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

필독 사설 시조 25편 해설 및 감상

국어의 시작과 끝 2011. 4. 26. 15:15

 

<사설시조(辭說時調)>

 

1. 사설시조의 개념:시조 3장 중에서 초/종장은 대체로 엇시조의 중장(40자 이내)의 자수(字數)와 일치하고, 중장은 그 자수가 제한 없이 길어진 시조이다.

2. 사설시조의 형성:영/정조 이후 서민 계급이 자기네들의 생활 감정을 담고자 종래의 양반 계급이 써 오던 평시조의 형태를 개조(改造)한 것이다.

3. 사설시조의 특징

① 구체적이고 서민적인 소재와 비유의 도입

② 강렬한 애정과 내용의 표출

③ 언어유희/재담(才談)/욕설의 도입

④ 기탄(忌憚)없는 비유를 통한 사회

⑤ 비개성적 사물의 유형적 배열을 통한 감정의 발산

 

 

 

 

1. 갓나희들이 여러 層(층)이오레 - 김수장

 

갓나희들이 여러 層(층)이오레.

松골(송골)매도 갓고 줄에 안즌 져비도 갓고 百花園裡(백화원리)에 두루미도 갓고 綠水波瀾(녹수파란)에 비오리도 갓고 따해 퍽 안즌 쇼로개도 갓고 석은 등걸에 부헝이도 갓데.

그려도 다 각각 남의 사랑인이 皆一色(개일색)인가 하노라. ― <해동가요>

 

계집(여인)들이 여러 층이더라.

송골매 같기도 하고, 줄에 앉은 제비 같기도 하고, 온갖 꽃들이 만발한 뜰에 두루미 같기도 하고, 푸른 물결 위에 비오리(오리과에 속하는 물새) 같기도 하고, 땅에 퍽 주저앉은 솔개 같기도 하고, 썩은 등걸에 앉은 부엉이 같기도 하네.

그래도 다 각각 님의 사랑을 받으니 각자가 다 뛰어난 미인인가 하노라.

 

● 성 격 : 풍자적, 해학적

● 표 현 : 직유법, 열거법

● 주 제 : 각기 임의 사랑을 받고 살아가는 뭇 여인들(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데 대한 경계)

● 해설 및 감상 ː 일찍이 우리 문학사에 등장한 적이 없었던 새로운 애정관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즉, 초장에서는 여인들이 다양하다고 전제하고, 중장에서는 여인들을 여러 종류의 새에 비유한 뒤, 종장에서는 그 다양한 여인들이 그래도 자신들의 임에게는 각각 가장 사랑 받는 여인들이니 모두 일색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여인들에 대한 다양한 비유와 해학미가 넘치는 표현으로 사설시조의 멋을 한껏 살린 작품이라 하겠다.

 

 

 

2. 개를 여라믄이나 기르되 - 지은이 모름

 

개를 여라믄이나 기르되 요 개갓치 얄믜오랴.

뮈온 님 오며난 꼬리를 홰홰 치며 뛰락 나리 뛰락 반겨셔 내닷고 고온 님 오며난 뒷발을 버동버동 므르락 나으락 캉캉 즈져서 도라가게 한다.

쉰밥이 그릇그릇 난들 너 머길 줄이 이시랴. ― <청구영언>

 

개를 십여 마리나 기르되 이 개처럼 얄미운 놈이 있겠느냐.

미운 님이 오면 꼬리를 홰홰 치며 올려 뛰고 내리뛰며 반겨서 내닫고, 고운 님이 오면 뒷발을 버티고 서서 뒤로 물러났다 앞으로 나아갔다 하며 캉캉 짖어서 돌아가게 한다.

아무리 밥이 많이 남아서 쉰밥이 그릇그릇 쌓인다 한들 너에게 먹일 성싶으냐.

 

● 성 격 : 연모(戀慕), 해학적

● 주 제 : 임을 기다리는 안타까운 마음

● 해설 및 감상 : 사랑하는 임을 기다리는 안타까운 마음을 해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노래에서 시적 화자는 자신이 기르는 개가 미운 임은 반겨 맞고 고운 임은 짖어서 쫓아 버린다고 원망하고 있는데, 실제로 개가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이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임을 직접적으로 원망하지 않고, 그것을 죄 없는 개한테로 옮겨서 원망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임을 내쫓는 개의 동작을 묘사한 부분이 너무나 사실적(寫實的)이어서 실감을 높인 것도 이 노래의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다.

 

 

 

3. 개야미 불개야미 - 지은이 모름

 

개야미 불개야미 잔등 부러진 불개야미,

압발에 정종(정腫) 나고 뒷발에 죵귀 난 불개야미 廣陵(광릉) 샘재 너머 드러 가람의 허리를 가르 물어 추혀 들고 北海(북해)를 건너닷 말이 이셔이다. 님아 님아.

온 놈이 온 말을 하여도 님이 짐작하쇼셔. ― <청구영언>

 

개미, 불개미, 허리가 부러진 불개미,

앞발에 피부병이 나고 뒷발에 종기 난 불개미가, 광릉 샘고개 넘어 들어가 호랑이의 허리를 가로 물어 추켜 들고, 북해를 건너갔다는 말이 있습니다. 임이여.

모든 사람이 백 가지 말을 한다 해도 님께서 짐작해 주소서.

 

● 성 격 : 풍자적, 교훈적, 과장적

● 주 제 : 참언(讒言)에 대한 경계(警戒)

● 해설 및 감상 : 남을 모함하는 말에 현혹되지 말라는 교훈적 내용을 개미를 제재로 하여 희화적(戱畵的)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노래의 구심점은 종장일 수밖에 없다. '온 놈이 온 말'은 다른 사람의 참언을 뜻하는 것으로, 중장에서 사물을 극단적으로 과장함으로써 일어나는 허무맹랑함을 통하여 '온 놈이 온 말'을 한다 해도 거짓일 수밖에 없음을 빗대어 나타낸 것이다. 초장에서의 '개야미'는 무능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를 비유한 것이며, 종장의 '님'은 세상 사람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당시 사회상에 비추어 '님'을 임금으로 가정할 수도 있으며, 종장의 문구(文句)는 사설 시조의 전형적인 수법이라 볼 수 있다. 삼인 성호(三人成虎)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같은 말을 하면 대개 그 말을 믿게 되는데, 이 작품은 그러한 위험성을 풍자적으로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4. 꿈은 故鄕(고향)가건마은 - 지은이 모름

 

꿈은 故鄕(고향)거건마은 나는 어이 못가는고.

