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1536-1593) 선조 대의 인물. 선조 11년 동인의 탄핵으로 벼슬에서 물러나 전남 창평에 은거하였다. 이 때, 왕 의 부름을 받고 나와 강원도 관찰사로 나가게 된다. 선조 16년 4월 예조판서 정철이 사헌부로부터 탄핵을 받았다. 그 해 9월에 사간원으로부터 탄핵을 받았다. 내용인즉 “정철이 동서 붕당 싸움질에 근원이 되고 있다”는 점과 “정철이 유생들을 움직여서 상소하게 하여 이리저리 얽어서 화를 일으킨다.”는 것이었다.
선조 18년 9월 정철은 조정에서 물러나 전남 창평에 내려갔다. 이때 정철이 나이 50이었는데,52세 때 정철이 선조 임금을 그리워한다는 노래를 짓고서 <사미인곡>이라 했다. 임금을 미인이라 한 것은 아부에 가깝다. 선조 22년 기축 10월에 옥사가 일어나 선비들이 떼죽음을 당하였다. 이때 정철은 정여립 사건을 다스리는 전권을 맡은 위관이 되어 함정에 얽어서 죄 없는 선비들을 많이 죽였다.(기축사화)
선조 24년 3월 정철의 죄상이 조당에 방으로 붙었다. 정철은 파직되고 6월에 강계로 귀양을 갔다. 강계 귀양살이에서 정철은 선조 임금을 미인이라고 하면서 미인을 생각한다는 국문가사를 짓고 <속미인곡>이라 했다. 정철의 나이 56이었다. 대표작은 <사미인곡> <속미인곡> <훈민가> 등이 있다. <훈민가>는 시조이고 <관동별곡>은 가사이다. 즉, 訓民 말 그대로 백성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 목적임으로 쉬운 한글로 씌어져 있다. 이는 작가가 백성을 가르친다는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관동별곡>은 한자 어휘와 전고 등이 많이 사용되어 보다 지배층의 문화를 대변해 주고 있다. 결국 <훈민가>는 목적성에 의하여, <관동별곡>은 흥에 의하여 지어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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