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

권필의 편지 두 통

국어의 시작과 끝 2011. 10. 30. 10:30

 

처음 먹은 마음은 바꾸지 않겠소
-권필의 편지 두 통




강골의 시인, 애틋한 시심(詩心)

권필(權韠, 1569-1612)은 선조 광해 연간의 시인이다. 평생 꼬장꼬장한 강골 기질로 일관했다. 결국 외척의 전횡을 신랄하게 풍자한 시 한 수로 광해군의 미움을 받아, 혹독한 형벌을 받고 귀양길에 올랐다가 동대문 밖 객점에서 세상을 떴다.
하지만 그의 시는 섬세하고 따뜻한 시정(詩情)을 담아 읽는 이의 심금을 울렸다. 단짝 친구 허균(許筠, 1569-1618)은 그의 시를 두고, “절세가인이 화장하지 않고, 구름도 가던 길을 멈출 듯 아름다운 목소리로 희미한 등불 아래서 슬픈 곡조의 노래를 부르다가 다 끝나기도 전에 일어나서 가버리는 것과 같다”고 했을 정도다.
서인(西人)에 속했던 그는, 존경하던 정철(鄭澈, 1536-1593)이 1591년 왕세자책봉 문제로 동인의 모략을 입어 파직되어 귀양 갔다가 얼마 후 세상을 뜨자, 공도(公道)가 행해질 수 없음을 알아 과거 시험을 깨끗이 포기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포의의 선비로 유성룡과 이산해의 목을 베어 백성에게 사죄케 하라는 상소를 올려 조야(朝野)를 들끓게 했다.
임란 이후 1597년 29세 때, 그는 강화도로 들어가 은거해 버린다. 아예 눈꼴 신 세상과 담쌓고 마음공부에만 힘쓸 참이었다. 그런 그를 벗들은 늘 안타까워했다. 허균이 친구 조위한(趙緯韓, 1558-1649)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것이 있다.

이조판서를 만났더니, 권필을 동몽교관(童蒙敎官)으로 임명하고 싶답디다. 그가 나올는지 모르겠군요. 형께서 시험 삼아 그에게 물어보시지요. 벼슬은 때로 가난 때문에 하기도 하는 법입니다.

끼니를 굶는 가난 속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는 그를 위해 백방으로 그에게 도움을 주려 애쓰던 마음들을 읽을 수 있는 짧은 편지다.



다시는 말하지 마오

권필의 문집인 《석주집(石洲集)》에는 두 통의 편지가 실려 있다. 두 통 모두 권필에게 너무 모나게 살지 말고, 가족들 생각해서 과거 시험도 보라는 벗들의 권유에 대한 답장이다. 먼저 읽을 것은 〈한천(寒泉) 허잠(許潛)에게 보내는 답장〉이다

무료해 마음 둘 곳 없던 차에 아우가 와서 그대의 편지와 시를 받았소. 고맙고 감사하오. 그대의 말이 이안눌(李安訥)이나 송구(宋耉) 등과 시 짓고 술 마시며, 거문고에 노래 부르며 노니는 즐거움을 누리신다니, 내가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쓸쓸히 지내는 것을 더욱 느끼게 되어 서글퍼지는구려. 또 이 앞서 보낸 편지를 보니, 과거에 응시하라는 뜻으로 날 일깨워 주었는데, 이는 심히 서로를 아는 말이 아니라 하겠소.
내가 세상에서 노닐 수 없는 것은 스스로도 이미 잘 알고 있는 터, 어찌 이러쿵저러쿵 하는 자들 때문에 처음 먹은 마음을 바꿀 수 있겠소. 설령 붓 잡고 먹을 농해 글을 겨루는 자리에 내달린다 해도 나는 저 말 많은 자들이 더욱 심하게 굴 것을 잘 알고 있소. 움직였다 하면 원수를 얻는다 함은 옛 사람도 면치 못한 바였거늘, 나 같은 사람이야 어찌 한탄하겠는가?
내게는 옛 책 몇 권이 있어 혼자 즐기기에 충분하고, 시는 비록 보잘 것 없지만 마음 풀기엔 넉넉하다오. 집이 비록 가난해도 또한 막걸리를 댈 만은 하니, 매번 술잔 잡고 시를 읊조리면 유연히 스스로 얻어, 늙음이 장차 이르는 줄도 모른다오. 저 말 많은 자들이 내게 무엇이리오. 바라건대 그대는 다시는 말하지 마오. 틈나면 마땅히 만나보기를 고대하오. 이만 줄이오. 권필 드림.