꿈아 너는 어느새 이 故鄕(고향) 갓다왓누 堂上鶴髮雙親(당상학발쌍친) 一向萬康(일향만강)하옵시며 閨裡(규리)에 紅顔妻子(홍안처자)와 어린 同生(동생)과 各宅諸節(각택제절)리 다 泰平(태평)턴야.

泰平(태평)키는 泰平(태평)터라만 너 아니 온다고 愁心(수심)일네.

 

꿈은 고향으로 가지마는 나는 어이 못 가는가.

꿈아 너는 어느새 이 고향 갔다 왔느냐? 집안에서 흰머리를 한 양친은 건강하시며, 규방에 있는 예쁜 아내, 그리고 자식과 어린 동생과 모든 집안 사람들은 다 태평하더냐?

태평하기는 태평하더라만 네가 아니 온다고 근심이더라.

 

● 주 제 : 고향을 그리는 마음(首邱初心)

● 이해와 감상 : 타향에서 고향을 그리며 오직 갈 수 없는 신세를 안타까워하는 한편, 밤마다 찾아가는 꿈을 한없이 부러워하고 있다. 고향을 찾아갈 수 없는 몸이라 밤마다 찾아가는 꿈에게 고향의 백발 부모와 홍안처자와 어린 동생과 가내제절의 안부를 묻고 있는 것에서 思鄕(사향) 歸心(귀심)의 주제성이 강하게 부각되어 있다.

 

 

 

5. 귀또리 져 귀또리 - 지은이 모름

 

귀또리 져 귀또리 어엿부다 저 귀또리,

어인 귀또리 지난 달 새난 밤의 긴 소래 쟈른 소래 節節(절절)이 슬픈 소래 제 혼자 우러 녜어 紗窓(사창) 여왼 잠을 살뜨리도 깨오난고야.

두어라, 제 비록 微物(미물)이나 無人洞房(무인동방)에 내 뜻 알리는 너뿐인가 하노라. ― <병와가곡집>

 

귀뚜라미, 저 귀뚜라미, 불쌍하다 저 귀뚜라미,

어찌 된 귀뚜라미가 지는 달 새는 밤에, 긴 소리 짧은 소리, 마디마디 슬픈 소리로 저 혼자 계속 울어, 비단 창문 안에 살풋 든 잠을 잘도 깨우는구나.

두어라, 제가 비록 작은 벌레지만, 외로워 잠 못 이루는 내 마음을 알 이는 너(귀뚜라미)뿐인가 하노라.

 

● 표 현 : 의인법, 반복법, 감정 이입

● 주 제 : 독수 공방(獨守空房)의 외로움

● 이해와 감상 : 평민층에 의해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 이 사설 시조는 임과 이별한 여인의 외로움을 귀뚜라미에 의탁해서 노래하고 있다. 긴소리, 짧은 소리로 절절이 슬프게 우는 귀뚜라미 소리에 대한 청각적 심상의 활용을 통해, 깊은 밤 독수 공방하며 짙은 외로움을 느끼는 화자의 심정을 애절하게 환기시키고 있다. 아울러 '여왼 잠을 살뜨리도 깨오난고야.'라는 감정 이입에 의한 반어적 표현을 통해, 임을 향한 그리움으로 잠 못 들고 전전 반측(輾轉反側)하는 화자의 심정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6. 나모도 바히돌도 업슨 - 지은이 모름

 

나모도 바히돌도 업슨 뫼헤 매게 쪼친 가토릐 안과,

大川(대천) 바다 한가온대 一千石(일천 석) 시른 배에, 노도 일코 닷도 일코 뇽총도 근코 돗대도 것고 치도 빠지고, 바람 부러 물결치고 안개 뒤섯계 자자진 날에, 갈 길은 千里萬里(천리 만리) 나믄듸 四面(사면)이 거머어득 져뭇 天地寂寞(천지 적막) 가치노을 떳난듸, 水賊(수적) 만난 都沙工(도사공)의 안과,

엇그제 님 여흰 내 안희야 엇다가 가을하리오. ― <청구영언>

 

나무도 바윗돌도 없어 몸을 숨기기 곤란한 산에서 매에게 쫓기는 까투리의 마음과,

넓고 큰 바다 한가운데 곡식을 일천 석이나 실은 배가 노도 잃고 닻도 잃고 돛줄도 끊어지고 돛대도 꺾이고 키도 빠지고 바람 불어 물결치고 안개 뒤섞여 자욱한 날에 갈 길은 천리 만리 남았는데 사방이 검어 어둑어둑 저물고 천지가 적막하며 사나운 파도 치는데 해적 만난 사공 우두머리의 마음과,

엊그제 님을 이별한 내 마음이야 어디에다 비교할 수 있겠는가(내 마음이 훨씬 더 참담하다).

 

● 성 격 : 별한가(別恨歌), 이별가(離別歌)

● 표 현 : 열거법, 비교법, 과장법, 점층법

● 주 제 : 사랑하는 임을 여읜 걷잡을 수 없이 절절한 심정

● 이해와 감상 : 임을 여읜 허전함과 어찌할 도리가 없는 아득한 정상(情狀)을 까투리와 도사공(都沙工)을 끌어다 표현하였다. 절대 절명의 위기에 빠진 까투리의 암담한 심정과 사면 초가(四面楚歌)의 절박한 상황에 처한 도사공의 모습을 제시한 다음, 자신의 마음은 그들보다 훨씬 더 심각함을 강조하고 있는 내용으로, 중장에서는 모든 상상할 수 있는 극한적 상황을 나열하면서 내용면으로는 점층적 구성으로 절박감을 더해 주고 있다. 해학적 표현 속에 비장감(悲壯感)이 감돈다.

