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이별

방의경, <불나무>

국어의 시작과 끝 2007. 4. 4. 17:44

방의경, <불나무>

 

 

산꼭대기 세워진 이 불나무를
밤바람이 찾아와 앗아가려고
타지도 못한 덩어리를 덮어버리네
오 그대는 아는가 불꽃송이여
무엇이 내게 죽음을 데려와주는가를 음~ 
덩그러니 꺼져버린 불마음 위에
밤별들이 찾아와 말을 건네어도
대답 대신 울음만이 터져버리네
오 그대는 아는가 불꽃송이여
무엇이 내게 죽음을 데려와주는가를 음~
산 아래 마을에도 어둠은 찾아가고
나돌아갈 산길에도 어둠은 덮이어
들리는 소리 따라서 나 돌아가려나
오 그대는 아는가 불꽃송이여
무엇이 내게 죽음을 데려와주는가를 음~

                                

 

 

 1970년대 초반 대중가요사에서 통기타 가요를 빼놓고는 이야기가 안된다. 그것은 청년 문화의 상징이자, 억압적 체제에 의해 강요된 대중문화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었다. 당시 청년 가요의 중심에 서 있던 김민기, 서유석, 송창식, 윤형주, 박인희, 양희은 등과 통기타를 어떻게 떼놓고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통기타 문화의 특징은 화려한 반주 음악보다는 가수의 육성이 중심에 놓인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름다운 음색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1세대 통기타 가수 방의경, 그녀의 이름은 대중으로부터 거의 잊힌 듯하다. 그녀가 일찍 미국으로 이민을 가버린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음반을 몇 장 내놓지 못했다는 것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와 같이 대중음악을 했던 지인들 말고도, 그녀의 노래를 지극히 사랑하는 마니아는 적지 않다. 중고 음반 시장에서 방의경의 음반은 희귀 음반으로 통하며, 시쳇말로 부르는 것이 가격이라는 풍문이 그것을 확인시켜 준다.

방의경의 노래와 김민기, 양희은의 노래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김민기의 노래는 깊지만 너무 무겁다. 무겁게 어둠을 노래했다고나 할까? 방의경의 노래는 김민기의 경우와는 달리 현실의 질곡을 노래하면서도 맑다. 물론 맑지만 가벼움과는 거리가 멀다. 양희은의 노래와 비교해 보면 어떨까? 양희은의 노래 역시 맑고 산뜻하다. 그렇지만 양희은의 노래는 근본적으로 비유의 세계인 반면, 방의경의 노래는 상징의 세계다. 양희은은 희망을, 방의경은 어둠을 노래했다고 하면 너무 지나친 단순화인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히 그런 측면이 있다.

제목이 국어사전에 없는 신조어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그래서 불순하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방송 금지곡이 된 ‘불나무’는 그녀의 노래가 갖는 특징을 잘 보여준다. 노래는 이렇게 시작된다. “산꼭대기 세워진 이 불나무를/밤바람이 찾아와 앗아가려고/타지도 못한 덩어리를 덮어버리네/오 그대는 아는가 불꽃송이여/무엇이 내게 주검을 데려와 주는가를.” 언뜻 보아도 상징성이 강한 노랫말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불나무’ ‘밤바람’ ‘주검’ 등이 그렇다. 산꼭대기의 불나무를 찾아와 앗아가려는 ‘밤바람’의 함축적 의미는 분명하다. 군사정권의 폭정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그 불순함(?) 때문에 금지곡으로 묶인 것일 터이고.

방의경의 노래가 김민기의 노래와 달리 맑은 상징으로 가득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김민기의 노래가 물의 상상력에 기반을 두었다면, 방의경의 노래는 불의 상상력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면 안 좋을까?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김민기의 ‘친구’)은 분명히 물의 상상력, 더 정확히 말하면 어두운 물의 상상력에 기반을 둔 것이다. 한편 방의경은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덩그러니 꺼져버린 불마음 위에/밤별들이 찾아와 말을 건네어도/대답대신 울음만이 터져버리네.” 이처럼 방의경은 어둠 속에서 환한 불마음을 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녀에게 있어 어둠은 혼이며, 나아가 혼은 불인 것이다. 불은 예로부터 정화의 상징이었다. 불에 의해 정화된 혼, 방의경의 노래를 두고 맑은 어둠의 세계라고 말할 수 있다면, 바로 이런 차원이 아니겠는가? 

 

 

하희정 <문학평론가|wizbook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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