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애보 ...박진도
당신은 내 사랑이요 고귀한 내 생명이여
내 가는 인생 길에서 당신은 내 운명이요
당신은 내 행복이요 나에겐 즐거움이여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당신은 소중한 사람
아 그대 영원히 사랑하리
온 세상 모두가 변한다해도
당신만 사랑하리라
아무리 험난한 길도 둘이서 우리 둘이서
영원히 함께 가리라 가리라 가서 영원토록
우리 둘이 함께 살리라
아 그대 영원히 사랑하리 온 세상 모두가 변한다해도
당신만 사랑하리라
아무리 험난한 길도 둘이서 우리 둘이서
영원히 함께 가리라 가리라 가서 영원토록
우리 둘이 함께 살리라
우리 둘이 함께 살리라
순애보(殉愛譜). 박계주의 <순애보>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듯싶다. 1930년대 말에 발표된 이 소설은 보름 만에 매진되는 인기를 누렸다. 해방 이후까지 수많은 출판사에서 간행한 우리나라 통속소설의 대표적인 존재이다. 요즘도 눈물샘을 자극하는 많은 멜로드라마, 멜로 영화가 순애보의 틀을 원용하고 있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순애보’라는 제목에서 ‘순애’를 ‘순애(純愛)’로 잘못알고 있는 듯싶다. 소설 원작을 안 읽어본 사람도 지극히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 소설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한다. 하지만 여기서 ‘순(殉)’은 ‘순장(殉葬), 순국(殉國)’처럼 쓰이는 ‘따라 죽다’의 뜻이다. 결국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야기’가 순애보인 것이다.
박진도의 <순애보>는 ‘순애보(純愛譜)’일까? ‘순애보(殉愛譜)’일까? 겉으로 드러난 이야기만 보면 ‘순애(純愛)’를 노래한 것 같다.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당신은 소중한 사람, 아 그대 영원히 사랑하리. 특별한 해설이 필요 없는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노래하고 있지 않은가? 가사가 너무 평범하다고 탓할 수 있지만, 그럴 필요도 없다. 사랑의 감정이 진정 순수한 것이라면, 이렇게 저렇게 덧붙여지는 이야기는 말 그대로 군더더기가 아닌가.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하면 되는 것이지, 어쩌고 저쩌고 해서 사랑한다는 것은 차라리 번거롭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박진도의 순애보는 ‘순애(殉愛)’를 노래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왜 그런가? 이것이 우리가 고민해야할 문제이다. 그렇다면 먼저 남녀 간의 사랑이란 무엇인가? 남녀가 하나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다소 엉뚱해 보이지만 그것을 금기(禁忌)의 위반이라고 정의할 수는 없을까? 이렇게 정의하는 것은 남녀 간에는 맘대로 넘나들 수 없는 영역이 사회적으로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 금기의 영역을 나누어놓는 선을 넘어서는 것이 남녀 간의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육체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성적 충동이란 그 금기를 위반하고 싶은 충동의 다른 표현이며, 사랑은 그 금기를 위반하는 유일한 합법적 수단이 아닌가?
서로의 벽을 허물고 하나가 될 때, 사랑은 완성이 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끊임없이 둘 사이의 벽을 허물고 하나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사랑이다. 이 점에서 사랑은 죽음에의 충동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두 개체가 하나가 된다는 것은 각각의 생명은 죽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철저히 자신을 죽이고, 상대와 한 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의 생명이 임의 생명 속으로 용해되어 버리는 것을 말한다. 물론 그것이 진정으로 사는 길임은 두 말할 것도 없다.
이 점에서 <순애보>의 첫 구절, ‘당신은 내 사랑이요 고귀한 내 생명이여’는 가볍게 넘어갈 수 없다. 당신은 내 사랑이다, 라는 비유가 곧바로 당신은 내 생명이다, 라는 비유로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후반부의 ‘영원히 함께 가리라, 가리라. 가서 영원토록 우리 둘이 함께 살리라.’도 가볍게 넘어갈 수 없다. ‘영원한 감’이라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죽음을 떠올리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영원토록 함께 산다는 것은 같이 죽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사랑은 이렇게 죽음과 아름답게 연결된다. 그래서 박진도의 <순애보>는 ‘순애보(殉愛譜)’가 된다.
원래 ‘보(譜)’라는 것이 그런 것이 아닐까? 흔히 족보는 조상의 삶을 기록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조상의 죽음을 기록한 것이 아니던가? 하지만 사랑으로 인한 죽음은 영원한 삶, 영생(永生)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고귀한 사랑은 보석과 같은 것이다. 외부의 환경이 아무리 바뀌어도 빛을 잃지 않는 보석. 그것처럼 참으로 순수한 사랑은 세월이 흐른다고 빛을 잃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을 소멸시켜서 새로운 삶, 영원한 삶을 얻어낸다. 화석의 무더기가 아니라, 보석의 곳집인 ‘보(譜)’는 그 빛을 문자 속에 담아두는 기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희정 wizbook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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