하는 말이 많은 것을 보면 그럴 성싶다.

웃음에 대해 비우호적인 평가와는 달리 ‘소리 없는 작은 웃음’만은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 우리의 전통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미소’에서 ‘아름다운’은 잉여적 표현일 뿐이다. 모든 미소는 아름답기 때문이다. 정든 임이 오셨는데, 인사도 못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벙긋(‘밀양아리랑’에서). 그렇다. 예로부터 미소는 연인들의 애정을 확인하는 가장 확실한 시그널이었다.

이를 두고 야단스러운 것을 꺼리는 은근(慇懃)의 미학이라고 규정하고 말면 그만일까? 아니다. 신승훈의 ‘미소 속에 비친 그대’는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너는 장미보다 아름답진 않지만, 그보다 더 진한 향기가. 너는 별빛보다 환하진 않지만, 그보다 더 따사로워. ‘미소 속에 비친 그대’는 연인들이 사랑을 확인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시각적인 아름다움이 아닌, ‘향기’와 ‘온기’가 더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장미의 아름다움’과 ‘별빛의 환함’ 따위가 외면적인 것이라면, ‘향기’와 ‘온기’는 내면적인 것이다. 화려한 사랑이 아닌 속 깊은 사랑이 진짜 사랑인 것이다.

아무리 속 깊은 사랑이라고 해도 사랑의 감정은 표출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법이다. 움켜쥔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미꾸라지처럼, 감추고 싶은 속마음이 겉으로 내비치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 미소는 향기와 온기를 품은 그 속마음이 겉으로 드러나는 가장 정직한 시그널이었던 것. 여기서 ‘정직한’이라고 한 것은 ‘은근하다’는 말보다는 ‘강렬하다’는 것과 가깝다. 왜 그럴까? 두말 할 것도 없이 미소는 드러내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소는 또한 복합 감정의 표현이기도 하다. 나는 울고 싶지 않아. 다시 웃고 싶어졌지. 그대 미소 속에 비친 그대 모습 보면서, 다시 울고 싶어지면, 나는 그대를 생각하며, 지난 추억에 빠져있네 그대여. 여기서 ‘그대 미소 속에 비친 그대 모습’이란 그녀의 속마음을 말할 것인데, 그것을 생각하면 울고 싶지 않고 또 웃고 싶고, 다시 울고 싶다. 미소는 이런 복합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기호인 것이다.

그 복합적인 감정이란 원래 한 가닥으로 정리되기 힘든 것이 아니겠는가?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 그러나 아직도 사랑의 감정이 지속되고 있다면, 그 추억은 앞서와 같이 ‘아름답다’는 한 마디로 결코 정리될 수 없는 것이다. 사랑, 알다가도 모를 것이 사랑의 감정인 법이다. 시리즈 끝

하희정·문학평론가 wizbook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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