 

 

 

7. 논밭 갈아 기음 매고 - 지은이 모름

 

논밭 갈아 기음 매고 뵈잠방이 다임 쳐 신들메고,

낫 갈아 허리에 차고 도끼 버려 두러메고 무림 산중(茂林山中) 들어가서 삭다리 마른 섶을 뷔거니 버히거니 지게에 질머 지팡이 바쳐 놓고 새암을 찾아가서 점심(點心) 도슭 부시고 곰방대를 톡톡 떨어 닢담배 퓌여 물고 코노래 조오다가,

석양이 재 넘어갈 제 어깨를 추이르며 긴 소래 저른 소래 하며 어이 갈고 하더라.

― <청구영언>

 

논밭 갈아 김을 맨 후 베잠방이 대님 쳐 신이 벗겨지지 않도록 들메끈을 매고,

낫 갈아 허리에 차고 도끼를 날카롭게 만들어 둘러메고, 나무가 울창한 산 속에 들어가서 삭정이 마른 나무를 베고 잘라 지게에 짊어 작대기 받쳐 놓고, 샘을 찾아가서 점심도 다 비우고 곰방대를 톡톡 털어 잎담배 피워 물고 콧노래 부르며 졸다가,

석양이 고개를 넘어갈 때 어깨를 추스르며, 긴 소리 짧은 소리 하며 어떻게 갈까 하더라.

 

● 성 격 : 한정가, 전원적, 사실적

● 주 제 : 자연 속에서 누리는 한가로운 삶

● 작품 해설 : 농부의 일상사를 있는 그대로 그려 낸 작품으로, 논밭에 김을 맨 다음 산에 들어가 나무를 하여 지게에 짊어지고, 지팡이 받쳐 놓고 샘을 찾아가 점심 도시락 먹고, 잎담배 피우고 졸다가 석양이 재 넘어갈 때 어깨를 추스르며 긴 소리 짧은 소리를 한다는 내용이다. 하층 농민의 생활에서 우러나온 사설이 이렇게 생동감 있게 반영된 시조는 그리 흔치 않다. 힘들고 고된 일 가운데서도 긴 소리 짧은 소리로 흥을 돋우는 농부의 모습은 우리 민족의 낙천적이고 풍류적인 성정(性情)을 잘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8. 님이 오마 하거날 - 지은이 모름

 

님이 오마 하거날 저녁밥을 일 지어 먹고,

中門(중문) 나서 大門(대문) 나가 地方(지방) 우희 치다라 안자 以手(이수)로 加額(가액)하고 오난가 가난가 건넌 山(산) 바라보니 거머흿들 셔잇거날 져야 님이로다. 보션 버서 품에 품고 심 버서 손에 쥐고 곰븨님븨 님븨곰븨 쳔방지방 지방쳔방 즌 듸 마른 듸 갈희지 말고 위렁충창 건너가셔 情(정)엣말 하려 하고 겻눈을 흘긧 보니 上年(상년) 七月(칠월) 사흔날 갈가 벅긴 주추리 삼대 살드리도 날 소겨거다.

모쳐라 밤일싀만졍 행여 낫이런들 남 우일 번 하괘라. ― <청구영언>

 

임이 오겠다고 하기에 저녁밥을 일찍 지어 먹고,

중문을 나와서 대문으로 나가, 문지방 위에 올라가서, 손을 이마에 대고 임이 오는가 하여 건너산을 바라보니, 거무희뜩한 것이 서 있기에 저것이 틀림없는 임이로구나. 버선을 벗어 품에 품고 신을 벗어 손에 쥐고, 엎치락뒤치락 허둥거리며, 진 곳 마른 곳 가리지 않고 우당탕퉁탕 건너가서, 정이 넘치는 말을 하려고 곁눈으로 흘깃 보니, 작년 7월 3일날 껍질을 벗긴 주추리 삼대가 알뜰하게도 나를 속였구나.

마침 밤이기에망정이지 행여 낮이었다면 남 웃길 뻔하였구나.

 

● 성 격 : 해학적, 과장적

● 주 제 : 임을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

● 이해와 감상 : 그리워하는 임을 어서 만나고 싶어하는 마음을 해학적으로 잘 표현한 시조이다. 임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밥까지 일찍 지어 먹고, 안절부절 기다리다가 삼줄기를 임으로 착각하고 속은 것에 낭패스러워 하는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서 읽는 이로 하여금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9. 다려 가거라 끌어 가거라 - 지은이 모름

 

다려 가거라 끌어 가거라 나를 두고선 못 가느니라 女必(여필)은 (從夫)종부랫스니 거저 두고는 못 가느니라

나를 바리고 가랴 하거든 靑龍刀(청룡도) 잘 드는 칼노 요참이라도 하고서 아래 토막이라도 가저 가소 못 가느니라 못 가느니라 나를 바리고 못 가느니라 나를 바리고 가랴하거든 紅爐火(홍로화) 모진 불에 살을 터이면 살우고 가소 못 가느니라 못 가느니라 그저 두고는 못 가느니라 그저 두고서 가랴하거든 廬山瀑布(여산폭포) 흘으는 물에 풍덩 더지기라도 하고서 가쏘 나를 바리고 가는 님은 五里(오리)를 못 가서 발病(병)이 나고 十里(십리)를 못 가서 안즌방이 되리라

참으로 任(임)생각 그리워서 나 못 살겟네.

 

데리고 가거라 끌어 가거라 나를 두고서는 못 가느니라. 여자는 반드시 지아비를 따라야 한다 했으니 그냥 두고는 못 가느니라.

나를 버리고 가려고 하거든 청룡도 잘 드는 칼로 요절이라도 해서 하반신이라도 가지고 가소. 못 가느니라 못 가느니라 나를 버리고는 못 가느니라. 나를 버리고 가려고 하거든 붉은 화롯불에 살을 태우고 죽이고 가소. 못 가느니라 못 가느니라 그냥 두고는 못 가느니라. 그냥 두고서 가려고 하거든 여산 폭포 흐르는 물에 몸을 던져 죽이고 가소. 나를 버리고는 가신 임은 오 리를 못 가서 발병이 나고 십 리를 못 가서 앉은뱅이가 되느니라.

