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이별

김현식, <골목길>

국어의 시작과 끝 2007. 4. 7. 10:36

김현식, <골목길>

 

7006


 

골목길 접어들 때에 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
커튼이 드리워진 너의 창문을

말없이 바라 보았지

수줍은 너의 얼굴이 창을 열고 볼 것만 같아

마음을 조이면서 너의 창문을

말없이 바라 보았지

만나면 아무 말 못하고서

헤어지면 아쉬워 가슴 태우네

바보처럼 한마디 못하고서

뒤돌아 가면서 후회를 하네 (허이)


 

골목길 접어들 때에 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

커튼이 드리워진 너의 창문을

말없이 바라 보았지
만나면 아무 말 못하고서

헤어지면 아쉬워 가슴 태우네

바보처럼 한마디 못하고서

뒤돌아 가면서 후회를 하네 (허이)

 

골목길 접어들 때에 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

커튼이 드리워진 너의 창문을

말없이 바라 보았지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그리워 나도 몰래 발이 머물고, 오히려 눈에 띌까 다시 걸어도, 되오면 그 자리에 서졌습니다. 이은상 작시, 현제명 작곡으로 잘 알려진 ‘그 집 앞’이라는 가곡의 노랫말입니다. 노랫말을 따라 그저 흥얼거리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감미로운 노래가 됩니다. 노랫말의 묘미를 살려 곡에 자연스럽게 얹는 작곡가의 솜씨가 탁월하다고 할 수밖에. 하지만 그 뿐이겠는가?

 

저에게도 엇비슷한 추억이 있기 때문이라고 솔직히 말해야겠네요. 하지만 저만 그렇겠습니까? 누군가에게 연정을 품었던 추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이 갈 것입니다. 학창시절 동네 처자에게 또는 동네 총각에게 연정을 품고, 또 그 여자네 집 또는 그 남자네 집 앞을 서성거린 적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요즘 말로 로맨틱한 ‘설정’이 아닌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시적 상황 아닙니까? 그러나 요즘 아파트 세대에게는 이런 골목길의 추억이 없습니다. 담장 너머로 장미가 고개를 내민 골목길, 낙엽이 지는 골목길을 홀로 걷는 추억이 없습니다. 사정이야 어떻든 안타까운 일이지요.


우리 가요라고 골목길의 추억이라는 좋은 소재를 놓칠 리 없지요. 저로서는 많은 골목길 노래 중 김현식의 ‘골목길’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이 노래를 처음 부른 가수가 누구인지 잘 모르고, 또 많은 후배 가수가 리메이크해서 부른 것을 알지만 김현식의 노래가 가장 인상적인데, 여러분은 어떤가요? 골목길 접어들 때에 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 커튼이 드리워진 너의 창문을 말없이 바라보았지. 수줍은 너의 얼굴이 창을 열고 볼 것만 같아. 마음을 조이면서 너의 창문을 말없이 바라보았지. 이 노래 역시 이은상의 ‘그 집 앞’과 비슷하게 시작됩니다. 다들 기억하시겠지요.


 

이런 상상을 한번 해 볼까요. 이 노래를 여자 가수가 부르면 어떨까요? 저로서는 잘 안 어울린다는 느낌입니다. 이 노래를 잘 소화하는 여자 가수도 많은데,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지요. 여러분은 남자가 아닌 여자가 짝사랑하는 남자 친구의 집 앞 골목길에서 서성거리는 풍경이 어쩐지 낯설지 않나요? 그런 허접한 이유뿐이냐고요? 물론 아닙니다. 좀 색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골목길, 어둡고 좁은 호젓한 골목길, 그 어귀에서는 누구나 가슴은 설레고 서성거리게 되는 골목길, 걷다보면 나도 모르게 다시 오게 되는 그 골목길, 그것은 야릇한 성적 상징이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 때문입니다. 커튼이 드리워진 너의 창문을 말없이 바라보았지. 수줍은 너의 얼굴이 창을 열고 볼 것만 같아. 마음을 조이면서 너의 창문을 말없이 바라보았지. 그런 다소 불순한(?) 상상력으로 이어지는 노랫말을 보면 더 야릇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쯤 해야겠지요. 더 이야기하면 페미니스트들이 날을 세우고 비판을 가해올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를 두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천박하게 공부한 결과라고 비판이라도 해 온다면 저는 당해낼 재간이 없기도 합니다. 혹시라도 그런 비판이 가해진다면, 저는 이장희의 ‘불 꺼진 창’과 조영남의 번안곡 ‘딜라일라’를 거론할 생각입니다.


김현식의 ‘골목길’은 분명히 ‘불 꺼진 창’과 ‘딜라일라’의 7080 버전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밤 나는 보았네. 그녀의 불 꺼진 창을 희미한 두 사람의 그림자를 오늘 밤 나는 보았네. 누군지 행복하겠지 무척이나 행복할거야. 그녀를 만난 그 사내가 한 없이 나는 부럽네. 불 꺼진 그대 창가에 오늘 나 서성거렸네. ‘불꺼진 창’의 노랫말입니다. ‘딜라일라’도 설정이 유사하다는 것은 다들 아시지요. 사실 제가 ‘골목길’을 두고 성적 상징 운운하게 된 까닭은 바로 ‘불 꺼진 창’과 ‘딜라일라’에 8할의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희정, 대중문화평론가, wizbook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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