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

조경수, <칭기스칸>

국어의 시작과 끝 2007. 4. 3. 18:33

조경수, <칭기스칸>

 

     

        그 언젠가 누군가가 들려주던 이야기
        나라 위해 몸을 바친 아름다운 이야기
        약한 자를 도우며 사랑했네
        슬픈 자는 용기를 주었다네
        내 맘 속의 영웅이었네
        징, 징, 징기스칸
        하늘의 별처럼 모두가 사랑했네
        징, 징, 징기스칸

        내 작은 가슴에 용기를 심어 줬네
        겁이 많던 내게 와하하하
        용기를 주었네 와하하하
        내 맘 속의 영웅이었네
        징, 징, 징키스칸
        하늘의 별처럼 모두가 사랑했네
        징, 징, 징기스칸
        내 작은 가슴에 용기를 심어 줬네
        겁이 많던 내게 와하하하 
        용기를 주었네 와하하하
        꿈과 용기 간직하리라

 

 

그는 마음에 드는 여자마다 자기 천막으로 데리고 갔다. 사람들은 말했다. 그를 사랑하지 않은 여자는 이 세상에 없었다고. 그는 하룻밤에 7명의 자식을 만들었고, 자신의 적들에 대해서는 단지 비웃기만 했다. 왜냐면 아무도 그의 힘에 저항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뜬금없이 무슨 엽기적인 이야기냐고. 몽고 제국을 건설한 칭기즈칸 이야기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조경수가 번안하여 부른 ‘징기스칸’의 원곡 노랫말의 일부분이다. 가수 조경수가 누구냐고. 신세대에게는 영화배우 조승우의 아버지라고 하면 얼른 떠오를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조승우의 아버지이기 이전에 70년대 ‘돌려 줄 수 없나요’ 등으로 널리 알려졌던, 요즘 말로 ‘꽃미남’ 가수였다. 그가 번안곡으로 소개한 ‘YMCA’는 요즘 꼭짓점 댄스와 더불어 자주 방송을 타고 있기도 하다.

원곡의 노랫말과 조경수의 ‘징기스칸’은 많이 다르기 때문에, 별개로 다루는 것이 맞다. 그렇지만 발표 당시나 지금이나 칭기즈칸을 찬양하는 노래는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칭기즈칸의 몽골 제국과 고려의 관계 때문에 그렇다. 우리 민족은 몽골 제국에 처참하게 짓밟혔던 불행한 역사를 갖고 있다. 따라서 몽골 기병의 담대한 기상이 아무리 대단한 것이었다 할지라도, 그저 찬양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렇다고 해도 사정은 거의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러한 고민을 조경수라고 하지 않았을 턱이 없다. 또 하룻밤에 7명의 자식이니 뭐니 하는 엽기적 행각을 그대로 옮길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노래하고 싶었을까? 노랫말은 그 의도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 언젠가 누군가가 들려주던 이야기, 나라 위해 몸을 바친 아름다운 이야기.’ 칭기즈칸의 이야기가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칭기즈칸은 ‘내 맘 속의 영웅’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들이 칭기즈칸을 추앙하는 노래를 부르게 된 외면적 이유라면, 약한 자를 도왔으며, 슬픈 자에게 용기를 주었다는 것은 내면적인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칭기즈칸이라는 노래의 진정한 매력은 이런 상투적인 영웅 찬양의 노랫말에 있지 않다. 그것은 ‘하 후 하(ha-hu-ha)’라는 조흥구에 있다. 유목 민족 특유의 남성적이고 대륙적인 조흥구가 젊은이를 매혹한 것이다. 그것은 거친 초원을 힘차게 달리는 말의 호흡을 연상시킨다. 또 그것은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이상을 위해 내닫는 말의 질주와 같은 굳센 영혼을 연상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약소민족의 젊은이들에게 바로 그러한 야망을 심어 주고 싶었던 것임에 분명하다.

아니 근데 이게 무슨 인연이란 말인가. 그의 아들 조승우를 세상에 널린 알린 영화 ‘말아톤’이 바로 그 달리고 싶은 욕망을 다룬 영화가 아닌가. 광야를 거침없이 달리는 얼룩말이 되고 싶은 초원이 이야기가 ‘말아톤’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아버지 조경수는 아들의 영화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육신의 장애, 현실적 장애를 탓하지 말라. 큰 이상을 위해 필요한 것은 진취적인 기상, 굳은 의지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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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희정 <문학평론가/wizbook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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