참으로 임의 생각이 그리워서 나는 못 살겠네.

 

● 주 제 : 이별하는 여인의 서러움과 쓰라림

● 이해와 감상 : 떠나는 임을 붙잡고 가지 못하게 몸부림치는 장면이 눈에 선한 작품이다. 내용상 고려가요의 <가시리>와 견줄 만하다. <가시리>가 임을 떠나 보내면서 다시 오라고 하는 忍從(인종)의 美德(미덕)을 보이고 있는 데 비해, 이 시조에서의 여인은 한 마디로 말해서 악다구니 같다. 자기를 버리고 가려거든 청룡도로 요절을 해서 하반신을 가지고 가든가, 불에 태워 죽이고 가든가, 여산 폭포에 던져 죽이고 가라고 악을 쓰다가 그래도 떠나는 임을 보고 五里(오 리)를 못 가서 발병이 나고 十里(십 리)를 못 가서 앉은뱅이가 되라고 저주하고 있다. 임을 이별하는 여인의 서러움과 쓰라림을 강조하다가 보니 이별애상(離別哀傷)의 정조보다는 악다구니 같은 惡女(악녀)의 곁을 떠나는 남자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남을 금치 못하다.

 

 

 

10. 宅(댁)들에 동난지이 사오 - 지은이 모름

 

宅(댁)들에 동난지이 사오. 져 쟝사야, 네 황화 긔 무서시라 웨난다, 사쟈.

外骨內肉(외골 내육), 兩目(양목)이 上天(상천), 前行後行(전행 후행), 小(소)아리 八足(팔족) 大(대)아리 二足(이족), 淸醬(청장) 아스슥 하난 동난지이 사오.

쟝사야, 하 거복이 웨지 말고 게젓이라 하렴은. ― <청구영언>

 

여러 사람들이여 동난젓(게젓) 사오. 저 장수야, 네 물건 그 무엇이라 외치느냐, 사자.

밖은 단단하고 안은 물렁하며 두 눈은 위로 솟아 하늘을 향하고, 앞뒤로 기는 작은 발 여덟 개, 큰 발 두 개, 푸른 장이 아스슥하는 동난젓 사오.

장수야, 너무 거북하게 말하지 말고 게젓이라 하려무나.

 

● 성격 및 표현 : 해학적, 대화체, 돋호법

● 주 제 : 서민들의 상거래 장면

● 이해와 감상 : 서민적 감정이 여과 없이 표출되어 있는 이 노래는 게 장수와의 대화를 통한 상거래의 내용을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중장에서 '게'를 묘사한 대목은 절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표현으로 사설 시조의 미의식인 해학미(諧謔美) 내지는 희극미(戱劇美)를 느끼게 하며, '아스슥'과 같은 감각적 표현은 한결 현실감을 더해 준다. 시정(市井)의 장사꾼과 물건을 사려는 사람이 상거래(商去來)를 하면서 주고받는 이야기가 익살스럽게 표현되어 있다. 서민들의 생활 용어가 그대로 시어로 쓰이고 있다.

 

 

 

 

 

11. 두터비 파리를 물고 - 지은이 모름

 

두터비 파리를 물고 두험 우희 치다라 안자

건넛 山(산) 바라보니 白松骨(백송골)이 떠 잇거날 가슴이 금즉하여 풀덕 뛰여 내닷다가 두험 아래 쟛바지거고

모쳐라 날낸 낼싀만졍 에헐질 번하괘라. ― <청구영언>

 

두꺼비가 파리를 물고 두엄 위에 뛰어 올라가 앉아

건너편 산을 바라보니 흰 송골매가 떠 있기에 가슴이 섬뜩하여 펄쩍 뛰어 내닫다가 두엄 아래 자빠졌구나.

(그리고는 하는 말이) 마침 날랜 나였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다쳐서 멍들 뻔하였구나.

 

● 성 격 : 상징적, 풍자적, 희화적

● 주 제 : 양반들의 허장성세(虛張聲勢)와 세태 풍자

● 이해와 감상 : 두꺼비, 파리, 백송골 등을 의인화하여 약육 강식(弱肉强食)하는 인간 사회와 양반들의 비굴하고 허세에 찬 모습을 풍자한 노래이다. 여기에서 '두꺼비'는 '양반 계층'을, '파리'는 '서민 계층'을, 그리고 '백송골'은 '강한 외부 세력'을 상징한다. 따라서 양반이 평민을 괴롭히다가 강한 세력에게 발각될 위기에 처하자 황급히 피하려다 실수를 하고도 자기 합리화를 꾀하는 모습을 우화적 수법으로 익살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당시 특권층인 양반들의 횡포에 시달림을 받는 민중들은 그것을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폭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처럼 풍자적인 수법을 통해 지배 계층을 꼬집고 희화화시켜 울분을 해소시켰던 것이다.

 

 

 

12. 둑거비 뎌 둑거비 - 지은이 모름

 

둑거비 뎌 둑거비 한 눈 멀고 다리 져난 저 둑거비

한 나래 업슨 파리를 물고 날낸 쳬 하야 두험 싸흔 우흘 솏고다가 발딱 나뒤쳐 지거고나.

모쳐로 몸이 날낼셰만졍 衆人僉視(중인첨시)에 남 우릴 번 하거다.

 

두꺼비 저 두꺼비 한 눈 멀고 다리 저는 저 두꺼비

한 날개 없는 파리를 물고 재빠른 체하여 두엄 쌓은 위를 솟았다가 벌떡 나뒹굴어 지겠구나.

마침 날랜 나였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많은 사람이 다 같이 말하며 보는 가운데 남 웃길 뻔하였구나.

 

● 성 격 : 상징적, 해학적

● 이해와 감상 : 두꺼비라는 제재의 둔하고 느린 모습을 과장적으로 확대함으로써 그 왜소(矮小)함이나 비소(卑小)함을 웃는 격하(格下)의 웃음을 보이고 있다.

 

 

 

13. 모시를 이리져리 삼아 - 지은이 모름

 

모시를 이리져리 삼아 두로삼아 감삼다가,

가다가 한가온대 뚝 근처지거날 皓齒丹脣(호치단순)으로 훔빨며 감빨며 纖纖玉手(섬섬옥수)로 두 긋 마조 자바 뱌븨여 나으리라 져 모시를.

