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의 의미
단어들 간에 의미 관계가 성립하듯, 문장들도 의미 관계를 가진다. 단어들 간의 의미 관계와는 별도로 문장들 간의 의미 관계를 별도로 논의하는 이유는 문장의 의미가 그 구성 요소인 단어의 의미를 단순힌 합한 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어떤 문장을 구성하는 단어들의 의미를 모두 합하면 문장의 의미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문장의 의미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그것은 그것을 구성하는 부분들의 의미와 그것들이 결합하는 통사 규칙에 의해 결정된다. 예를 들어, “경찰이 강도를 잡았다.”라는 문장의 의미가 “강도가 경찰한테 잡혔다.”와 의미상 다른 것은 문장을 구성하는 통사 규칙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 ‘합성성의 원리’라고 한다. 즉 단어들의 의미로부터 문장의 의미가 도출되는 원리가 합성성의 원리이다.
그렇다면 문장의 의미를 결정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잡았다’와 ‘잡혔다’에서 보듯 서술어이다. 문장의 의미 구조를 크게 명제와 양상으로 분리할 수 있다고 할 때, 국어의 경우 양상 표현이 주로 서술어와 결합하여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에서 예로 든 문장의 의미가 다른 것은 명제의 차원에서는 의미가 같다하더라도, 서술어를 통해 드러나는 양상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1) 유의 관계 문장
㉠ 김 선생님의 무남독녀(無男獨女)가 결혼을 했다.
㉡ 김 선생님의 아들도 없는 하나뿐인 딸이 결혼을 했다
'무남독녀(無男獨女)'를 환언(換言, paraphrase)하여, ‘아들도 없는 하나뿐인 딸’이라고 표현한 경우이다. 중심의미를 그대로 두고 표현만 바꾼 것이다. 이 두 문장의 관계를 동의 관계 라 한다. 물론 두 문장의 의미가 완벽하게 같은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래서 보통 동의문을 유의문에 포함시켜 분류한다.
유의문은 어휘적 유의문과 통사적 유의문으로 나뉜다.
㉠ 그에게는 부쳐 먹을 논밭이 없다./그에게는 부쳐 먹을 전답(田畓)이 없다.
㉡ 철수는 김 선생님의 제자이다./철수는 김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다.
㉢ 우리 학교 영어 선생님은 남자이다./우리 학교 영어 선생님은 여자가 아니다.
㉣ 서점은 식당 우측에 있다. / 식당은 서점 좌측에 있다.
㉤ 철수가 영희한테 자전거를 샀다./ 영희가 철수에게 자전거를 팔았다.
㉤ 그는 이번에도 시험에서 떨어졌다. /그는 이번에도 미역국을 먹었다.
㉠은 유의어(또는 동의어)를 이용한 유의문이다. ㉡은 단어 환언(換言)에 의한 유의문이다. ㉢은 상보 반의어를 이용한 유의문이다. ㉣,㉤은 방향 반의어에 의한 유의문이다. ㉥은 관용 표현을 이용한 유의문이다. 결국 어휘적 유의문이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같지만(=진리치는 같지만), 화자가 선택하는 어휘가 다름으로 해서 생기는 유의문이다. 동의문이라 하지 않고 유의문이라고 하는 이유는 어감(語感)과 초점(焦點)이 다소 다르기 때문이다.
㉠ 고양이가 쥐를 잡았다./쥐가 고양이에게 잡혔다.
㉡ 철수는 동생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철수는 동생과의 약속을 못 지켰다.
㉢ 철수는 영희가 부자라고 생각한다./ 철수는 영희를 부자라고 생각한다.
㉣ 철수가 영희에게 꽃을 선물했다./영희에게 철수가 꽃을 선물했다.
㉤ 우리는, 비가 와서, 집에 있었다. /비가 와서, 우리는 집에 있었다.
㉠은 태(態, voice)의 변화에 따른 유의문이다. ㉡은 단형 문장(짧은 부정, 짧은 피동 등)과 장형 문장(긴 부정, 긴 피동 등)의 변화에 따른 유의문이다. ㉢은 문장 구조의 변화에 따른 유의문이다. ㉣,㉤은 어순 변화에 따른 유의문이다.
