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법강의

언어의 의미에 대한 다양한 학설들

국어의 시작과 끝 2011. 5. 25. 04:12

 

의미의 의미

 

 

언어는 말소리와 의미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의미는 말소리와 달리 구체적 실체가 아니라, 심리적 실체이다. 말의 의미를 한 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것은 이 때문이다. 그 결과 의미의 실체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큰 줄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지시설(referential theory)

 

한 언어 표현이 갖는 의미는 그 언어 표현이 지시하는 지시물이라는 설이다. 이와 같은 견해는 고유명사와 같이 고유한 개체를 갖는 언어 표현에서는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지시물을 지시할 수 없는 단어들, 예를 들면 ‘사랑, 평화, 추억’ 등과 같은 추상명사나, ‘잊다, 이해하다, 그리워하다, 어렵다’ 등과 같이 추상적인 개념을 가진 용언들에 대해서는 설득력이 약하다.

 

또 ‘도깨비, 용, 가시나무새’ 등과 같은 그 명칭은 있으나 실제로 존재하는 지시물이 없는 단어들은 의미가 없다고 설명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른다. 나아가 ‘샛별’과 ‘개밥바라기’는 동일 지시물인 ‘금성’을 달리 표현한 것으로 내면적인 의미가 다르다. 그런데도 지시설에 따를 때는 지시 대상이 같기 때문에 그 의미가 같다고 해야 하는 난점이 있다.

 

 

 

② 개념설(conceptual theory)

 

언어 표현과 지시물을 직접적 관계로 설명하지 않고, 둘 사이에 심리적 영상 즉 개념이라는 매개체가 있다고 보는 설이다. 예를 들면, ‘개’라는 말소리를 듣거나 글자를 보면 사람들은 머릿속으로 어떤 심리적 영상을 떠올린다. 그 영상이 곧 ‘개’라는 언어 표현의 의미라는 것이다. 이처럼 언어표현의 의미를 심리적 실체로 파악하는 입장을 개념설이라 하는데, 잘 알려진 오그덴 & 리차즈의 의미 삼각형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이 그림에서 기호와 지시물 사이에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즉 단어 ‘꽃’과 그것이 지시하는 우리 주변의 ‘나무’와의 사이에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점선으로 표시하고 있다.

 

개념설은 실제적 대상이 없어도 우리가 그 의미를 생각해 낼 수 잇다는 장점이 있다. 이 점에서 개념설은 지시설의 약점을 극복한 것이다. 하지만 개념설은 다음과 같은 한계가 있다.

첫째, 개념이나 심리적 영상에 있어 개인적인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사랑’에 대한 심리적 영상이 연령대별로 모두 다르다. 이 점은 ‘사랑’의 개념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어렵게 만든다.

둘째, 개념이나 심리적 영상이 잘 떠오르지 않는 언어 표현도 많다. 예를 들면, ‘그러나, 그리고, 그래서’ 등과 같은 접속부사나 ‘은/는, 을/를, 에게, 처럼’ 같은 조사의 의미는 그 심리적 영상을 구체화하기 어렵다.

 

 

③ 행동설(behaviorism theory)

자극반응설이라고도 한다. 이 설에 따를 때, 언어 표현의 의미는 말하는 사람에 의한 발화가 말을 듣는 사람에게 일으키는 반응이다. 다음 예화를 통해 살펴 보자.

 

 

철수와 영호 형제가 함께 길을 가고 있다. ㉠허기를 느끼던 동생 영호가 담 너머 사과를 발견한다. 그리고 ㉡형에게 “사과 좀 따 주실래요.”라고 말한다.철수는 영호의 말을 듣는다. 그리고 ㉣담장에 올라가 사과를 따서 준다.

 

 

㉠은 언어 행위 이전의 실제 사건으로서의 ‘자극[S]’이다. ㉡은 ㉠의 자극에 의해 촉발된 반응[r]으로 언어 행위이다. ㉢은 ㉡의 언어 행위에 의해 듣는 이에게 가해지는 자극[s]이다. ㉣은 언어 행위 이후의 실제적 사건[R]이다. 결국 언어 표현[r…s]의 의미는 그것을 동반하는 화자의 자극과 청자의 반응을 통해 알 수 있다. 결국 행동설에서 말하는 의미는 화자가 그 표현을 발화하는 상황과 그 표현이 청자로부터 유도되는 반응이다.