엇더타, 이 人生(인생) 긋처갈 제 져 모시쳐로 나으리라. ― <가곡원류>

 

모시를 이리저리 손바닥으로 비비어 꼬아서 잇다가,

한가운데가 뚝 끊어지거늘 흰 이와 붉은 입술로 흠뻑 빨며 이로 감아 빨며 가늘고 흰 손으로 두 끝을 마주 잡아서 비비적거리며 이으리라 저 모시를,

어떻다, 나의 삶이 끝나갈 때 나도 저 모시처럼 이으리라.

 

● 표 현 : 열거법, 도치법

● 주 제 : 오래 살고 싶은 욕망

● 이해와 감상 : 누구나 공감하고 있는 장수(長壽)에 대한 소망을, 한없이 이어지는 실에 비유하여 형상화한 작품이다. 지은이는 길쌈을 하는 여성으로서, 유한(有限)한 사람의 목숨이 저 실처럼 길게 이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으로부터 시적 영감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오래 살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이는 사람뿐 아니라 모든 생물에게 있어서 공통적인 본능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것을 주제로 삼아 노래하고 있는 이 작품이야말로 진솔하고 직선적인 평민들의 사고 방식을 가장 잘 반영한 노래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14. 바람도 쉬여 넘난 고개 - 지은이 모름

 

바람도 쉬여 넘난 고개, 구름이라도 쉬여 넘난 고개.

山眞(산진)이 水眞(수진)이 海東靑(해동청) 보라매도 다 쉬여 넘난 高峯(고봉) 長城嶺(장성령) 고개,

그 너머 님이 왓다 하면 나난 아니 한 번도 쉬여 넘어가리라. ― <악학습령>

 

바람도 쉬어 넘는 고개, 구름이라도 쉬어 넘는 고개,

산지니(산에서 자라 여러 해 묵은 매), 수지니(손에서 길들인 매), 송골매, 보라매 같은 매들도 도중에 쉬어야 넘을 만큼 높은 장성령 고개,

그 높은 고개 너머에 임이 왔다고 하면 나는 한 번도 쉬지 않고 단숨에 넘어가리라.

 

● 성격 및 표현 : 연정가(戀情歌), 과장법, 열거법

● 주 제 : 애타게 임을 기다림

● 이해와 감상 : 임을 기다리는 안타까운 마음을 진솔하게 그리면서도 약간은 과장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평시조에 비해 발랄하고 動的(동적)인 느낌을 주는 이 노래는 바람이나 구름, 매들까지도 쉬어야만 넘을 수 있는 높은 고개를 임을 만날 수 있다면 자신은 한 번도 쉬지 않고 단숨에 넘어가겠다는 내용으로, 임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숨김 없이 드러내고 있으며, 사랑을 성취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지가 함축되어 있다.

 

 

 

 

15. 밝가버슨 兒孩(아해)ㅣ들리 - 이정신(李廷藎 ; 연대 미상)

 

밝가버슨 兒孩(아해)ㅣ들리 거믜쥴 테를 들고 개川(천)으로 往來(왕래)하며,

밝가숭아 밝가숭아, 져리 가면 쥭나니라. 이리 오면 사나니라. 부로나니 밝가숭이로다.

아마도 世上(세상) 일이 다 이러한가 하노라. ― <청구영언>

 

발가벗은 아이들이 거미줄 테를 들고 개천을 왕래하면서,

"발가숭아 발가숭아, 저리 가면 죽는다. 이리 오면 산다."고 하며 부르는 것이 발가숭이로다.

아마도 세상일이 다 이런 것인가 하노라.

 

● 성격 및 표현 : 풍자적, 의인법, 대화체

● 주 제 : 서로 모해(模楷)하는 세상사

● 이해와 감상 : 어린아이가 잠자리를 잡는 단순한 놀이에 풍자성을 가미하여 서로 속고 속이며 모해(謀害)하는 세태를 풍자한 작품이다. 어린아이들이 잠자리를 잡으려고 하면서 자기들에게로 와야 산다고 부르듯이, 세상일이 아마도 다 그러하리라는 것을 소박하고 풍자적인 표현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 시조는 이처럼 서로 믿을 수 없는 약육 강식(弱肉强食)의 각박한 세태를 해학적으로 풍자하여, 그 속에 인생의 오묘한 진리나 생활 철학을 간직하고 있다. 이 노래도 이러한 면을 안으로 간직하면서 '밝가숭이(벌거숭이 아이들)'가 '밝가숭이(고추잠자리)'를 잡는다고 하여 이 세상의 일을 풍자한 것이다.

 

 

 

16. 밤은 깁허 三更(삼경)에 니르럿고 - 지은이 모름

 

밤은 깁허 三更(삼경)에 니르럿고 구진 비난 梧桐(오동)에 흣날닐졔 니리 궁굴 져리 궁굴 두로 생각다가 잠못 니루웨라

洞房(동방)에 실솔聲(실솔성)과 靑天(청천)에 뜬기러기 소래 사람의 무궁한 심회를 짝지여 울고 가난 저 기럭아

갓득에 다 셕어스러진 구뷔간장이 이밤 새우기 어려워라.

 

밤은 깊어 한밤중에 이르렀고, 궂은 비는 오동나무에 흩날릴 때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잠 못 이루는구나.

아무도 없는 빈방에서 귀뚜라미 우는 소리와 하늘에 뜬 기러기 소리가 사람의 허전한 마음을 짝지어서 울고 가는 저 기러기야.

가뜩이나 다 썩어 문드러진 내 속마음에 이 밤 지새우기가 어렵구나.

