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숙,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
너를 보내는 들판에 마른 바람이 슬프고/내가 돌아선 하늘엔 살빛 낮달이 슬퍼라./오랫토록 잊었던 눈물이 솟고/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여/ 가거라, 사람아 세월을 따라/모두가 걸어가는 쓸쓸한 그길로//이젠 그 누가 있어 이 외로움 견디며 살까/이젠 그 누가 있어 이 가슴 지키며 살까/아 저하늘에 구름이나 될까/너있는 그 먼땅을 찾아 나설까/사람아 사람아 내 하나의 사람아/이 늦은 참회를 너는 아는지/사람아 사람아 내 하나의 사람아/이 늦은 참회를 너는 아는지
인순이, 김현식, 이은미의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임희숙 그리고 <진정 난 몰랐네>,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를 기억할 것 같다. 남부럽지 않을 만큼의 팬을 가진 가수임에도 방송에서 그녀는 뜸하게 볼 수 있을 뿐이다. 요즘은 이른바 섹시함으로 주목받거나 엔터테이너에 가까운 가수의 상품성이 더 높은 탓일 것이다. 하지만 임희숙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애써 시간을 내서라도 미사리나 백운호수의 라이브 카페에 가서 임희숙의 노래를 듣고야 말 것 같다.
그녀의 노래는 분명히 라이브 카페에까지 팬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인순이나 이은미의 노래도 그렇지만, 다들 흑인음악인 소울(soul)에 뿌리를 두었기 때문이라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소울에는 영혼을 뒤흔드는 강렬함이 있고, 그것에 한번 미치면 다른 음악은 (물론 아무 근거 없이) 시시껄렁해 보이기 십상이다. <열애>를 부르는 윤시내와 함께 하기라도 한다면, 무대가 꽉 차 버릴 것 같다. 그들처럼 해야 노래 참 잘한다는 소릴 들을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노래방에 가면 제법 가창력이 있고 무대 체질인 친구들은 으레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 또는 그런 류에 속하는 노래를 열창을 한다. 그렇지만 주위의 반응이 늘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좋은 노래를 다 망친다고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딴지를 거는 친구가 있었던 것 같다. 소울풍의 노래는 듣기는 좋지만, 아마추어가 제대로 소화하기란 사실 쉽지 않다. 임희숙의 노래에 열광하는 사람이 적지 않음에도 기대만큼의 대중성을 획득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이다. 방송 매체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고.
이 노래 역시 따라 부르기가 쉽지만은 않은데, 그럼에도 대중성을 획득하여 널리 알려져 있다. 그 근본적인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너무 평범한 설명 같지만, 노랫말과 소울의 아름다운 만남이라고 하면 안 될까? 보라, 너를 보내는 들판에 마른 바람이 슬프고, 내가 돌아선 하늘엔 살빛 낮달이 슬퍼라. 얼마나 시적인가? 하지만 나로서는 시적인 것을 인정할 뿐, 그저 그렇겠지 하는 느낌뿐이다. 별다른 감흥이 일지 않는다. 말이 되는 말인지 모르지만, 지나치게 시적이어서 전형적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하지만 이어지는 구절은 말 그대로 빼어나다고 할 수밖에. 등을 휘게 만들 것 같은 삶의 무게, 그리고 그 무게에 짓눌린 채 흘리는 ‘오랫동안 잊었던 눈물’의 솟구침. 이러한 시적 감정은 살아가다가 불현듯 느껴지는 어떤 것이 아닌가? 햇살도 따스한 어느 날 텅 빈 집에서 설거지를 하다가 불현듯, 사무실에서 장부를 맞추다가 창밖의 하늘을 쳐다보다가 불현듯 등등. 그런 경험이 있지 않았냐고 덧붙이고 싶지 않다. 일상 속에서 어느 날 불현듯 살빛 낮달처럼 속절없이 처량한 자신의 영혼을 느끼고, 자기도 모르게 속 깊은 눈물을 쏟은 적이 있는 사람이 적지 않을 터. 공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물결치는 외로움. 저 먼 땅으로 떠나버리고 싶기도 하고, 저 하늘의 구름이 되어버리고 싶기도 했던 경험이 진정 한 번도 없는가? 내가 너무 늦은 참회를 하고 있구나 하고 한량없이 서럽던 경험이 한 번도 없는가? 감히 말 하건데, 그렇다면 그것은 영혼이 없는 사람이다. 그것은 비유컨대 설탕의 단맛밖에 안 나는 커피이고, 그것은 참으로 허무한 인생이다. 한 번 더 잘난 체 한다는 비난을 감수한다면, 삶의 허무함을 모르는 삶이야말로 참으로 허무한 것이 아니던가?
〈하희정|문학평론가 wizbook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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