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

이은하, <봄비>

국어의 시작과 끝 2007. 4. 9. 18:28

이은하, <봄비>

 

 

 

봄비 속에 떠난 사람
봄비 맞으며 돌아왔네
그때 그날은 그때 그날은
웃으면서 헤어졌는데

오늘 이 시간 오늘 이 시간
너무나 아쉬워
서로가 울면서 창 밖을 보네
봄비가 되어 돌아온 사람
비가 되어 가슴 적시네

 

 

 

고려시대 문인 정지상의 ‘송인(送人)’은 이별의 서정을 노래한 절창이다. 이렇게 시작된다. “비는 그쳐 긴 둑에 풀빛은 짙고/남포에서 임 보내는 슬픈 노래 울리네.” 비에 씻긴 푸른 강둑과 임을 보내는 서러운 마음이 호응을 이뤄 애상감을 극대화하고 있다. 

봄비가 내릴 때의 애상감은 그 자체로 너무나 시적이다. 예민한 촉수를 가진 시인이 그것을 놓칠 리 없다. 우리 가요에도 비를 소재로 한 노래는 숱하게 많다. 봄비를 노래한 것도 적지 않은데, 이은하의 ‘봄비’가 그중 가장 아름답다. 사실 노랫말보다는 가수 이은하의 노래가 더 좋은데, 봄비가 내리는 날 홀로 창밖을 보며 한번 감상해보자. 정지상의 ‘송인’에 버금가는 감흥이 절로 인다.


노랫말도 찬찬히 음미해보면 단정하고 아름답다. 이렇게 시작된다. “봄비 속에 떠난 사람/봄비 맞으며 돌아왔네.” 단순해 보이지만, 세 가지의 해석이 가능하다. 우선 봄에 떠난 사람과 재회했다는 해석이다. 

이는 산문적 해석에 해당한다. 다음 봄비를 애상감의 상징으로 읽을 수 있다. 봄비가 내리는 날 애절한 추억에 잠긴다는 뜻일 게다. ‘떠난 사람’은 연출일 뿐이며, 테마는 ‘봄비’라고 보는 것이다. 이것이 운문적 해석이다.


마지막으로 원형적 해석은 어렵지만 재미있다. 도대체 봄비 맞으며 돌아오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사는 한번 경험되면 되돌릴 수 없는 것이기에 돌아오고 말고 할 여지가 없다. 

그렇지만 자연사는 좀 다르지 않은가? 계절적 순환으로 인식될 여지가 있다. 봄에 돌아오는 것은 생명이다. 봄비가 내리면 꽃이 피거나 새싹이 새롭게 돋아나기에 하는 말이다.


그렇다. 돌아온 것은 사람이 아니라, 봄 그 자체인 것이다. 그렇다면 뭔가? 웃으면서 헤어졌는데 다음에 생략되어 있는 말 ‘오늘은 너무 슬퍼’나 ‘오늘 이 시간/오늘 이 시간/너무나 아쉬워’는 무엇이라는 말인가? 산문적으로 해석해보면 쉽다. 그리 어렵지 않게 잊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웃으며 헤어졌다. 

그런데 다시 만나고 보니 한없이 마음이 아프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재결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래서 서로가 울면서 창밖의 봄비만 하염없이 바라본다는 내용이다. 물론 여기서 창은 마음이고, 봄비는 마음속에 흐르는 눈물이겠다.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멜로드라마 그 자체다.


그러나 그뿐이 아니라는데 이 노래의 매력이 있다. 앞서 이야기한 ‘떠난 사람’과 ‘봄비’의 관계처럼 ‘너무나 아쉬워’와 ‘오늘 이 시간’의 관계 역시 뒤쪽에 무게중심이 있다. 진정한 테마는 ‘오늘 이 시간’이다. 그래서 이은하도 노래할 때 ‘너무나 아쉬워’는 살짝 죽이고, ‘오늘 이 시간’에 무게를 싣는다.


왜 그럴까? 봄은 실은 애잔함 그 자체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만물의 소생을 재촉하는 봄비가 내리는 장면인데, 왜 그러냐고? 그렇다면 엘리엇의 ‘황무지’를 인용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해야겠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추억과 욕정을 뒤섞고/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겨울이 오히려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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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희정 문학평론가|wizbook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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