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

윤수일, <아파트>

국어의 시작과 끝 2007. 4. 17. 11:00

윤수일, <아파트>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 숲을 지나
언제나 나를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너의 아파트

그리운 마음에 전화를 하면
아름다운 너의 목소리
언제나 내게 언제나 내게
속삭이던 너의 목소리

흘러가는 강물처럼 흘러가는 구름처럼
머물지 못해 떠나가버린 너를 못 잊어

오늘도 바보처럼 미련 때문에
다시 또 찾아왔지만
아무도 없는 아무도 없는
쓸쓸한 너의 아파트
흘러가는 강물처럼 흘러가는 구름처럼
머물지 못해 떠나가버린 너를 못 잊어

오늘도 바보처럼 미련 때문에
다시 또 찾아왔지만
아무도 없는 아무도 없는
쓸쓸한 너의 아파트
아무도 없는 아무도 없는
쓸쓸한 너의 아파트
아무도 아무도 없는 아무도 없는
쓸쓸한 너의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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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일의 ‘아파트’는 노래방 문화 초창기에 사랑을 받은 노래 중의 하나다. 어울려 부르기 편하고, 적당히 흥겹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좀 달리 살펴보면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아파트’의 문화사적 의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서울은 아파트 도시라고 할 만큼 공동주택 문화가 발달했다. 그런데 ‘아파트’는 전통 가옥이나 단독 주택과 다르다. 정형화, 표준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주거의 모든 공간이 같은 평면 위에 놓인다. 전통 가옥이나 단독 주택처럼 높낮이가 다른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파트의 내부 구조를 나타내는 데에는 평면도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처럼 모두가 한 눈에 드러나는 까닭에 비밀스러움이 사라져버린다.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공간의 부재는 많은 사람들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스러움을 안긴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냐고? 아파트가 얼마나 편한데 무슨 망발이냐고? 물론 그렇다. 평면 위에 규격화된 삶의 공간은 편리하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평면성에 익숙해져 입체성을 부담스러워 하는 세대가 이미 우리 사회의 중심을 이루었다.

윤수일의 ‘아파트’는 1980년대 아파트 세대의 내면 풍경을 노래한 것이다. 70년대 초반 남진이 ‘임과 함께’를 통해 노래한, ‘초원 위의 그림 같은 집’과 비교해 보면, 그것이 얼마나 현대적인 발상인지 알 수 있다.

‘아파트’에서 ‘언제나 나를 기다리’는 것은 다른 트로트 가요 노랫말의 전통적인 문법과는 달리 고향집, 고향역이나 어머니가 아니고 ‘아파트’다.

농경 문화를 배경으로 자란 세대와는 도시 문화를 배경으로 자란 세대의 상상력은 이렇게 다르다. 바야흐로 도시의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아파트를 그리워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윤수일의 ‘아파트’는 농경 사회가 산업 사회로 진입하는 과도기의 풍경을 노래하고 있다고 해야 옳다. ‘아파트’에 이르는 길에 별빛이 흐르고, 바람 부는 갈대 숲이 우거져 있다고 노래한 것이 그 증거이다. 도시 풍경이랄 수 없는 곳에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시쳇말로 ‘생뚱맞은 설정’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노랫말의 배경 설정보다 더 기묘한 것은 사람들이 그 설정을 어색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좀 달리 생각해 보면 그 이유 역시 명확하게 드러난다. 현실적인 편리함 때문에 아파트에 살지만, 심리적으로는 ‘저 푸른 초원 위의 그림 같은 집’을 꿈꾸고 있음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 그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윤수일과 같은 40·50대 세대에게 서울은 인생의 반 이상을 지낸 곳이지만, 여전히 고향이 아닌 ‘제2의 고향’일 뿐인 것이다. 도시가 제1의 고향인 세대가 우리 가요계에 등장하기까지는 윤수일의 ‘아파트’가 발표되고 10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하희정 <문학평론가|wizbook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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