 

● 주 제 : 獨守空房(독수공방)의 외로움

● 이해와 감상 : 임과 이별한 후 떠나간 임을 생각하다 보니 밤은 어느새 깊어 삼경이 되었는데, 때마침 하늘에 처량하게 울고 가는 기러기 소리는 임 그려 눈물로 지새우는 다 썩은 간장을 쓰리고 아프게 한다고 하고 있다. 종장으로 보아, 독수공방에서 떠나간 임을 생각하며 얼마나 울었는가 하는 것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17. 書房(서방)님 病(병) 들여 두고 - 김수장

 

書房(서방)님 病(병) 들여 두고 쓸 것 업셔

鐘樓(종루) 져재 달래 파라 배 사고 감 사고 榴子(유자) 사고 石榴(석류) 삿다 아차차차 이저고 五花糖(오화당)을 니저 발여고나

水朴(수박)에 숟 꼬자 노코 한숨계워 하노라. ― <해동가요>

 

서방님이 병이 들어 달리 먹일 것이 없어

종루 시장에 나가 머리카락을 팔아서, 배 사고, 감 사고, 유자 사고, 석류를 샀다. 그런데 아차차 잊었구나. 오색 사탕을 잊었구나.

(화채를 만들려고) 수박에 숟가락을 꽂아 놓고 한숨겨워 하노라.

 

● 성 격 : 사랑가, 해학적

● 제 재 : 화채의 재료

● 주 제 : 병든 남편에 대한 애틋한 사랑

● 이해와 감상 : 평범한 아낙네가 남편을 위하는 모습을 관찰․표현한 재미있는 작품이다. 병든 남편에게 화채를 만들어 주려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팔아 재료들을 샀는데, 집에 돌아와서 보니 오화당을 빠뜨렸다고 한탄하고 있다. 이러한 시적 관찰을 통해 시정(市井)의 범상한 인물들에 대한 작자의 정겨운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아차차차' 하는 감탄사를 적절히 구사하여 여인의 당황하는 모습과 남편에 대한 애틋한 마음씨를 해학적인 필치로 그린 점도 묘미가 있다.

 

 

 

18. 싀어마님 며나라기 낫바 - 지은이 모름

 

싀어마님 며나라기 낫바 벽 바닥을 구루지 마오.

빗에 바든 며나린가 갑세 쳐 온 며나린가. 밤나모 셕은 등걸에 휘초리 나니갓치 앙살픠신 싀아바님, 볏 뵌 쇠똥갓치 되죵고신 싀어마님, 三年(삼 년) 겨론 망태에 새 송곳 부리갓치 뾰죡하신 싀누의님, 唐(당)피 가론 밧태 돌피 나니갓치 새노란 욋곳 갓튼 피똥 누난 아달 하나 두고,

건 밧태 메곳 갓튼 며나리를 어듸를 낫바 하시난고. ― <병와가곡집>

 

시어머님, 며느리가 나쁘다고 부엌 바닥을 구르지 마오.

빚 대신으로 받은 며느리인가, 무슨 물건값으로 데려온 며느리인가. 밤나무 썩은 등걸에 난 회초리와 같이 매서운 시아버님, 볕을 쬔 쇠똥같이 말라빠지신 시어머님, 삼 년 간이나 걸려서 엮은 망태기에 새 송곳 부리같이 뾰족하신 시누이님, 좋은 곡식을 심은 밭에 돌피(나쁜 품질의 곡식)가 난 것같이 샛노란 외꽃 같은 피똥이나 누는 아들(너무 어려서 사내 구실을 하지 못함을 풍자한 것) 하나 두고,

기름진 밭에 메꽃 같은 며느리를 어디를 나쁘다고 하시는고.

 

● 성격 및 표현 : 비판적, 해학적, 직유법, 열거법

● 주 제 : 며느리의 원정(怨情), 왜곡된 가정 생활에 대한 비판

● 이해와 감상 : 대가족 제도에서 시집살이의 어려움을 노래한 것으로, 며느리의 원정(怨情)이 진솔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 작품에는 풍자와 해학이 한데 얽혀 있다. 시집 식구들의 해학적인 모습을 통해 봉건적으로 왜곡된 가정 생활에 대한 비판 의식을 풍자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19. 어이 못 오던가 - 지은이 모름

 

어이 못 오던가, 무삼 일노 못 오던가.

너 오난 길에 무쇠 城(성)을 싸고 城(성) 안에 담 싸고 담 안에 집을 짓고 집 안에 두지 노코 두지 안에 櫃(궤)를 짜고 그 안에 너를 必字形(필자형)으로 結縛(결박)하여 너코 雙排目(쌍배목) 외걸쇠 金(금)거북 자물쇠로 슈긔슈긔 잠가 잇더냐. 네 어이 그리 아니 오더니.

한 해도 열두 달이오 한 달 셜흔 날의 날 와 볼 할니 업스랴. ― <병와가곡집>

 

어찌하여 못 오던가, 무슨 일로 못 오던가.

너 오는 길에 무쇠로 성을 쌓고 성 안에 담을 쌓고 담 안에 집을 짓고 집 안에 뒤주를 놓고 뒤주 안에 궤짝을 짜고 그 안에 너를 오랏줄로 꽁꽁 묶어 넣고 쌍배목(겹으로 된 문고리를 걸어 두는 장식) 외걸쇠(하나로 된 걸쇠. '걸쇠'는 문을 걸어 잠그고 빗장으로 쓰는 'ㄱ'자 모양으로 생긴 쇠) 금거북 자물쇠로 꼭꼭 잠가 두었느냐? 너 어째서 그렇게 오지 않았느냐?

한 해는 열두 달이요 한 달도 서른 날인데 나를 찾아올 하루의 여유가 없단 말인가.

 

● 성격 및 표현 : 연모가(戀慕歌), 해학적, 과장적, 연쇄법

● 주 제 : 임을 기다리는 안타까운 마음

● 이해와 감상 : 오지 않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원망조로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중장에서는 연쇄법을 통해서 오지 못하는 까닭을 묻고 있다. '네가 오는 길에 무쇠성을 쌓고, 담을 두르고, 집일 짓고, 두지를 놓고, 궤를 짜고, 그 안에 너를 결박하여 넣은 뒤 자물쇠를 채웠느냐? 왜 그리도 오지 못하느냐'고 묻고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그리운 사람의 내방을 막는 여러 가지 제약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종장에서는 일 년 열두 달 삼백육십 일 중에 단 하루도 시간을 낼 수 없느냐고 책망하고 있다. 보고 싶은 마음의 간절함이 해학과 과장을 통해서 잘 드러난 작품이라 하겠다.

