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

김영랑의 「연 1」을 읽으면서

국어의 시작과 끝 2011. 4. 30. 03:25

 

김영랑의 「연 1」을 읽으면서

<조매롭다>와 <조마조마>

 

 

 

 

 

 

김영랑은 박용철, 정지용, 이하윤 등과 창간한 동인지 『시문학』(1930)에서부터 본격적인 시 창작 활동을 보여준다. 그의 초기 시들은 『영랑시집』(1935)으로 묶여지고 있거니와 서정적 자아의 깊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비애의 정감을 섬세한 율조의 언어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의 시에는 '슬픔'이나 '눈물'과 같은 시어가 수없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과장적인 수사에 의한 영탄이나 감상에 기울지 않고, 오히려 균제된 언어로 표현되는 정감의 시세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김영랑의 시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섬세한 언어적 감각과 그 언어 감각을 시적 율조로 살려내는 리듬 의식이다. 그의 시의 언어적 율조는 결코 시인 자신의 내적 정서의 흐름만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아니다. 김소월의 시에서 느낄 수 있는 율조가 시인의 내적 정서의 흐름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김영랑의 경우는 시적 언어 자체의 음성적 자질과 연관된 리듬 감각을 살려내는 조형성이 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시적 언어는 율조를 형성하기 위해 결코 시적 형태에 구속당하는 법이 없다. 1920년대 이후 서정시들은 대개 리듬의 형성을 위해 시적 형태에 매달려 시행의 구분과 시의 연을 나눔에 어떤 규칙성을 부여하고자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김영랑의 경우는 그가 초기시에서 즐겨 만들어낸 1연 4행의 형태 이외에 다양한 시 형식을 실현하고 있다. 이것은 자유시로서의 서정시가 추구하는 시적 정서의 긴장과 이완을 자연스럽게 구현하고자 했던 그의 노력의 소산이었다고 할 수 있다.

 

 

김영랑의 시 가운데 우리에게 낯익은 풍경을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으로 「연」이라는 시가 있다. 자신이 추구해 온 시적 형태의 균제미(均齊美)를 구현하면서 그 특유의 정감의 세계를 그대로 드러낸다. 해방 직후에 나온 『영랑시선』에 수록되어 있는 이 작품은 어린 시절의 꿈과 그 소박한 아름다움을 함께 담고 있다. 파란 하늘 높이 연을 날리며 함께 들떠 있던 심정을 이처럼 밀도있게 그려낸 작품도 드물다. 원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내 어린날!

아슬한 하늘에 뜬 연같이

바람에 깜박이는 연실같이

내 어린날! 아슨풀 하다

 

 

하늘은 파―랗고 끝없고

편편한 연실은 조매롭고

오! 힌연 그새에 높이

아실아실 떠놀다 내어린날!

 

 

바람이러 끊어지든날

엄마 아빠 부르고 울다

히끗 히끗한 실낫이 서러워

아침 저녁 나무밑에 울다

 

 

오! 내 어린날 하얀옷 입고

외로히 자랐다 하얀 넋 담ㅅ고

조마조마 길가에 붉은발자옥

자옥마다 눈물이 고이였었다

 

 

--- 「연 1」

 

 

이 작품에서 그려지고 있는 시적 정황은 지나버린 어린 시절 추억의 한 자락으로 이어지고 있는 연날리기이다. 파란 하늘에 높이 떠오른 연은 아련한 추억으로 서정적 자아의 가슴에 남아 있다. 하늘 끝에 닿는 것처럼 높이 연이 떠오를수록 어린 가슴을 조바심치게 만든 것은 팽팽하게 느껴지던 연실의 감촉이다. 그것은 파란 하늘을 마음껏 날고 싶었던 동심의 설렘을 함께 드러낸다. 그러나 바람이 세게 불어서 연실이 끊어지고 높이 날았던 연이 어디론가 떠나가버리면 마음 한자락은 그 연을 따라가고 나무 가지에 걸친 연실처럼 아쉬움은 서러움처럼 늘어진다.

