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타는 여자 - 선유라 작사/오해균 작곡/유림 노래
1)살랑 살랑 봄바람에 갈색머리 흩날리며
예쁜두눈 찡긋하면 모두가 내남자
아~~나는 행복한 여자
갈매기도 즐거워라 파도치는 바닷가
모두가 내게 윙크하네~
모래알처럼 많고 많은 남자들중에
이번에는 당신 바로 당신 내가 널 콕 찍었어
2)산들 산들 갈대바람 내마음이 또 흔들려
마음잡고 만났는데 이남잔 아니야~
아~~바람타는 여자
몰아치는 겨울바람 내마음을 녹이려
또다시 찾아 나섰지만 ~~
조약돌처럼 많고 많은 남자들중에
내마음에 차는 사람없어 바람을 몰고가네
유치(幼稚). 이런 말 함부로 쓰면 안 된다. 맘먹고 다시 안 볼 생각이라야 쓸 수 있는 말이다.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어쩔 수 없다. <바람 타는 여자>는 참 유치하다. 예쁜 두 눈 찡긋하면 모두가 내 남자라니. 닭살 돋는다고 눈을 흘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듣고 있기 민망할 만큼 유치하지 않은가? 노랫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살랑 살랑, 산들산들. 민요조가 가미된 듯한 간드러진 목소리는 더 유치하다.
하지만 어떤가? 질문을 이렇게 바꾸어 보면 어떤가? 당신은 언제 제일 행복한가? 사실 행복이라는 것이 대단히 유치한 설정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공감하기 힘들다면 질문을 이렇게 바꾸면 어떤가? 연애를 해 보셨는가? 남들의 시선이 없는 둘 만의 공간, 둘 만의 시간에 여러분은 어떤 짓거리(?)를 하는가? 아무리 아름다운 연애질이라도 8할은 다른 사람이 본다면 정말 유치한 것으로 채워지지 않는가? 초원에서 토끼풀꽃을 귀에 꼿고 서로의 모습을 보고 히죽히죽 웃은 일. 모텔에서 이루어지는 일(에고고, 19세 이하 열람 불가도 아니고 이 쯤에서 그만하자.) 등등.
유치하다는 것과 아름답다는 것은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또한 쌍둥이처럼 닮은 것이 아닌가 말이다. 양극은 통한다는 말이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봄바람이나 꽃바람은 거의 같은 말인데, 이를 노래한 우리 가요가 제법 많다. 유림의 <바람 타는 여자>의 ‘봄바람’, 조승구의 <꽃바람 여인>의 ‘꽃바람’이 그렇다. 멀리는 조용필의 <꽃바람>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 노랫말은 모두 훌륭하지만, 발상 자체는 유치하다고 말해도 될 것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꽃바람이나 봄바람을 소재로 정말 진중한 내용의 노랫말을 만드는 일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봄바람이나 꽃바람이라는 소재가 시쳇말로 개폼 잡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 노래가 유치하다는 것은 말 그대로 비판일수만은 없다. 만약 그 유치함이 아름다움으로 승화된다면, 쉽게 따라 올 수 없는 미학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도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노래는 참으로 정직하다. 어떤 점에서 그런가? 여성의 내면에 가득한 아름다운 착각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살랑살랑 봄바람이 분다. 꽃바람이 분다. 그 봄날 젊은 여성이 남정네들이 모여 있는 바닷가를 거닐기라도 한다면, 아름다운 착각에 빠지지 않겠는가? 윙크라도 보낸다면 남자라면 금세 넘어올 것 같은 착각 말이다. 내가 널 콕 찍는다면, 넘어오지 않고 배길 수 있는 남정네는 없을 것이라는 착각 말이다. 봄바람에 바람 타는 여자의 마음이란 모르긴 모르겠으되,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또 그런 착각의 시간은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그저 착각일 뿐이라고, 꿈 깨라고 애써 일깨워 주는 괜한 수고는 필요 없다. 사실 이 여자가 즐기고 있는 것은 남정네의 관심 어린 시선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행복한 여자에게 남정네는 바닷가의 모래알일 뿐이고, 조약돌일 뿐이다. 행복, 그것은 아름다운 착각 그 자체로부터 말미암은 것이지, 객관적인 상황에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남정네의 시선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다. 남들이 알면 참으로 유치한 마음의 들뜸에 불과하지만, 그 유치한 감정이 얼마나 즐거운 것인지 다들 알지 않은가?
이 점에서 간드러지는 목소리도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남들의 귀와 눈이 완전히 제거된 상황에서 서로 행복해 하며 노래를 한다면, 한번 불러 보고 싶은 그런 창법이 아닌가 말이다. 연인, 그 둘 만의 시간에도 개폼을 잡는 사람이라면, 물론 예외다. 그러나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유치한 연애질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를. 그 유치한 기억이 얼마나 아름다운 추억이 되는가를.
하희정 대중가요평론가 wizbook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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