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법강의

담화(談話)와 발화(發話)

국어의 시작과 끝 2011. 5. 27. 06:09

 

 

1. 담화(談話)와 발화(發話)

 

문장이 모이면 텍스트가 된다. 텍스트의 구성 요소인 문장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텍스트를 이룬다. 하지만 언어를 행위의 측면에서 보면 사정이 좀 바뀐다. 언어 행위는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 경우 문장은 ‘화자-청자-장면’을 고려해 넣을 때 정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렇듯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주고받는 말을 ‘발화(發話)’라고 한다. 그 발화를 구성 요소로 하는 것, 발화의 집합을 담화(談話, 또는 이야기)라고 한다. 물론 담화를 이루는 발화들은 유기적인 관계를 맺는다. 이렇듯 언어를 행위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관점을 화행이론이라 한다.

 

예를 들어, “지금 몇 시냐?”라는 언어 행위에 대해 생각해 보자. 전통적인 문법에 따라 이해할 때, 이 문장은 시간을 묻는 의문문일 따름이다. 그러나 문장이 아니라 발화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다시 말하면 이 발화가 이루어지는 장면을 구체적으로 고려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물론 단순히 시간을 묻는 질문일 수 있다. 그러나 늦게 귀가한 딸에게 아버지가 좀 엄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한 것이라면, “늦게 다니지 마라.” 정도의 의미를 가질 것이다. 질문이 아니라 명령이다. 따라서 그런 상황이라면 딸이 “12시입니다.”라고 답해서는 곤란하다.

 

위 문장의 의미도 텍스트에 맥락이 주어지므로, 단순 의문문 이상의 다른 의미를 갖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이다. 그렇지만, 그 경우라도 언어 외적인 상황 맥락까지 감안하기는 어려운 것이며, 바로 그 차원까지 이해의 폭을 넓혀 언어 행동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화행이론이다. 따라서 화행이론에서는 담화를 이해할 때, 필수적으로 ‘화자/청자, 발화(=내용), 장면’을 고려에 넣게 된다.

 

 

 

2. 발화 행위의 종류

 

다음 발화 행위를 살펴보자.

 

 

㉠ 남편 : (방금 나갔는데, 집안으로 들어오며) “여보, 비가 오네요.”

㉡ 남편 : (머릿속으로 생각함) “우산 좀 찾아서 주세요.”

㉢ 아내 : (남편 말을 듣고 머릿속에서) “우산을 가져다 달라는 말이군.”

 

 

위의 발화 행위에서 실제 행해진 언어 행위는 ㉠뿐이다. 나머지는 머릿속의 생각을 추론해 본 것이다. 우선 ㉠의 발화를 ‘언표 행위’라 한다. 즉 무엇인가를 말하는 행위를 언표 행위라 한다. 다음 ㉡은 ‘언표 내적 행위’라 한다. 즉 언표 행위와 함께 수행된 다른 행위를 언표 내적 행위라 한다. ㉠,㉡를 묶어서 이해하면 이렇다. 남편은 ‘비가 온다’는 사실을 진술하는 행위를 통해, 실질적으로는 ‘우산을 가져다 달라’는 요청 행위를 한 것이다. 그래서 남편의 발화를 ‘요청 발화’라고 하는 것이다. ㉢은 그 요청 발화의 결과로 일어나는 행위이다. 이를 언향적 행위라 한다. 즉 화자가 하는 말이 청자에게 어떤 반향을 일으키는 행위가 언향적 행위이다. 물론 우리는 아내가 이어서 “조금 기다려 봐요.” 정도로 반응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이것은 다시 아내의 ‘요청 발화’가 된다. 이런 주고받는 발화가 연속될 것이며. 그 집합을 담화(談話)라 하는 것이다.

 

 

화행이론에서 주목하는 셋 중 ‘언표내적 행위’이다. 발화행위를 언표 내적 행위의 유형에 따라 분류할 때, 흔히 언급되는 것은 ‘정보 전달(=진술), 약속, 요청, 축하, 감탄, 명령, 질문, 제안, 경고, 위협, 사과’ 등이다. 대표적인 몇 개만 살펴보도록 하자.

 

 

㉠ 정보 전달 : [어느 학교를 다니냐는 질문에] “저는 서울대학교에 다닙니다.”

㉡ 요청 : [학원 친구에게] “같이 공부하는 모임을 만들면 좋겠네요.”

㉢ 축하 :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친구에게] “이제 고생은 끝이네요.”

㉣ 협박 : [돈을 갚지 않는 사람에게] “좋은 말로 할 때 끝냅시다.”

㉤ 선언 : [재판관이] “피고는 무죄입니다.”

㉥ 명령 : [텔레비전만 보는 아들에게] “공부할 시간이다.”

 

 

 

3. 직접 발화 행위와 간접 발화 행위

 

 

앞서의 예를 보면 문장 형태와 언표내적 행위가 일치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즉 문장 형태로 보면 평서문이어서 진술 행위로 볼 수 있는데, 발화 유형으로 보면 명령에 해당하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문장 형태와 언표내적 행위가 일치하지 않을 때, 그것을 ‘간접발화행위’라 한다. 물론 둘이 일치하는 경우라면 ‘직접발화행위’라 한다.

