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이별

방실이 슈퍼 주니어 <첫차>

국어의 시작과 끝 2007. 4. 10.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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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안개 헤치며 달려가는/첫차에 몸을 싣고 꿈도 싣고/내 마음 모두 싣고 떠나갑니다. /당신을 멀리멀리/이루지 못할 사랑이라면/내가 먼저 떠나가야지/꿈같은 세월 짧았던 행복/생각이 나겠지만/아쉬운 정도 아쉬운 미련도/모두 다 잊겠어요./새벽안개 헤치며 달려가는/첫차에 몸을 싣고 꿈도 싣고/내 마음 모두 싣고 떠나갑니다. / 당신을 멀리멀리

(Rap)멀리멀리 떠나갈 그대가 떠나가니/마음이 아파와 쓰리고 지쳐가/쓰라린 상처 고스란히 두고 가니/첫차에 몸을 실어 맡겨/ 차차 시간 흘러 잊어/사랑하는 그대였지만/아쉬워도 사랑해도 떠나가야죠.

멀어지는 당신을 생각하면/가슴을 적셔오는 지난추억/어차피 잊어야할 사람인 것을/이토록 슬퍼질까/ 이루지 못할 사랑이라면/내가 먼저 떠나가야지/꿈같은 세월 짧았던 행복/생각이 나겠지만/아쉬운 정도 아쉬운 미련도/모두 다 잊겠어요./새벽안개 헤치며 달려가는/첫차에 몸을 싣고 꿈도 싣고/내 마음 모두 싣고 떠나갑니다./당신을 멀리멀리/당신을 멀리멀리

 

첫차야 막차의 반대말이고, 그날 맨 처음에 출발하는 차를 말한다. 정해진 노선을 왕래하는 교통수단이라면 기차건 버스건 종류는 상관하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어떤가? 아무래도 버스보다는 기차가 첫차라는 말에 썩 어울리지 않은가. 왜 꼭 기차여야 하느냐고? 요즘 인기 개그도 있거니와, 그렇게 묻는다면 “아무 이유 없어!”라고 해야겠다. 그래도 이유를 한번 대보라고 한다면, ‘새벽안개 헤치며’ 정도가 아닐까? 새벽안개 속을 달리는 버스는 좀 을씨년스러운 반면, 기차라면 썩 낭만적이라고 하면 안 될까? 너무 감상적이라고 따진다면야, 뭐 달리 할 말은 없다.


우리 가요에는 첫차와 막차가 참 많이 등장한다. 첫차는 이 노래에도 등장하니 더 거론할 것도 없고, 막차라면 하남석의 ‘하얀 손을 흔들며 입가에는 예쁜 미소 짓’고 떠난 <막차로 떠난 여인>이 있질 않은가? 그렇다면 왜 하필 첫차거나 막차인가? 우선 첫차나 막차 말고 그 중간에 끼인 차를 일컫는 말이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 첫째 이유일 것이다. 그것 말고는 딱 이렇다 할 이유가 없을까? 이렇게 말해도 되지 않을까? 그냥 떠나는 것이 아니라 사연이 있음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말이다. 사연이 있어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미련이 남아 있어 몸을 차에 싣지 못하다가 첫차나 막차로 떠나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 점에서 막차는 그 이유가 분명해진다. 미루고 미뤘는데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막차를 탄 것일 터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막차와 달리 첫차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물론 쉽게 답할 수도 있다. 미련이 아주 많이 남아서 막차도 놓치고 밤을 새운 다음 첫차를 타는 것이라고. 그렇지만 그런 쉬운 답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그 이상의 의미는 없을까? 당연히 없지 않을 터. 미련을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겠다고 마음으로 다짐하면서 떠난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따라서 막차와 달리 첫차는 ‘어쩔 수 없이 떠남’을 의미하는 동시에, ‘새롭게 출발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새벽안개라는 배경은 그 떠남과 출발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설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별의 장면인데, 안개가 아름답다고 반문할 사람이 있을 법하다. 물론이다. 이 장면에서 안개가 아름다운 것일 수만은 없다. 그것은 젊은 날의 방황을 동시에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개 속이라는 것은 통상 방향을 알 수 없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뭔가 손에 잡힐 것 같은데, 잡히지 않고, 어디로 가야할 지도 모르는 상황에 가장 잘 어울리는 소재가 안개인 것이다.


물론 <첫차>에서는 그 젊은 날의 정신적 방황을 드러내 놓고 강조하지 않는다. 그 방황의 시기를 ‘꿈같은 세월 짧았던 행복’이라는 간명한 구절로 일축해 버리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사랑이 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는데, 일장춘몽처럼 덧없는 것이었더라는 말이다. 좀 싱겁지 않느냐고, 맞는 말이긴 하지만 너무 상투적이지 않느냐고 불만을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그렇게 이야기하면 이 노래를 부른 가수 방실이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방실이는 ‘새벽안개 헤치며 달려가는 첫차’의 생동감을 노래한 것이지, 애초부터 지난밤의 고뇌를 강조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노래를 리메이크한 슈퍼주니어는 좀 다르지 않은가? 랩을 주목해 보라. 방실이가 행간의 여백에 남겨두었던 부분을 들추어내서 노래하고 있지 않은가? ‘마음이 아파와 쓰리고 지쳐가/쓰라린 상처 고스란히 두고 가니’라고 절절하게 떠나는 이의 심경을 노래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어쩌랴? 그렇게 사연을 이야기해 버리니, 더 어색하지 않은가? 새벽안개와 금속으로 만들어진 기차라는 소재가 공유하는 ‘싸늘함’을 연상시키는 것만으로 심경이 다 전해졌었는데 말이다. 이를 두고 우리는 말은 해야 맛이라는 말도 있지만, 할 말을 다해버리고나면 오히려 싱겁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아참 첫 질문에 대한 답이 또 하나 떠오르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왜 버스는 아니고 기차냐는 질문 말이다. 생각해 보니 그렇지 않은가? 새벽안개의 차가움과 금속의 차가움, 그러니까 기차가 더 잘 어울린다고 말이다. 맞다. 세상에는 아무 이유 없는 것은 없는 모양이다.

 

하희정 문학평론가 wizbook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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