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

설운도, <누이>

국어의 시작과 끝 2007. 4. 22. 21:00
 

설운도 - 누이

언제나 내겐 오랜 친구같은

사랑스런 누이가 있어요.

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누이

마음이 외로워 하소연 할때도

사랑으로 내게 다가와

예쁜 미소로 예쁜 마음으로

내마음을 감싸(2절 달래) 주던 누이

나의 가슴에 그대향한 마음은

언제나 사랑하고 있어요.



1983년 KBS 이산가족 찾기 방송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듯하다. 140여일 이르는 특별생방송 기간도 그렇고, 방송에 출연한 사람만도 10만 명이 넘고, 이 방송을 통해 1만 명 이상이 헤어진 가족을 찾았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방송사에 유례없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다함께 차차차>, <여자 여자 여자>, <쌈바의 여인> 등으로 잘 알려진 설운도 역시 이 방송으로 일약 스타 가수가 되는데, 그 노래가 <잃어버린 30년>이다.


<잃어버린 30년>은 제목 그대로 이산가족의 애절한 사연을 노래한 것이다. 이산가족을 둔 사람이라면 모르겠으되, 그렇지 않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부르기도 그냥 듣기도 상당히 부담스러운 노래이다. 물론 그 사연에 공감하지 못해서 그렇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어찌 민족상잔의 비극을 모를 수 있으며, 이산가족의 아픔을 모르겠는가?


따라서 노랫말에 실린 내용과는 별개로 감정의 넘침, 그것이 부담으로 작용했다고 해야 옳다. 이른바 주지주의라고 일컬어지는 모더니즘 시에서 감정의 절제는 매우 기본적인 요구 사항이다. 아무리 시가 감정에 호소라는 서정 장르에 속한다 하더라도, 통제되지 않은 감정의 분출 그러니까 심하게 말하면 넋두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중가요라 해도 사정은 다르지 않은 것이다. 아니 시가 아닌 노래이기 때문에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다.


설운도가 만약 <잃어버린 30년>의 창법을 지속했다면, 인상적인 가수로 기억되는데 그쳤을 공산이 크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설운도는 매우 훌륭하게 변신했고, 20년이 넘게 대중가수로서의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노래 외에도 그는 많은 곡을 히트시켰는데, <나침반>, <원점>, <사랑의 트위스트>, <춘자야> 등이 있다. 이들 노래가 공유하는 특질은 모두가 노랫말과는 별개로 아주 훌륭하게 감정의 절제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경쾌한 리듬을 도드라지게 하면서, 노래가 처지는 것을 막는 방법을 구사하고 있다는 말이다.

 

<누이>는 그럼 어떤가? 우선 먼저 남자에게 누이는 어떤 존재인가? 굳이 프로이드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누이는 어머니와 이미지가 겹쳐지는 존재가 아니겠는가? 다시 말하면, 남성이 성적 정체성을 형성해 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계기(대개는 무의식적인 차원이지만)를 가져다주는 존재라는 말이다. 황순원의 <별>이 바로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 소설인데, 작중 화자인 동생은 누이가 돌아가신 엄마를 닮았다는 말에도 반발할 정도이다. 그만큼 모든 남성에게 있어 어머니는 훼손되어서는 안 될 성스러운 존재인 것이다. 비록 현실의 어머니가 그렇지 못하더라도,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설운도의 <누이> 역시 그런 차원의 연장선상에 있음에 분명하다. 언제나 내겐 오랜 친구 같은, 사랑스런 누이가 무엇이겠는가?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이든 아니든, 모성에 근접한 존재가 아니겠는가? 마음이 외로워 하소연 할 때도, 사랑으로 내게 다가와, 예쁜 미소로 예쁜 마음으로, 내 마음을 감싸주던 누이, 라고 할 때 그것은 분명해진다. 이 노랫말에서 방점이 찍힐 곳은 당연히 ‘예쁜 미소’나 ‘예쁜 마음’ 따위가 아니다. ‘감싸다’가 훨씬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2절에서는 '달래다'로' 살짝 바뀐다.)래 그것은 어머니처럼 ‘감싸주던’이란 뜻에 가까우며, 그 안에서의 안온함을 성인이 된 남자도 잊지 못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좀 다른 면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매우 중요한데, 누구나 <누이>를 가볍게 들을 수 있게 하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설운도의 노래가 대중성을 갖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바로 거기에 숨어있다. 사적인 사연이 전혀 개입되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누이>에는 내밀함의 바탕이 되는 사적인 체험이 전혀 없다. 이를테면 이런 부류의 노래에 흔히 등장하는 ‘꽃반지’, ‘손톱에 봉숭아 물들이기’ 따위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저 누이는 예쁜 미소, 예쁜 마음, 정도로 형용될 뿐이다. 그래서 듣기에 전혀 부담이 없다.


창법도 그런데, 사적인 사연을 노래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르다.(사실 이 노래는 1절과 2절의 가사가 거의 동일하다. 어설프게 2절에서 가공의 사연을 끼워넣지 않는다는 말이다.) 교과서적이라는 말이 그 뜻을 정확히 규정하기 힘들지만, 분명히 교과서적인 측면이 있다. 물론 이 때 교과서적이라 함은 설운도에게 정규 음악 교육 과정과 비슷한 (무명 가수로 보낸 시간과는 다른 의미의) 훈련의 시간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일 터인데, 사실 그 점이 궁금했다. 그러나 그의 이력을 조금만 찬찬히 살펴보면 그 이면을 알게 된다. 먼저 그가 수준급의 작곡가라는 점. 이것은 그가 음악을 하나의 직업으로서 할 수 있는 수준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하나는 어려서부터 근대적인 음악적 토양에서 자랐다는 점. 구체적으로 말하면 근대적인 의미의 가수였던 어머니의 존재가 그의 음악의 밑바탕을 이룬다는 점이다. 매우 기초가 탄탄한 가수가 바로 설운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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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희정 wizbook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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