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

의사진술과 시적 허용

국어의 시작과 끝 2011. 10. 5. 23:58

 

(1) 의사진술(擬似陳述

 

어떤 진술(陳述)의 가치는 대개 해당 진술과 그 진술이 지시하는 바의 일치 여부에 따라 판가름할 수 있다. 그러나 시적 진술을 두고 과학적․실증적 차원에서 그 진위(眞僞)를 논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시적 진술은 과학적 진리를 설명하는 담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적 진술의 경우는 시인의 상상력, 정서가 더 중요하다. 이때 과학적․실증적 차원을 넘어서는 시적 진술을 의사진술(擬似陳述)이라고 한다.

 

 

- 동쪽 먼 심해선(深海線) 밖의/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금수(錦繡)로 굽이쳐 내리던/장백(長白)의 멧부리 방울 뛰어,/애달픈 국토의 막내/너의 호젓한 모습이 되었으리니,//창망(蒼茫)한 물굽이에/금시에 지워질 듯 근심스레 떠 있기에/동해 쪽빛 바람에/항시 사념(思念)의 머리 곱게 씻기우고,//지나 새나 뭍으로 뭍으로만/향하는 그리운 마음에,/쉴 새 없이 출렁이는 풍랑 따라/밀리어 오는 듯도 하건만,//멀리 조국의 사직(社稷)의/어지러운 소식이 들려 올 적마다,/어린 마음 미칠 수 없음이/아아, 이렇게도 간절함이여!//동쪽 먼 심해선 밖의/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유치환, <울릉도>

 

(2)시적 허용

시적 허용(Poetic License)의 상위 개념은 예술적 허용이다. 즉 시학에서는 시적 허용이라 하고, 극예술에서는 극적 허용, 서사문학에서는 소설적 허용이라는 용어를 쓴다. 어느 경우든 이 용어는 사실 뒤틀기, 언어적 관습 뒤틀기, (어구 바꾸기 등을 통한) 기존 예술 텍스트 뒤틀기라는 의미를 갖는다.

시적 허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전적으로 시적 허용은 시인에 의한 규범의 왜곡이다. 둘째, 시적 허용은 독자가 관용 또는 수용할 수 있도록 기획된다. 셋째, 기존 표현으로 메워지지 않는 부분을 채운다는 점에 유용성이 있다. 넷째, 의도적인 차원에서 시도될 수고 있고, 무의식중에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일본말과 아리비아 글씨를 가르치러 간

조그만 이 페스탈로치야, 꾀꼬리 같은 선생님이야.

날마다 밤마다 섬 둘레가 근심스런 풍랑에 씹히는가 하노니,

은은히 밀려오는 듯 머얼리 우는 오르간 소리……‥‥

-정지용, <오월 소식> 중에서

 

위 시의 발표 당시(1927년) 마지막 시행은 “은. 은. 이 밀려오는 듯 머얼리 우는 오ㄹ간 소리”이다. 이 시구는 일상적인 언어적 규범으로부터 일탈해 있다. 물론 시인에 의한 왜곡이며, 독자가 관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기획된 것이다. 또 일상적인 표현이 수행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어떤 것을 표현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유용성이 있다. 시적 허용이다. ‘은. 은. 이’가 그렇고, ‘머얼리’가 그렇다.

그러나 ‘오ㄹ간 소리’를 시적 허용이라고 한다든지, ‘은은히’를 ‘은은이’로 한 것이 시적 허용이라고 한다면, 판무식(判無識)한 소리가 된다. 단지 오늘날의 맞춤법과 다르다는 것이 시적 허용은 아니며, 근본적으로 위에서 언급한 시적 허용의 기본 요건으로부터 동떨어진 이야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