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덕규, <가시나무>

하덕규, <가시나무>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외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곳 없네     바람만 불면 그 매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곳을 찾아 지쳐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곳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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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덕규의 ‘가시나무’는 감미로운 선율이 인상적인 모던 록 계열의 포크송이다. 원래 1988년 ‘시인과 촌장’(하덕규, 함춘호)의 두번째 앨범 ‘숲’에 수록됐던 곡이며, 이은미, 유리상자, 이현우 등이 리메이크하여 불렀고, 특히 2000년 조성모가 리메이크하여 부르면서 신세대들에게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시인 하덕규의 입장에서 보면 이 노래는 양희은이 불러 잘 알려진 ‘한계령’의 속편에 해당하고, ‘가시나무2’로 이어진다. 시인 하덕규의 내적 번민이 극에 달해 죽음의 유혹을 느끼던 시절에 설악산 한계령에 올라 쓴 작품이 ‘한계령’이라면, ‘가시나무’는 종교에 귀의함으로써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찾은 상태에서 쓴 작품이다. 그리고 ‘가시나무2’는 ‘가시나무’에서 제기되었던 의문에 대해 그 나름의 답을 찾아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노래 속에 등장하는 ‘가시나무’는 무엇보다도 성서 속에 나오는 가시나무와 연관된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숨질 때 로마병정이 씌웠던 가시면류관이 가시나무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가시나무’는 인간 마음 속에 온갖 갈등과 번뇌를 초래하는 이기심, 시기심, 허영심, 자만심 등을 폭넓게 함축한다. 이런 면에서 종교적 차원의 내적 성찰을 내용으로 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어, 대중가요의 가사가 흔히 드러내는 깊이 없는 감상주의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제1연에서 시인은 나 속에 있는 ‘나’의 과잉을 지적한다. 자기중심적인 생각으로 가득 찬 자신 때문에 타인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헛된 바람’ 즉 허영심, 자만심, 이기심으로 가득 찬 마음 속에 타인에 대한 배려는 찾기 어렵다. 결국 그것은 스스로를 외롭게 만들고, 상처받게 만드는 계기가 되고 만다.

제2연에서 그 사정은 한층 더 분명하게 구체화된다. 자신의 마음 속에는 스스로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어둠’으로 가득하다. 그러니 타인에게 평안과 안식의 거처를 제공할 수 없다. 그리고 타인에게 야박해지는 것만큼이나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을 자아낸다. 결국 그것은 가슴 속에 담아 둔 가시나무와 같은 것이다. 스스로를 날카롭게 찌르고, 상처를 내는 마음 속의 깨진 사금파리와 같다. 깨진 사금파리와 같은 가시나무를 가슴 속에 품고 사는 자아는 늘 상처투성이일 수밖에 없다. 

제3연과 제4연에서 시인은 이기심에 사로잡힌 인간의 비극을 바람만 불면 부대끼는 가운데 자신의 가시로 자신을 찔러 상처내는 가시나무의 안타까운 처지와 오버랩시키고 있다. 실제가 그러하든 그러하지 않든 간에 적어도 시인에 눈에 비친 가시나무의 운명은 참으로 처연하다. 

물론 시인이 노래하는 가시나무의 운명은 인간의 운명을 노래하기 위한 하나의 유추일 뿐이다. 한 인간이 고독해 하며 눈물을 흘리고, 타인을 넉넉하게 감싸 안지 못하는 것은 결국 자기 내부의 ‘가시’ 때문이며, 이기심·허영심과 같은 자기 내부의 어둠을 털어내지 않고서는 결국 타인과 진정한 소통을 이루기 어렵고, 스스로의 고독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임을 노래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희정 <문학평론가|wizbooks@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