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이별

혜은이, <열정>

국어의 시작과 끝 2007. 4. 7. 09:43

   혜은이, <열정>

 

 

 

안개속에서 나는 울었어

외로워서 한참을 울었어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받고 싶어서

 

들판에 서서 나는 울었어

외로워서 한참을 울었어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받고 싶어서

 

만나서 차마시는 그런 사랑 아니야

전화로 얘기하는 그런 사랑 아니야

웃으며 안녕하는 그런 사랑 아니야

 

가슴 터질듯 열망하는 사랑

사랑때문에 목숨거는 사랑

 

같이 있지 못하면 참을 수 없고

보고 싶을때 못보면 눈멀고마는

 

활화산처럼 터져 오르는

그런 사랑 그런 사랑

 

 

 

6980

 

''나 열렬하게 사랑했고 열렬하게 상처받았고 열렬하게 좌절했고 열렬하게 슬퍼했으나, 모든 것을 열렬한 삶으로 받아들였다. 하느님, 이제 그만 쉴래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등의 소설로 잘 알려진 작가 공지영의 말이다. 사후(死後)에 누군가 작가의 평전을 써준다면 머리에 올리고 싶은 말이란다. 그녀가 노래방에 간다면 무슨 노래를 부를까? 혜은이의 ‘열정’이 썩 잘 어울리지 않을까?

그녀는 ‘열렬(熱烈)’이라는 말을 다섯번씩이나 반복하고 있다. 이쯤 되면 그녀에게 ‘사랑’은 ‘열렬’과 동의어인 셈이다. 20대 젊은 나이의 사랑이라면 그럴 성싶다. 그러나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그럴까? 50대, 60대에도 사랑은 여전히 열렬과 동의어일까? 혹 그런 열렬한 사랑을 한다손 치더라도, 주변에서 빈정거리지나 않을까?

그렇다면 도대체 열렬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1970~80년대식 답변이 다름 아닌 ‘열정’이다. 우선 노래는 열정이 결여된 사랑을 부정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만나서 차 마시는 그런 사랑 아니야. 전화로 얘기하는 그런 사랑 아니야. 웃으며 안녕하는 그런 사랑 아니야.’ 그리고 나서 열정 그 자체인 사랑을 노래한다. ‘가슴 터질 듯 열망하는 사랑. 사랑 때문에 목숨 거는 사랑. 같이 있지 못하면 참을 수 없고, 보고 싶을 때 못 보면 눈멀고 마는 활화산처럼 터져 오르는 그런 사랑.’

은유적으로 말하면 활화산 같은 사랑이 참사랑이며, 산문적으로 말하면 목숨을 거는 사랑이 참사랑인 셈이다. 이를 두고 뜨거운 사랑, 즉 여름 사랑이라고 할 만하다. 가슴 설레는 첫사랑은 봄 사랑에 해당할 터이다. 그렇다면 가을 사랑은 어떻게 노래해야 할까?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눈부시지 않은 갈꽃 한 송이를 편안히 바라볼 때와 같습니다. 내가 끝없이 무너지는 어둠 속에 있었지만, 이제는 조용히 다시 만나게 될 아침을 생각하며 저물 수 있습니다.’ 시인 도종환은 가을 사랑을 이렇게 노래한 바 있다. 보지 못하면 미쳐버릴 것 같은 ‘열정의 사랑’과 가을 사랑은 이렇게 다르다. 편안하고 조용하게 사랑은 깊어만 간다. 이 차이는 20대와 40대의 거리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최근 많은 후배 가수들이 혜은이의 노래를 리메이크하여 부르고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2% 부족하다. 아직 녹슬지 않은 아름다운 목소리의 혜은이. 서정주 시인이 노래한 바와 같이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은 성숙한 아름다움이 여전한 혜은이. 이제 그녀에게 성숙한 가을 사랑의 노래를 기대해 보면 안될까? 이런 기대를 갖게 되는 것은 서두에서 언급한 공지영의 최신작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이다. 어떤가?  우리가 혜은이에게 ‘열정 후에 오는 것들’쯤에 해당하는 멋진 노래를 기대해도 괜찮지 않겠는가? 

하희정 <문학평론가|wizbook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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