 

행동설은 상황에 대한 화자의 언어적 반응과 청자의 반응이 늘 일관성 있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약점이 있다. 예를 들면, 비가 오는 상황에서 화자는 “우산 좀 주렴.”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창문 좀 닫아.”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화자가 “비가 오네.”라고 말한 것에 대해 청자가 우산을 가져다주거나 창문을 닫아 줄 수도 있지만, 한숨을 내 쉬거나 집에 전화를 할 수도 있다. 요컨대, 이 견해에 따를 때 언어 사용은 너무 변화무쌍하여 일관성 있는 의미 설명이 쉽지 않아진다.

 

 

④ 용법설(use theory)

단어가 일정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견해를 인정하지 않고, 안어가 사용되는 구체적인 맥락에서의 용법이 그 단어의 의미라고 보는 설이다. 비트겐슈타인이 단어의 용법을 장기짝의 쓰임새에 비유하여 설명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즉 ‘마(馬)’의 의미를 결국 그것이 장기판에서 어떻게 운용되는가를 가지고 설명해야 하듯, 단어의 의미 역시 같은 방식으로 설명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설은 언어의 사용적 측면을 중시하는 쪽에서는 큰 지지를 받는다. 특히 접속부사나 조사 등의 의미는 용법설에 따를 때, 가장 설득력인 의미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한계 또한 뚜렷한데, 그것은 변화무쌍한 용법을 모두 일일이 열거하여 설명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이다. 예컨대, 국어의 ‘것’의 용법만 다 설명하려고 해도 사전은 수십 쪽을 할애해야 할 것이다.

 

 

⑤ 의의관계설(sense relation theory)

 

언어 표현의 의미를 의의(sense)로 이해하는 이론이다. J. 라이온스가 제기한 이론인데, 그는 우선 어휘소의 의미를 지시와 의의로 구별한다. 지시(denotation)란 어휘소가 가리키는 외연을 말하고, 의의는 어휘소들 사이의 관계를 말한다. 어떤 어휘소의 의의는 해당 어휘소가 다른 어휘소와 맺고 있는 의미 관계를 통해 드러난다.

따라서 이 설을 지지하는 쪽에서는 단어들 간의 관계 즉 상하관계, 반의관계, 유의관계 등을 중시한다. 예를 들어, ‘할머니’의 의미는 다른 어휘소인 ‘할아버지, 인간, 여자, 조모(祖母)’ 등과의 의미 관계를 통해 규정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설은 단어들 간의 관계 속에서 단어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지만, 그 자체로 완전한 의미 기술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1951)은 비엔나에서 태어나 캠브리지에서 숨을 거둔 유대계 영국 철학자다. 그를 20세기가 낳은 가장 독창적인 철학자라고 평가하는 이유는 현대철학의 특징인 이른바 '언어적 전환'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그는 원래 공학도였으나 차츰 물리학과 수학에 심취했고, 다시 '수학의 기초'라는 분야를 연구하다 영국으로 건너가 러셀(B. Russell)을 만나 본격적으로 철학적 탐구를 전개한다. 이 무렵 출간한 것이 분석철학의 성전으로 일컬어지는 <논리철학논고>이다.

비트겐슈타인은 그 후 잠시 철학계를 떠나 남부 오스트리아의 외딴 산촌에서 초등학교 교원생활을 한다. 이 시기에 그는 새로운 언어관을 갖게 되고 캠브리지로 돌아와 전혀 다른 종류의 철학적 탐구에 몰입한다. 그 결과물이 후기의 사상을 집약한 <철학적 탐구>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초기에 언어의 본질은 논리이고, 논리적으로 잘 다듬어진 언어는 존재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일종의 그림이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철학의 임무는 이러한 그림을 찾아내는 언어비판의 성격을 띄게 된다. 그러나 그는 후기에 들어와서 그러한 작업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언어의 본질이라는 것은 없으며, 그것은 언어적 표현과 그 표현을 통한 행위와 그러한 행위들로 구성된 상황 등으로 엮어진 다양한 '게임'일 뿐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이러한 언어관에 따라 그의 철학관도 변모하게 됐다. 그는 여전히 철학은 언어비판을 통한 개념의 명료화라고 믿었으나 그것은 '논리 형식'의 차원을 넘어 인간의 '생태 형식'을 근원적으로 드러내는 광범위한 작업이 된 것이다. 이것이 곧 현대철학의 언어적 전환을 완성시킨 후기 사상의 핵심적 내용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언어분석을 통한 비판철학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삶과 존재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바라볼 것을 유도한다. 그것은 전통적인 서양철학의 체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거점이 될뿐만 아니라 동양철학에서 강조하는 일상성과 자연성을 부각시킴으로써 일종의 신비주의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를 현대의 철학자라기보다 앞으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미래의 철학자'로 평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의 철학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이 시대의 큰 특징, 즉 문명적 차원에서의 정보화와 문화적 차원에서의 다원화에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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