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

김민기, <늙은 군인의 노래>

국어의 시작과 끝 2007. 4. 27. 14:51

김민기, <늙은 군인의 노래>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삼십년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 죽어 이 흙속에 묻히면 그만이지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아들아 내딸들아 서러워마라
너희들은 자렁스런 군인의 자식이다
좋은 옷 입고프냐 만난 것 먹고프냐
아서라 말아라 군인 아들 너로다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내 평생 소원이 무엇이더냐
우리 손주 손목잡고 금강산 구경일세
꽃 피어 만발하고 활짝 개인 그 날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이 내 청춘 다 갔네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푸른 하늘 푸른 산 푸른 강물에 
  검은 얼굴 흰 머리에 푸른 모자 걸어가네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우리손주 손목잡고 금강산 구경가세
 아 다시 못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옷에 실려간 꽃다운 내 청춘
                                              푸른옷에 실려간 꽃다운 내 청춘

 

 

 

8585

 

 

금지곡. 지금은 낯선 말이지만, 7080 노래를 이야기하며 빼놓을 수 없는 말이다. 방송 금지곡만으로도 우리 가요의 한 장을 쓸 수 있을 정도니 말이다. 그리고 그 서장을 장식하는 이름은 아무래도 김민기다. 김민기보다 양희은의 음성으로 더 잘 알려진 ‘늙은 군인의 노래’도 대표적 금지곡 중의 하나다.

유교 문화에서 아버지는 하늘과 같은 존재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두고 천붕지통(天崩之痛)이라고 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자식들에게 아버지는 여전히 세상을 읽어가는 지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노래에서 아버지는 늙은 군인으로 등장한다. 푸른 옷(군복)을 입고 청춘을 다 보낸 늙은 군인이다. 그런데 늙은 군인은 푸른 옷을 입고 지낸 꽃다운 청춘을 자랑스럽다고 말하고 있지만, 노래의 전체 분위기로 보아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자조적인 분위기가 물씬 배어 있다. 아마 그것이 금지곡이 된 이유일 것이다.

늙은 군인은 자식들에게 호강하며 살고 싶으냐고 묻는다. “좋은 옷 입고프냐 맛난 것 먹고프냐.” 그리고 자답의 형식으로 “아서라 말아라 군인 아들 너로다”라고 읊조린다. 흔히 그러하듯 자문자답(自問自答)은 고백의 다른 형식이다. 늙은 군인이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었을 게다. 내 젊어 호강하며 사는 것을 바라지 않고, 군인으로서 젊음을 다 바쳤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건대, 참으로 허망하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허망함의 근거는 무엇일까? 군인으로 조국에 몸 바쳤지만, 그것이 조국의 통일이 아닌 조국의 분단을 고착시키는 결과만을 낳았다는 것이 아닐까? 아니 군사정권의 주구(走狗) 역할을 한 것 이상의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자신이 결코 소망하는 바가 아니다. 그리고 자신의 소망을 노래한다. 자신의 진정한 꿈은 조국의 통일이었다고.

“내 평생 소원이 무엇이더냐/우리 손주 손목잡고 금강산 구경일세/꽃 피어 만발하고 활짝 개인 그 날을/기다리고 기다리다 이 내 청춘 다 갔네.” 그렇다. 분단 조국의 하늘 아래 산다는 것은 이렇게 역설적이다. 조국에 몸 바쳐 일하면 할수록 민족의 불행을 공고화하는 일에 복무해 버리는 불행한 현실, 그것은 한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역사의 역설이다. 분단 조국에서 평생 군인으로서 복무한다는 것은 이처럼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생각해보건대 어디 그것이 군인만의 불행이겠는가? 불행한 역사를 껴안고 살아가는 민족 전체의 불행이 아니겠는가?

푸른 옷은 그 불행과 서러움의 상징이다. 그러나 이 노래에서 ‘푸름’은 서러움의 상징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희망의 상징이기도 하다. 늙은 군인은 알고 있다. 역사의 힘은 서러운 푸름을 건강한 푸름으로 전환시키고 말 것임을. “푸른 하늘 푸른 산 푸른 강물에/검은 얼굴 흰 머리에 푸른 모자 걸어가네/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우리손주 손목잡고 금강산 구경가세.” 그렇다. 물론 늙은 군인이 아쉬워하는 청춘의 푸름은 다시 못 올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푸름은 언젠가는 올 것이다. 검은 얼굴 흰 얼굴, 그리고 푸른 모자가 걸어가는 모양으로, 그렇게 뚜벅뚜벅 역사의 푸른 새날이 언젠가는 다시 올 것이다. 이 점에서 이 노래는 자조의 노래이면서, 동시에 희망의 노래이다. 

 

 

하희정 <문학평론가|wizbook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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