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의 의미 변화
언어는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수된다. 그 과정에서 조금씩이나마 끊임없이 변한다. 예를 들면, 중세 국어에서 ‘얼굴’은 ‘형상’을 뜻하는 말로 ‘형체’라는 뜻이었으나, 현대국어에서 ‘얼굴’은 ‘낯’만을 가리키게 되었다. 또 최근에는 ‘거의 같다’는 뜻의 ‘근사(近似)하다’에 ‘그럴듯하게 괜찮다’는 의미가 덧붙었다. 물론 언어는 사회적 약속인지라 개인이 함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언어는 고정적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단어의 의미 변화가 일어나는 유형은, 그 원인에 따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원인에 따른 의미 변화의 분류>
(1) 역사적인 원인에 따른 의미 변화
말소리는 그대로 있는데, 그것이 지시하는 내용이 시대 변화라는 원인 때문에 변하는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면, ‘지갑(紙匣)’이라는 단어는 원래 종이로 만든 것만을 가리켰지만, 요즘은 가죽이나 헝겊 등으로 만든 것까지를 가리키게 되었다. ‘지갑’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바뀐 것이다.
① 지시물 자체의 변화
- 언어 형태는 유지되고 있으나 지시 대상이 바뀐 경우
예) 배[거룻배, 돛단배>발동선 추가>증기선 추가>핵잠수함 추가)/영감[관리나 귀족>노인이나 법관>/바가지[박으로 만든 것>플라스틱으로 만든 것 추가]
② 지시물에 대한 지식의 변화
- 언어 형태는 유지되고 있으나 지시물에 대한 지식이 변한 경우.
예) 하늘[원(圓)>공(空)]/땅[방(方)>원(圓)]/해가 뜨고 진다.[천동(天動)>지동(地動)]
③ 지시물에 대한 정의(情意)의 변화
- 언어 형태와 지시 대상에 변화는 없으나, 그 대상에 대한 사람들의 느낌이 바뀐 경우
나일론[새롭고 좋은 것>좋지 않은 것, 사이비(似而非)]/ 탈북자>새터민(어형과 의미가 함께 변함)
(2) 언어적 원인에 의한 의미 변화
음운이나 단어의 형태 또는 통사 구조와 같은 언어 내적인 요소가 의미 변화의 원인이 되는 경우이다. 언어적 원인은 전염과 생략, 민간 어원과 같은 언어 현상에서 그 예를 찾아 볼 수 있다.
① 전염
- 어떤 단어가 특정 단어와 빈번히 어울리다보니, 한 단어에 다른 단어의 의미가 전이, 감염되는 경우.
예) ‘전혀, 별로’(부정적인 뜻의 서술어와 어울리다 보니 부정적인 의미가 전이, 감염됨),
② 생략
- 병행하는 단어 중 한 단어가 생략되고 남겨진 단어가 생략된 단어의 뜻까지 갖게 되는 경우
예) 콧물(이 흐른다) →코(가 흐른다), 미니스커트→ 미니, 아침밥→아침, 교통 경찰→교통, 핵무기→핵, 머리털→머리, 에어컨디셔너→에어컨
③ 민간어원
-민간에서 속설로 믿어지고 있는 어원에 따라 단어의 의미가 바뀌는 경우.
예) 쵸마>행주치마, 아설>까치설
(3) 사회적 원인에 의한 의미 변화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계층이나 조직에 따라 말의 의미가 달라지는 경우이다. 특수 집단에서 사용하던 말이 일반 사회에 적용되는 경우도 있고, 일반 사회에서 사용하던 말이 특수 집단에 적용되는 경우도 있다.
