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

이용, <사랑의 상처>

국어의 시작과 끝 2007. 4. 26. 03:01
 

이용 <사랑의 상처>


지난날을 생각해 본다.

세월이 흘러갔어도 아직까지

그때 그 일을 잊지 못하고

지금까지 이내 가슴에 꺼지지 않는

불꽃이 되어 외로움 태우고

괴로움 불 질러도

이 뜨거운 사랑의 상처 사라지지 않는구나

아프기만 하네

이제 눈물로 식히련다.

너를 놔 주련다.


지난날을 생각해본다.

인생은 이런 거라고 아직까지

그때 그일을 왜 못잊냐고

주위에선 말들하지만 아물지않는

상처가 되어 위로를 받아도

따스한 말 들어도

이 뜨거운 사랑의 상처 사라지지 않는구나

아프기만 하네

이제 눈물로 식히련다.

너를 놔 주련다.

8016

 

 


 

80년대 초반 가수 이용의 하늘을 찌를 것 같은 인기는 조용필과 견줄만했다. 지금도 10월 말일만 되면, 어김없이 수많은 방송 매체에 단골로 등장하는 <잊혀진 계절> 한 곡만으로도 그의 인기는 충분히 가늠할 수 있으리라. 80년대 중반쯤이었을까? 갑자기 방송에서 그를 볼 수 없었고, 미국으로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왔다. 그리고 계절이 여러 번 바뀌고, 잊을 만하니까, 다시 등장했다. 그리고 예전의 인기곡을 다시 불렀다. <열린 음악회>와 같은 무대에서.


당연히 예전의 감흥을 되살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열린음악회>의 무대도 그와 안 어울렸다. 그에게는 역시 좀 더 발랄하고 젊은 무대가 어울렸다. 당연히 <바람이려오>나 <사랑과 행복 그리고 이별>로 선사한 감흥을 다시 기대했던 사람이라면 조금 실망했을 수도 있었겠다. 비단 그것이 이용에게만 해당하는 일이겠는가?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하질 않는가?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긴 그에게 20대의 노래를 기대하는 것이 차라리 무리이다.


그리고 좀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그의 진면목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사랑의 상처>와 <후회>가 그것이다. 여기에도 부분적으로 예전의 열정적인 창법이 살아 있지만, 근본적으로 이들은 중년의 노래이다. 젊은이의 우상이었던 그가 중년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도대체 중년의 노래란 무엇인가? 단순해 보이지만 결코 단순하지마는 않은 이 의문에 대한 답을 그의 노래에서 찾아보면 어떨까?


정신적인 성숙이 느껴진다고 말할 수 있다. 분명히 그렇다. ‘이 뜨거운 사랑의 상처 사라지 않는구나.’, ‘이제 눈물로 식히련다. 너를 놔 주련다.’에서 그것은 쉽게 확인된다. 순리에 순응하는 삶의 자세가 그렇다. 하지만 그건 너무 싱겁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답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좀 더 깊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내용상으로 성숙한 정신적 경지를 노래하는 것과 노래 자체가 성숙한 형식을 갖춘 것은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어린이가 부른다고 다 동요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중년의 가수가 부른다고 다 중년의 노래는 아닌 것이다.

 


 

형식적 측면에서 접근해 보면 어떨까? 이렇게 설명해 보면 어떨까? 20대의 노래가 운문의 세계라면, 40대의 노래는 산문의 세계라고 말이다. <사랑의 상처>의 노랫말이 대단히 산문적이라는 것이다. 쉽게 이해가 안 간다면, <잊혀진 계절>의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과 <사랑의 상처>의 ‘지난날을 생각해 본다’를 비교해 보자. 앞의 경우는 지금도 기억해 본다는 사실을 앞세우고 있지만, 그것은 포즈일 뿐이다. 무게 중심은 당연히 시월의 마지막 밤이다. 그러나 뒤의 경우는 다르다. 지난날을 생각해 본다는 사실 자체에 무게가 실려 있지 않은가?


그런 차이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게 뭐 그리 중요하냐고? 뭐 그리 대단한 발견이냐고? 대단히 중요하고 말고다. 이런 차이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룰 수 없는 꿈’을 노래하는 것과 ‘꿈을 이룰 수 없음’을 노래하는 것의 차이가 그것. ‘이룰 수 없는 꿈’을 꿈꾸는 사람은 절대로 그것을 그냥 놔 줄 수가 없다. 하지만 ‘꿈을 이룰 수 없음’을 아는 사람은 그 꿈을 그냥 놔 줄 수 있다. 왜? 나이가 들면 알게 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꿈을 꾼다고 해서 이룰 수 없는 것이 참 많음을. 더 정확히 말하면 이룰 수 없는 꿈을 마음속에 아프게 간직하며 사는 것이 삶이고, 그 삶 역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이 산문의 세계이다. 굳이 서정적인 운문이 아닌 수필을 읽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세계 말이다. 서정적인 운문의 세계를 노래했던 인기 정절의 가수 이용이 아닌, 돈이 된다면 어디든 간다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가수 이용이 행복해 보이는 것도 다 이 때문 아니겠는가? 그는 그렇게 현실의 삶 속으로 돌아왔다. 우리의 이웃으로 돌아왔다. 반갑고 고맙다.


하희정 문학평론가 wizbook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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