허잠의 편지는 고집 그만 부리고, 이제 가족 생각을 해서라도 과거시험에 응시하라는 내용이었던 듯하다. 권필은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말라며 이러쿵저러쿵 뒷말 하는 자들 때문에 결코 처음 먹은 뜻을 꺾지는 않겠노라며 앙칼진 마음을 다잡고 있다. 그들은 나더러 세상에 불만을 품어 숨어산다며 헐뜯다가, 막상 세상에 나가면 너 잘 걸렸다 하며 물어뜯을 인간들이라는 것이다. 그들과 진창에서 함께 뒹구느니, 마음 편하게 혼자 지내겠다고 했다.


나를 권면함이 진실로 옳소

또 한통의 편지는 권필의 모난 행동을 나무라는 송석조(宋碩祚)의 편지를 읽고 보낸 답장이다.

 


필은 여쭈오. 글은 잘 받았소. 나를 너무 과도하게 허락하였으나, 나를 권면한 것이 진실로 마땅한지라 그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평소 생각을 대략 펼쳐 보이오.
나는 타고난 성품이 제멋대로여서 세속과 어울림이 적어, 매번 붉은 대문 으리으리한 집을 지날 때면 반드시 침을 뱉고 지나가고, 허름한 골목에서 쑥대로 이은 집을 보면 늘 서성이고 돌아보면서 팔꿈치 베고 물 마시면서도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는 사람을 만나보게 될 것을 생각하곤 했었소. 매번 높은 지위에 올라 온 세상이 어질다고 여기는 사람을 만나면 이를 천하게 보기를 마치 종놈 대하듯 하였고, 호협한 기개로 개나 잡아 마을에서 천하게 여기는 사람을 만나면 언제나 기쁘게 함께 사귀기를 원하며, “슬픈 노래로 비분강개하는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고 말하곤 했지요. 이것이 제가 세속에서 괴이하게 보이는 까닭이니, 나 또한 이것이 무슨 마음인지 알 수가 없었소.
이런 마음을 가지고 세상과 어울리고 싶지 않아, 장차 산야로 물러나 지내면서 마음을 거두고 성품을 길러, 옛 사람이 말한 도를 구하려고 마음먹었지요. 그래서 주돈이(周惇頤).정호(程顥).정이(程頤).장재(張載).소옹(邵翁).주희(朱熹).여조겸(呂祖謙) 등의 책을 가져다가 읽고 생각하였다오. 비록 감히 스스로 얻은 것이 있다고 할 수는 없어도, 글과 뜻의 사이에 간혹 뭉클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있어, 마침내 배움에 향하기로 결심한 것이 지금 6,7년이 되었소.
하지만 엄한 스승이 곁에 있는 것도 아니요, 유익한 벗이 도와주는 것도 없는지라, 아득하고 용렬하여 때로 더불어 떠다니고 있소. 게다가 시 짓고 술 마시는 습관이 또 좇아 몸에 얽혀있어, 비록 도에 뜻을 두었다고는 하나 그 말과 행실은 다만 예전 사람 그대로일 뿐이라오. 그대의 이러한 꾸지람이 있는 것이 마땅하다 하겠소.
아! 그대가 나를 꾸짖음이 진실로 옳고, 그대가 나를 아낌이 진실로 크다 하겠다. 나는 일찍이 선을 권면하고 어짊을 돕는 것이 옛날의 도인데, 지금 세상에서는 옛 사람의 도를 행하는 자가 다시 있지 않다고 여겼었는데, 이제 홀연 이것이 있어, 내 자신 직접 보게 되니 감히 두 번 절하여 그대를 기뻐하고, 또 내 스스로 기뻐하지 않을 수가 없구려. 비록 그러나 남을 권면하기는 쉽고 자기를 권면하기란 어렵다 했소. 그대가 능히 나를 권면하던 것으로 스스로를 권면할 수 있다면 또한 다행이겠소. 이만 줄이오. 권필


송석조가 권필에 대해 어떤 충고를 던졌던 듯하고, 권필은 이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또렷이 밝혔다. 길들여지지 않는 정신을 지녀, 비분강개의 분노를 누르고 ‘수심양성(收心養性)’ 즉 마음을 거두고 성품을 기르려 성리서(性理書)를 탐독했지만, 불쑥불쑥 타고난 기질을 주체하지 못해 모난 말을 시로 쏟아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권필의 그의 충고에 전적으로 승복했던 것 같지는 않다. 편지의 끝부분에서 나를 권면하던 말로 스스로를 권면할 수 있다면 다행이겠다고 한 것을 보면, 권필의 속마음은 “충고는 고마운데, 너나 잘해라”는 것이었던 듯 하다.
예나 지금이나 뜻을 세워 한 세상을 온전히 건너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공도(公道)는 행해지지 않고, 불의는 늘 정의를 억압한다. 난무하는 권모술수와 부정부패 앞에 주먹을 불끈 쥐며 분노하던 그의 시와 편지를 읽으면서, 이것이 마치 지금 눈앞의 현실이리가도 하듯 공감하게 되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다만 이제 그 형형한 정신을 만나 볼 길 없어, 나는 오늘도 그의 편지와 시집을 뒤적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