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

조용필, <킬리만자로의 표범>

국어의 시작과 끝 2007. 4. 17. 11:05

조용필, <킬리만자로의 표범>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 거리는 하이에나를
본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죽는 눈덮인
킬리만자로의 그표범이고 싶다
자고 나면 위대해 지고 자고나면 초라해지는
나는 지금 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고있다
야망에 찬 도시의 그 불빛 어디에도 나는 없다
이 큰 도시의 복판에 이렇듯 철저히 혼자 버려진들
무슨 상관이랴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호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한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야지
묻지마라 왜냐고 왜그렇게 높은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고독한 남자의 불타는 영혼을 아는이 없으면
또 어떠리


살아가는 일이 허전하고 등이 시릴때 그것을
위안해줄 아무것도 없는 보잘것 없는 세상을
그런 세상을 새삼스레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건
사랑때문이라구 사랑이 사랑을 얼마나 고독하게
만드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지
사랑만큼 고독해 진다는걸 모르고 하는 소리지
너는 귀뚜라미를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귀뚜라미를 사랑한다
너는 라일락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라일락을 사랑한다
너는 밤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밤을 사랑한다
그리고 또 나는 사랑한다 화려하면서도 쓸쓸하고
가득찬것 같으면서도 텅비어 있는 내청춘에 건배


사랑이 외로운건 운명을 걸기 때문이지
모든것을 거니까 외로운 거야
사랑도 이상도 모두를 요구하는것
모두를 건다는건 외로운 거야
사랑이란 이별이 보이는 가슴아픈 정열
정열의 마지막엔 무엇이 있나
모두를 잃어도 사랑은 후회않는것
그래야 사랑했다 할수 있겠지


아무리 깊은 밤 일지라도 한가닥 불빛으로
나는 남으리 메마르고 타버린 땅일 지라도 한줄기 맑은
물소리로 나는 남으리 거센 폭풍우 초목을 휩쓸어도
꺾이지 않는 한그루 나무 되리
내가 지금 이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했기 때문이야


구름인가 눈인가 저높은 곳 킬리만자로
오늘도 나는 가리 배낭을 매고 산에서 만나는 고독과
악수하면 그대로 산이 된들 또 어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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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의 찻집’ ‘Q’ ‘서울 서울 서울’ ‘바람이 전하는 말’ 그리고 ‘킬리만자로의 표범’의 공통점은 뭘까? 발표 당시 큰 인기를 얻었고, 아직도 노래방에서 사랑을 받는 노래. 

그것뿐일까? 아주 중요한 것 한 가지. 이 곡들은 모두 작사 양인자, 작곡 김희갑, 노래 조용필이라는 것이다.

조용필은 해방 이후 최고의 인기를 누린 대중음악계의 대표 뮤지션.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가수다. 그러나 양인자, 김희갑 부부 역시 해방 이후 우리 대중음악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콤비다. ‘타타타’(김국환), ‘사랑의 미로’(최진희), ‘알고 싶어요’(이선희), ‘립스틱 짙게 바르고’(임주리) 등 발표 당시 장안의 화제가 되었고, 지금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는 명곡들이 이 부부의 합작품이다.

노래마다 많은 사연이 있지만, ‘킬리만자로의 표범’만큼 화제가 된 작품도 드물다. 원래 이 노랫말은 노래를 만들 요량으로 쓴 것이 아니라고 한다. 시인이 대학시절 신춘문예에 거듭 낙방을 하고 있을 때, 나중에 당선되면 당선소감으로 쓸 생각으로 다방 구석에 틀어박혀 미리 써 둔 것이다. 거듭되는 신춘문예 낙방으로 자존심은 구겨질 대로 구겨지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자신의 처지를 위로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의미에서 쓴 노랫말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 노래는 음반에 수록되는 과정에서도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한다. 언뜻 봐도 대중가요의 노랫말로는 잘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분량도 지나치게 길어 음반사 실무진이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대중가요는 방송을 자주 타야 인기를 누릴 수 있는 것인데, 6분가량이나 되는 노래였으니 그럴 만도 했겠다. 그러나 음반사 대표가 듣고 감동하여, 전격적으로 음반 타이틀곡이 되었고, 결국 엄청난 호응을 얻어 불후의 명곡으로 자리매김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노래의 주제를 개념적으로 제시하는 것보다,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는 것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방송 당시 우리나라 남성들의 퇴근시간을 앞당겨버리는 바람에 술집 주인들이 울상을 지었다는 ‘모래시계’의 주인공 최민수. 그가 무명이던 시절 눈발이 날리는 한계령을 넘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를 듣고, 벅찬 감동 때문에 차를 멈추고 끝까지 들었다고 한다.

도대체 이 노래가 어떤 매력을 가졌기에 열혈남아(熱血男兒)인 최민수의 주행을 멈추게 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짙은 고독 그리고 남성적인 체취가 물씬 풍기는 도전정신 때문이었을 것이다. 소녀 취향의 사랑 이야기와 거리가 먼, 남성적 상상력이 꿈틀거리는 노랫말이 그를 사로잡았을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이 노래의 가치는 대단한 것이다.

또 하나. 이 노래에서는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하이에나를 대조시키고 있다. 하이에나가 비겁하고 초라한 남성을 의미한다면, 표범은 도시에서 야망을 불태우며 살아가는 고독한 남성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하이에나의 입장에서 이것은 명예훼손감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하이에나는 탁월한 사냥 능력을 갖춘 동물이다. 썩은 고기만을 찾아 헤맨다는 말은 사실과 다르다. 물론 이것이 이 노래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희정 <문학평론가|wizbook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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