 

 

이 시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는 것은 <파란 하늘>과 <흰 연>과 <길가에 붉은 발자욱>이라는 시적 심상의 대조이다. 이같은 시적 심상의 대조는 아스라한 어린 시절의 추억을 시적 정황으로 끌어들여 보다 구체화시켜 주면서 동시에 그 내면의 공간을 확대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늘 높이 아슬하게 떠돌던 <흰 연>은 이미지 자체의 역동성을 섬세한 감각으로 구현한다. 그것은 <아실 아실 떠놀다 내 어린 날>이라는 구절에서 곧바로 시적 자아와 정서적 일체감을 형성한다. 그리고 <하얀 옷>과 <하얀 넋>이라는 정신적 가치와 결합되어 시적 변용을 거침으로써 어린 시절의 꿈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게 된다. 여기서 <파란 하늘>이 무한한 꿈과 동경의 세계를 의미한다면, <흰 연>은 아슬하게 하늘로 떠오르던 어린 가슴과 그 소망을 의미한다. 그리고 <붉은 발자욱>은 꿈을 접은 후에 현실 속에서 살아온 힘들었던 삶의 자취라고 규정해 볼 수 있다. 연실에 매달려 하늘 높이 떠돌던 <흰 연>이 더욱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그것이 이미 사라져버린 꿈과 동경을 향한 발돋움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다시 한번 음미해 보면 하늘 높이 떠오른 연을 쳐다보며 팽팽하게 느껴지는 연실의 감촉을 동심의 떨림으로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는 다음과 같은 시구가 눈에 들어온다.

 

 

 

파란 하늘은 파―랗고 끝없고

편편한 연실은 조매롭고

오! 힌연 그새에 높이

아실아실 떠놀다 내어린날!

 

 

이 구절에서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이 <편편한 연실은 조매롭고>의 <조매롭다>라는 말이다. 이 시어는 흔히 볼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팽팽하게 드리운 연실이 바람에 끊어질까봐 조바심치던 초조한 어린 가슴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런데 이 말은 다시 <오! 내 어린날 하얀옷 입고 / 외로히 자랐다 하얀 넋 담ㅅ고 / 조마조마 길가에 붉은발자옥 / 자옥마다 눈물이 고이였었다>에서 두드러지게 사용된 <조마조마>와 연결되어 있다.

 

<조매롭다>라는 말은 한글학회의 『우리말 큰사전』이나 이희승 편 『국어대사전』에 올라있지 않다. 최근 국어연구원이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조마롭다>라는 말을 표준어로 삼아 <조마롭다 : 매우 조마조마하거나 조마조마한 데가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조매롭다>는 <조마롭다>의 방언일 가능성이 높으며, 마음이 초조하거나 불안한 모양을 나타내는 <조마조마>라는 말과 그 뿌리가 같다고 할 수 있다. <조매롭다>가 <조마조마>에서 파생된 것인지 그 반대의 경우에 해당하는지 따지기는 어렵지 않지만, 이 두 개의 시어를 하나의 작품 안에서 이렇듯 유별나게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롭다. 이 작품에는 하늘 높이 떠 있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연의 모습과 머리 속에 어렴풋하게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함께 그려내기 위해 <아슬한 하늘에 뜬 연같이> <내 어린날! 아슨풀 하다> <아실아실 떠놀다 내어린날!> 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도 <아슬한> <아슨풀 하다> <아실 아실>과 같이 유사한 의미를 공유하고 있는 어원이 비슷한 말들을 함께 활용하고 있다. 시적 언어에 대한 김영랑의 깊은 관심을 확인해 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할 것이다.

 

<조매롭다>는 말은 김영랑의 다른 시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마음을 조리며 초조해하는 서정적 자아의 내면 심정을 긴장감 있게 그려내는 대목들이다. 다음의 작품을 보자.

 

 

북으로

북으로

울고 간다 기러기

 

 

남방의

대숲 밑

뉘 휘여 날켰느뇨

 

 

앞서고 뒤섰다

어지럴 리 없으나

 

 

가냘픈 실오라기

네 목숨이 조매로아

--<가야금>

 

 

이 작품에서 <가냘픈 실오라기 / 네 목숨이 조매로아>라는 마지막 구절은 시적 주제가 집약된 부분이다. 이것은 끊어질 듯 이어지는 가냘픈 가야금의 선율을 의미하기도 하고 그러한 소리 가락을 만들어내는 가야금 자체의 모습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서정적 자아의 형상을 투영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조매롭다>는 시어가 바로 이 구절에서 그 의미 기능을 풍부하게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김영랑이 자주 썼던 4행시 가운데 <님두시고 가는길의 애끈한 마음이여 / 한숨쉬면 꺼질듯한 조매로운 꿈길이여 / 이밤은 캉캄한 어느뉘 시골인가 / 이슬같이 고흰눈물을 손끝으로 깨치나니>(사행시. 30)에도 <조매롭다>라는 말이 등장한다. <조매롭다>라는 말이 시어로서 제대로 자리잡고 있음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