 

 

몇 개의 예를 통해 이 관계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문장 형태

직접발화행위

간접발화행위

“이 집에는 무서운 진돗개가 있습니다.”

평서문

진술

주의/위협

“창문을 좀 열어 줄 수 있지?”

의문문

질문

요청

“나도 텔레비전 보고 있다.”

평서문

진술

요청/명령

 

 

이러한 설명을 바탕으로 다음 대화 상황에 내재된 문제점을 생각해 보자.

 

 

[길을 헤매고 있는 외국인이 남자 행인에게]

 

외국인: 경찰서가 어디 있는지 아세요?

남자 행인: 네, 아는데요.

 

 

외국인의 발화는 ‘경찰서가 있는 위치를 알려 달라.’는 요청의 기능을 하는데, 남자 행인은 이를 단순한 의문의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 아마도 외국인은 황당함, 불친절함 등의 느낌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래서는 대화가 원만하게 이루어지기 어렵다. 당연히 남자 행인은 “저 골목쟁이(골목에서 좀 더 깊숙이 들어간 좁은 곳)에 있어요.” 정도로 답해야 한다. 즉 지금 발화가 어떤 장면(=상황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3. 장면에 따른 표현과 이해

 

담화 상황에서 장면에 대한 이해가 절실한 대표적인 경우는 화자가 말을 하면서 어떤 대상을 직접 지시하는 경우이다. 예를 들면,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라는 발화에서 ‘나’는 화자를 ‘너’는 청자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 말의 화자가 누구이고, 청자가 누구이냐에 따라 그 지시 대상이 달라진다. 이것은 화자가 말을 하면서 지시 대상을 직접 가리키고 있기 때문에 장면이 바뀌면 지시 대상도 바뀌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을 직시(直視, deixis)라 한다.

 

 

㉠ 이 아이가 제 둘째 아들입니다. 

㉡ 자네 앞에 있는 그 사진은 누구인가?

㉢ 우리 저 곳으로 가서 이야기합시다.

㉣ 지금은 안 보이지만, 이 산을 넘으면 낮은 산이 하나 더 나온다. 바로 *저 낮은 산을 넘어야 한다.  

 

국어의 직시 표현 중 가장 체계적이고, 매우 생산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지시 관형사 ‘이, 그, 저’이다. ㉠에서 보듯 ‘이’는 화자와 가까이 있는 것을 가리키고, ㉡에서 보듯 ‘그’는 청자와 가까이 있는 것을 가리키며, ㉢에서 보듯 ‘저’는 화자와 청자로부터 떨어져 있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에서 보듯, ‘저’는 눈에 보이는 대상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이, 그’와 다르다.

 

 

하지만 직시 체계가 객관적인 여건만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상황① : 남편과 시장을 보는 아내가]  

㉠ 이 참외가 맛있게 생겼다. 

㉡ 그 참외가 맛있게 생겼다.

 

 

참외와의 거리가 남편과 아내에게 동일하다고 상정할 때에도, 화자는 ㉠처럼 표현할 수도 있고, ㉡처럼 표현할 수도 있다. 이 경우 화자가 ㉠처럼 표현한 것은 참외를 화자, 즉 자신의 영역으로 파악한 것이며, ㉡처럼 표현한 것은 참외를  청자, 즉 남편의 영역으로 파악한 것이다. 이처럼 직시 체계는 한편으로 담화 상황의 객관적 사실을 반영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화자의 대상에 대한 심리적 태도를 반영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그, 저’는 장소만을 직시하는 것이 아니다. 발화 그 자체가 속해 있는 담화의 어떤 부분을 지시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 담화 직시라 한다. 예를 들어, “공무원이 될 것이라 했지. 그 생각이 변한 것은 아니지?”에서 ‘그’는 선행하는 담화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러한 전술 담화 언급 기능의 측면에서도 ‘이, 그, 저’는 매우 체계적으로 사용된다.

 

 

㉠ 그것은 다 내 노력 덕분이야. 넌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돼. / 노력하는 사람은 실패하지 않는다. 이 점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 철수야, 그 이야기의 전말은 다음과 같아.

 

 

㉠에서 보듯 ‘이’는 화자만 알고 있는 사실을 가리킬 때나, 화자의 선행 발화를 가리킬 때 사용한다. 물론 전자와 달리 후자의 경우에는 ‘그’를 사용할 수도 있다. ㉡에서 보듯 ‘그’는 청자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지시할 때 사용한다.

 

그런데 이러한 직시 체계는 지시 관형사 ‘이, 그, 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지시 대명사, 지시 형용사, 지시 부사에도 유사하게 적용된다.

 

 

㉠ ‘이’ 계통 지시어 : 이, 이것, 이렇다, 이런, 이리, 여기 : 말하는 이에게 가까운 대상 지시(근칭)

㉡ ‘그’ 계통 지시어 : 그, 그것, 그렇다, 그런, 그리, 거기 : 듣는 이에게 가까운 대상 지시(중칭)

㉢ ‘저’ 계통 지시어 : 저, 저것, 저렇다, 저런, 저리, 저기 : 화자, 청자, 모두에게서 먼 대상 지시(원칭)

 

 

저의 세 보물입니다. 마당의 계단에서 장난감 말을 타고 놀고 있네요. 5년 정도 전 풍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