그런데 유의문처럼 보이나 유의문으로 보기 어려운 것들도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 철수가 학교에 안 갔다./철수가 학교에 못 갔다.
㉡ 그는 불쌍하게 죽었다/불쌍하게 그는 죽었다.
㉠ 의지 부정과 능력 부정의 차이이다. 유의문이 아니라 반의문으로 봐야 한다. ㉡을 유의문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죽는 방법이 불쌍하다는 것과 죽은 것 자체가 불쌍하다는 차이가 있어 유의문으로 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 문장 부사에서 이런 문제가 자주 생긴다.
(2) 반의 관계 문장
㉠ 철수는 장미를 좋아한다./철수는 장미를 싫어한다.
㉡ 그는 키만 크다./그는 키도 크다.
㉠의 경우 반의 관계에 있는 서술어의 사용으로 반의 관계 문장이 되었다. 대부분의 반의문은 바로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은 보조사의 사용에 따른 반의문이다. 드물지만 이런 경우도 있다.
반의문과 관련하여 주목할 것은 부정문이다. 긍정문의 반의문은 부정문이다.
㉠ 철수가 밥을 먹고 학교에 갔다.
㉡ 철수가 밥을 안 먹고 학교에 갔다.
㉢ 철수가 밥을 먹고 학교에 가지 않았다.
㉡은 짧은 부정문이고, ㉢은 긴 부정문이다. 둘 다 긍정문인 ㉠과 반의 관계에 있는 부정문이다. 그런데 ㉡과 달리 ㉢은 중의적인 의미를 나타낸다. 즉 ㉡은 부정어가 ‘먹다’를 부정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은 ‘먹다’를 부정하는 것인지, ‘갔다’를 부정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유의문의 경우는 여러 문장이 동시에 해당될 수 있으나, 반의문의 경우는 하나의 문장에 반드시 하나의 반의문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3) 중의문
하나의 문장이 둘 이상의 의미로 해석 가능할 때, 중의문이라 한다. 중의성(ambiguity, 또는 애매성)이 있는 문장이라고 한다. 문장의 중의성이 유발되는 요인은 문장 내적인 것일 때도 있고, 문장 외적인 것일 때도 있다. 언어 표현 내적인 중의성에는 어휘적 중의성, 구조적 중의성, 영향권 중의성 등이 있다. 또 발화 상황에서 일어나는 중의성은 언어 표현 외적인 중의성에 해당하는데, 달리 화용론적 중의성이라고 한다.
㉠ 철수가 차를 준비했습니다./철수의 집이 형편없이 되었다.
㉡ 철수가 교복을 입고 있다./가슴에 이름표를 달았다.
㉢ 선생님이 보고 싶은 학생이 많다./하 박사가 김 간호사와 환자를 둘러보았다.
㉣ 철수가 사랑하는 친구의 동생을 만났다./노란 모자를 쓴 어머니와 딸이 웃고 있다.
㉤ 그는 아내보다 야구를 더 좋아한다./그는 철수보다 영호를 더 사랑한다.
㉦ 그 사람은 건방지게 말하지 않았다./학생이 모두 오지 않았다.
㉧ 모든 소녀들이 한 소년을 사랑한다./열명의 사냥꾼이 한 마리의 새를 총으로 쐈다.
㉠은 동음이의어로 인해 생긴 중의성이다. ‘차(車)’일 수도 있고, ‘차(茶)’일 수도 있다. 또 ‘집’이 ‘건물’일 수도 있고, ‘가세(家勢)’일 수도 있다. ㉡은 ‘쓰다, 매다, 감다, 얹다, 짚다, 타다’ 등 접촉성 동사에서 흔히 보이는 중의성이다. 동작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고, 상태를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이상은 모두 어휘적 중의성에 해당한다.
㉢은 서술어에 호응하는 주어의 범위가 서로 다름으로 인해 발생하는 중의성이다. ㉣은 수식의 범위가 다름으로 해서 생기는 중의성이다. ㉤은 비교의 대상인지 비교의 주체인가가 불분명하여 생긴 중의성이다. 이상은 모두 구조적 중의성에 해당한다.