 

 

 

20. 일신이 사쟈 한이 - 지은이 모름

 

一身(일신)이 사쟈 한이 물껏 계워 못 견딀쐬.

皮(피)ㅅ겨 갓튼 갈랑니 보리알 갓튼 슈통니 줄인니 갓 깐니 잔 벼록 굴근 벼록 강벼록 倭(왜)벼록 긔는 놈 뛰는 놈에 琵琶(비파) 갓튼 빈대 삭기 使令(사령) 갓튼 등에아비 갌다귀 샴의약이 셴 박희 눌은 박희 바금이 거절이 불이 뾰죡한 목의 달리 기다한 목의 야왼 목의 살진 목의 글임애 뾰록이 晝夜(주야)로 뷘 때 업시 물건이 쏘건이 빨건이 뜻건이 甚(심)한 唐(당)빌리 예셔 얼여왜라.

그 中(중)에 참아 못 견딜손 六月(유월) 伏(복)더위예 쉬파린가 하노라. ― -<해동가요>

 

이내 몸이 살아가고자 하니 무는 것이 많아 견디지 못하겠구나.

피의 껍질 같은 작은 이, 보리알 같이 크고 살찐 이, 굶주린 이, 막 알에서 깨어난 이, 작은 벼룩, 굵은 벼룩, 강벼룩, 왜벼룩, 기어다니는 놈, 뛰는 놈에 비파 같이 넓적한 빈대 새끼, 사령(관아에서 심부름하던 사람) 같은 등에 각다귀(모기의 일종), 사마귀(버마재비), 하얀 바퀴벌레, 누런 바퀴벌레, 바구미, 고자리, 부리가 뾰족한 모기, 다리가 기다란 모기, 야윈 모기, 살찐 모기, 그리마(절족 동물), 뾰록이, 밤낮으로 쉴새없이 물기도 하고 쏘기도 하고 빨기도 하고 뜯기도 하고 심한 당비루(피부병의 일종) 여기서 어렵도다.

그 중에서도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것은 오뉴월 복더위에 쉬파리인가 하노라.

 

● 성격 및 표현 : 풍자적, 열거법

● 주 제 : 세상살이의 어려움

● 이해와 감상 : 사람을 괴롭히는 '물 것'이 많아서 살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노래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물 것'은 단순히 '사람이나 동물의 살을 물어 피를 빨아먹는 벌레의 총칭'이라는 사전적 의미보다는 백성을 착취하는 온갖 부류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이 노래의 핵심은 백상들을 착취하는 무리들이 너무 많아서 고통을 견질 수 없는 현실을 풍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노래의 표현상 두드러진 특징으로는 중장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열거를 통한 다양한 예시를 들 수 있다. 사람을 괴롭히는 '물 것'의 종류를 그렇게 많이 열거할 수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것을 숨가쁘게 엮어 나가는 익살스런 말투가 절로 웃음을 자아낸다. 사설시조가 아니고는 보여 줄 수 없는 묘미를 흠뻑 담고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21. 장진주사(將進酒辭) - 정 철(鄭 澈)

 

한 잔(盞) 먹새근여, 또 한 잔(盞) 먹새근여. 곳 것거 산(算)노코 무진 무진(無盡無盡) 먹새근여.

이 몸 주근 후(後)면 지게 우해 거적 더퍼 주리혀 매여 가나 뉴소보댱(流蘇寶帳)의 만인(萬人)이 우러녜나, 어욱새 속새 덮가나모 백양(白楊) 수페 가지곳 가면, 누른해 흰 달 가난 비 굴근 눈 쇼쇼리바람 블 제, 뉘 한 잔(盞) 먹쟈 할고.

하물며 무덤 우해 잰나비 파람 불 제야 뉘우친달 엇디리. ― <송강가사>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꽃 꺾어 잔 수를 세면서 한없이 먹세그려.

이 몸이 죽은 후에는 지게 위에 거적을 덮어서 졸라 묶여 실려 가거나. 곱게 꾸민 상여를 타고 수많은 사람이 울며 따라가거나. 억새풀, 속새풀, 떡갈나무, 버드나무가 우거진 숲에 한번 가기만 하면 누런 해와 흰 달이 뜨고, 가는 비와 굵은 눈이 내리며, 회오리바람이 불 때 누가 한 잔 먹자고 하겠는가.

하물며 무덤 위에 원숭이가 놀러 와 휘파람을 불 때 뉘우친들 무엇하겠는가.

 

● 주제 : 술을 권함(최초의 사설시조)

● 이해와 감상 : 애주가(愛酒家)로 이름이 높고 호방한 성격의 소유자인 송강의 성품이 잘 드러난 권주가(勸酒歌)이다. 대부분의 사설시조가 작자․연대 미상인데 반해 이 노래는 지은이의 신원이 확실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초장에는 송강의 호탕한 성격이 잘 드러나 있으며, 중장과 종장에서는 인간의 최대 약점인 죽음과 인생의 무상감을 강조하여 상대를 설득하려는 의도가 확연하다.

 

 

 

22. 창 내고쟈 창을 내고쟈 - 지은이 모름

 

창(窓) 내고쟈 창(窓)을 내고쟈 이 내 가슴에 창(窓)을 내고쟈.

고모장지 셰살장지 들장지 열장지 암돌져귀 수돌져귀 배목걸새 크나큰 쟝도리로 똥닥 바가 이 내 가슴에 창(窓) 내고쟈.

잇다감 하 답답할 제면 여다져 볼가 하노랴. ― <청구영언>

 

창을 내고 싶다, 창을 내고 싶다, 이 나의 가슴에 창을 내고 싶다.

고모장지나 세살장지나 들장지나 열장지에 암톨쩌귀, 수톨쪄귀, 배목걸새를 큰 장도리로 뚝딱 박아서 이 나의 가슴에 창을 내고 싶다.

그리하여 가끔 가슴이 몹시 답답할 때면 여닫아 볼까 하노라.