예)
- 의미의 특수화 (일반 사회 → 특수 집단): 출혈[→재정적 손해](금융권), 맛[→변화의 여지](바둑계), 표리(表裏)[→옷의 겉감과 안감](궁중),
- 의미의 일반화(특수 집단 → 일반 사회) : 왕[→일인자], 장군멍군하다[→논쟁하다], 대타(代打)[→대행자], 도사[→특출한 사람], 수술(手術)[→근본적 개혁], 망나니[사형 집행 등을 하던 사회적 신분이 낮은 사람→막된 사람], 선생[가르치는 사람→존대의 대상이 되는 사람]
(4) 심리적 원인에 따른 의미 변화
- 화자의 심리적 특성이나 경향에 의해서 일어나는 의미 변화를 말한다. 심리적 원인은 유사성에 의한 것과 금기(禁忌)에 의한 것으로 나뉜다.
예)
- 유사성 : 따발총[→말을 빨리 하는 사람], 빨갱이[→공산당원], 씨[식물 종자→동물 번식의 근원], 바가지[→철모], 죽다[생물의 죽음→(시계 등의) 멈춤]
- 금기 : 변소[편안한 곳→대소변을 보도록 만들어 놓은 곳], 산신령[→호랑이], 천연두[→마마], 돌아가시다[→죽다], 불편하다[→아프다]
<결과에 따른 의미 변화의 분류>
단어의 의미는 변화 결과가 보여주는 양상에 따라, 의미의 확장과 축소로 또 개량적 변화와 경멸적 변화로 분류할 수 있다.
(1) 의미의 확대
단어가 본뜻을 유지하는 가운데, 그 사용 범위가 넓어지는 경우를 말한다. 환언하면 단어의 외연적 의미가 확대되는 것이 의미의 확대이다.
예)
다리[동물의 다리→무생물의 다리], 선생[교육자→존대 받을 만한 사람], 지갑[종이로 만든 것→비닐, 가죽으로 만든 것], 먹다[음식을 삼키다→마시다, 피우다, 품다]
(2) 의미의 축소
본뜻을 유지하는 가운데, 그 사용 범위가 좁아지는 경우를 말한다. 환언하면 단어의 외연적 의미가 좁아지는 것이 의미의 축소이다.
예) 얼굴[몸 전체→안면(顔面)], 놈(䎛)[일반적인 남녀→‘사람’을 홀하게 이르는 말], 계집[일반적인 여자→‘여자’를 홀하게 이르는 말], 여위다[생물 무생물에 걸쳐 널리 사용→사람, 동물에만 사용]
한편 ‘예쁘다’[중세 국어로는 ‘어엿브다’]와 같은 경우는 의미의 확대나 축소로 보기 어려우며, 이런 경우는 ‘의미 이동’ 또는 ‘의미의 전이’라 한다. 예) 어리다[어리석다→나이가 적다], 다[값이 나가다→값이 헐하다]
(3) 개량적 의미 변화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단어가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 단어로 바뀌거나 중립적인 의미를 지닌 단어로 바뀌는 경우를 말한다. 달리 ‘의미의 향상’이라고도 한다.
예) 공갈(恐喝)[과격성 상실→거짓말], 장인(匠人)[비천한 계급→전문적인 사람]
(4) 경멸적 의미 변화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 단어나 중립적인 의미를 지닌 단어가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단어로 바뀌는 경우를 말한다. 달리 ‘의미의 하락’이라고도 한다.
예) 놈(䎛)[일반적인 남녀→‘사람’을 홀하게 이르는 말], 계집[일반적인 여자→‘여자’를 홀하게 이르는 말], 외도(外道)[다른 종교→불륜], 마담[결혼한 여인→술집 여자]
'국어문법강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담화(談話)와 발화(發話) (0) | 2011.05.27 |
---|---|
문장의미론 : 문장의 의미 관계 (0) | 2011.05.26 |
단어 간의 의미 관계, 그 유형에 대하여 (1) | 2011.05.26 |
의미의 여러 유형 (0) | 2011.05.25 |
언어의 의미에 대한 다양한 학설들 (0) | 2011.05.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