㉦은 부정의 범위가 불분명해서 생긴 중의성이다. 부정문에는 이런 유형이 아주 흔하다. ㉧은 양화사(量化詞)의 작용 영역이 불분명해서 생긴 중의성이다. 소녀는 한 명일 수도 있고 여러 명일 수도 있다. 새는 한 마리일 수도 있고, 열 마리일 수도 있다. 이상은 모두 영향권 중의성에 해당한다.
한편 다음과 같은 예는, 그 자체로는 중의성이 없다고 해도, 어떤 상황에서 발화되느냐에 따라 중의성을 가질 수 있다.
예) 저 목장에 한우 열 마리가 있어요.
명제적 의미 그대로의 진술일 수 있다. 그러나 한우 소유를 자랑하는 말일 수도 있고, 한우가 뛰쳐나와 다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말일 수도 있다. 아니면 아직 재산이 다 날아간 것은 아니라는 말일 수도 있다. 나아가 모든 한우가 죽은 것은 아니라는 말일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여기 있던 한우가 저 목장에 옮겨져 있다는 말일 수도 있다. 물론 더 많은 상황을 설정할 수 있다. 이러한 중의성은 화용적 중의성이라 한다.
<중의성의 해소>
문장은 홀로 쓰이기보다 문맥 속에서 사용되며, 발화 역시 특정 상황에서 사용되기 때문에 많은 중의성은 어렵지 않게 해소된다. 그러나 중의문의 존재는 어떤 형태로든 의미상의 혼동을 가져와 원활한 의사소통에 장애가 된다. 그래서 중의성의 해소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중의성의 해소가 필요할 때는 주로 다음과 같은 방법을 쓴다. 첫째, 짧은 휴지(休止)를 나타내는 반점(=쉼표)을 찍어 준다. 예를 들어, ㉢의 경우 “하 박사가, 김 간호사와 환자를 둘러보았다.”처럼 하거나 “하 박사가 김 간호사와, 환자를 둘러보았다.”처럼 하면 중의성이 해소된다. 둘째, 보조사, 특히 보조사 ‘은/는/의 사용은 중의성 해소의 유력한 수단이다. 예를 들어, “철수가 학원에 가지 않았다.”라는 문장은 중의적이지만, “철수가 학원에는 가지 않았다.”라고 하거나, “철수가 학원에 가지는 않았다.”라고 하면 중의성이 해소된다.
(4) 모호문
‘애매모호(曖昧模糊)’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중의성을 뜻하는 ‘애매(曖昧)’와 ‘모호(模糊)는 다른 개념이다. 중의성은 하나의 문장이 둘 이상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데, 그 중 어느 것인지를 알 수 없음을 가리킨다. 반면, 모호성은 의미하는 바의 경계가 불분명함을 말한다. 예를 들어, “소금을 충분히 넣어라.”라는 문장은 중의적이지는 않지만 모호하다. 도대체 몇 숟갈의 소금을 넣어야 하는지 불분명한 것이다.
㉠ 철수는 용산역에 갔다./영희는 방에서 했다.
㉡ 그 사람이 내일 집으로 온다고 하네요./일찍 자라.
㉢ 강은 아니고 시내가 하나 흐를 뿐이다./ 소라고 하긴 그렇고 아직 송아지이다.
㉠의 경우, ‘가다’와 ‘하다’의 의미가 모호하다. 걸어갔는지, 뛰어갔는지, 택시를 타고 갔는지 알 수 없다. 또 방에서 뭘 했는지 알 수 없다. 결국 ‘가다’가 행위에 대한 구체성을 결여하고 있어 초래된 모호성이다. ㉡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모호하다. 또 ‘일찍’이라는 말이 몇 시인지 모호하다. 결국 문장의 의미를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정보가 주어지지 않아 초래된 모호성이다. ㉢은 단어의 의미 자체는 분명하지만, 그것이 어떤 대상을 지시함에 있어 명료성을 지니지 못해 초래된 모호성이다. ‘강’과 ‘시내’ 그리고 ‘소’와 ‘송아지’ 각각의 의미 경계 모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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