 

● 성격 및 표현 : 해학적, 열거법, 반복법

● 주 제 : 답답한 심정의 하소연

● 이해와 감상 : 세상살이의 고달픔이나 번뇌에서 기인하는 답답한 심정을 하소연하고 있는 작품이다. 답답한 가슴을 꽉 막혀 있는 방으로 나타내고, 거기에 창문을 만들어 여닫음으로써 그 답답함을 해소해 보겠다는 착상이 참으로 기발하고 재미있다. 가슴에 창문을 낸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지만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을 드러내는 매우 적절한 장치로 활용되었다. 또한 구체적인 생활 언어를 구사하여 문 만드는 모습을 과장적으로 묘사한 것은 다분히 해학적이기도 하지만, 비애와 고통을 어둡게만 그리지 않고 이처럼 웃음을 통해 극복하려는 우리 나라 평민 문학의 한 특징이 엿보인다.

 

 

 

23. 창밧기 어룬어룬커늘 - 지은이 모름

 

窓(창) 밧기 어룬어룬커늘 님만 너겨 펄떡 뛰여 뚝 나셔 보니,

님은아니 오고 으스름 달빗쳬 녈구름이 날 속여고나.

맛초아 밤일셰망졍 행여 낫이런들 남 우일 번하여라. ― <청구영언>

 

창 밖에 무엇이 어른거리기에 임으로만 여겨 펄떡 뛰어서 급히 나가 보니,

임은 오지 않고 어스레한 달빛에 지나가는 구름이 나를 속였구나.

마침 밤이었기에망정이지 행여 낯이었다면 남을 웃길 뻔한 일이었다.

 

● 성 격 : 연모가(戀慕歌), 해학적

● 주 제 : 임을 기다리는 애타는 마음

● 이해와 감상 : 사랑하는 임을 간절히 기다리는 안타까운 마음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지나가는 구름의 그림자를 임의 모습으로 착각하고 황급히 뛰어나갔다가, 속은 것을 알고 몹시 겸연쩍어하는 모습이 소박하면서도 해학적이다. 이 노래는 다른 사설시조 '님이 오마 하거날 ……'과 시상 전개와 주제가 매우 흡사하다. 특히 종장의 표현은 거의 일치하고 있다. 따라서 두 작품의 하나가 다른 작품에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을 다른 각도에서 말한다면, 이 노래의 발상과 주제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 것이다.

 

 

 

24. 한숨아 셰한숨아 - 지은이 모름

 

한숨아 셰한숨아 네 어내 틈으로 드러온다.

고모 장자 셰살 장자 들 장자 열 장자에 암돌젹귀 수돌젹귀 배목걸새 뚝닥 박고 크나큰 잠을쇠로 숙이숙이 차엿난듸 屛風(병풍)이라 덜걱 접고 簇子(족자)ㅣ라 댁대골 말고, 녜 어내 틈으로 드러온다.

어인지 너 온 날이면 잠 못 드러 하노라. ― <병와가곡집>

 

한숨아 세한숨아 네 어느 틈으로 들어오느냐.

고모 장지, 세살 장지, 들장지, 열장지, 암돌쩌귀, 숫돌쩌귀, 배목걸새 뚝닥 박고, 크나큰 자물쇠로 깊이깊이 채웠는데, 병풍이라 덜컥 접은 족자라 대대굴 마느냐. 네 어느 틈으로 들어오느냐.

어찌된 일인지 네 가 온 날이면 잠 못 들어 하는구나.

 

● 성 격 : 수심가(愁心歌), 해학적

● 주 제 : 그칠 줄 모르는 시름

● 이해와 감상 : 삶의 고뇌에서 오는 한숨으로 인해 잠 못 이루는 밤의 정서를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칠 줄 모르는 시름'이라는 어두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그것을 해학적으로 표현해 냄으로써 슬픔을 웃음으로 해소시키는 묘미를 보여주고 있다. 모든 자물쇠로 다 잠그고, 문을 닫을 대로 다 닫아도 어느 틈으론가 새어 들어오는 가는 한숨, 네가 오는 곳을 모르겠다만, 네가 온 날 밤이면 잠을 들 수가 없다는 푸념 속에 세상사를 한탄하는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한숨을 의인화한 수법도 뛰어나지만, 수사 의문법(修辭疑問法)을 사용하여 생의 고달픔과 고뇌를 형상화한 표현 기교도 매우 훌륭하다. 이 시조에서 한숨은 곧 생의 고뇌를 의미하므로 이 작품을 통해서 세상사 모두가 고뇌의 연속이라 할 수 있는 서민들의 생활상을 추측해 보기는 어렵지 않다.

 

 

 

25. 한 눈 멀고 한 다리 저는 - 지은이 모름

 

한 눈 멀고 한 다리 져는 두터비 셔리 마즈 파리 물고 두엄 우희 치다라 안자,

건넌산 바라보니 白松骨(백송골)리 떠 잇거날 가삼에 금죽하여 픐덕 띄다가 그 아래 도로 잣바지거고나.

맛쳐로 날낸 젤싀만졍 행여 鈍者(둔자)ㅣ런둘 어혈질 번하괘라. ― -<병와가곡집>

 

한 눈 멀고 한 다리 저는 두꺼비, 서리 맞은 파리 물고 두엄 위에 치달아 앉아,

건넌 산 바라보니 흰 송골매가 떠 있기에 가슴이 끔찍하여 풀떡 뛰다가 그 아래 도로 자빠지것구나.

다행히 날랜 나였기에 망정이지 행여 둔한 놈이런들 피멍들 뻔했도다.

 

● 성 격 : 상징적, 풍자적

● 주 제 : 양반들의 허장성세(虛張聲勢) 풍자

● 이해와 감상 : 두꺼비, 파리, 백송골 등을 의인화하여 약육 강식(弱肉强食)하는 인간 사회를 풍자한 노래이다. 여기에서 '두꺼비'는 '양반 계층'을, '파리'는 '힘없고 나약한 평민 계층'을, 그리고 '백송골'은 '外勢(외세)'를 상징한다. 따라서 특권층인 두꺼비가 힘없는 민중들을 괴롭히다가 강한 외세 앞에서 비굴해지는 세태를 익살로 풍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