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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대 트로트, 가사는 구세대

국어의 시작과 끝 2007. 9. 19. 05:22
신세대 트로트, 가사는 구세대
헤럴드 생생뉴스 | 기사입력 2007-09-18 15:20 기사원문보기

선주(이혜영 분): 무슨 트로트 가사같네.

달자(채림 분): 뭐 트로트가 인생이고 인생이 트로트지. 듣다보면 구구절절 어찌그리 내 얘기 같은지. 안그래요? 선주: 트로트를 위하여! 달자: 트로트를 위하여! (2007년 1월 31일 방송된 KBS 드라마 ‘달자의 봄’ 9회) 올해 초 방송된 드라마 ‘달자의 봄’에서 주인공 달자와 선주는 서로의 일상을 늘어놓으며 트로트 가사에 건배한다. 구체적인 가사를 애잔한 멜로디에 풀어내는 트로트는 오랜 세월 많은 사람과 공감대를 형성해 왔다. 예컨대 1930년대 독립군에 참가하기 위해 출정한 남편 소식을 알아보려고 두만강을 건너 왔다가 남편의 전사 소식을 듣고 슬피 우는 여성의 이야기를 가사에 담은 김정구의 ‘눈물 젖은 두만강’에서 추억과 인생에 대한 사색을 담아 노랫말의 위력을 보여준 최백호의 94년 곡 ‘낭만에 대하여’까지 트로트 명곡은 시대상을 문학적 표현으로 풀어냈다.

그러나 랩, 댄스음악의 등장으로 주춤하는 듯 싶던 트로트 열풍이 되살아나 ‘트로트 르네상스’라는 말까지 나온 지금에 이르면 ‘구구절절 내 얘기 같은’ 가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몇 년 전부터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는 이른바 ‘신세대 트로트’ 가사는 신세대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하면서 구시대적인 연애담을 늘어놓고 있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신세대 트로트’의 대표주자인 가수 장윤정의 ‘어머나’(어머나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 여자의 마음은 갈대랍니다) ‘이따이따요’(여자니 한번쯤은 튕기고 마지못해 대답해 주면 어느새 내게로 와 안돼 안돼 좀 이따 이따 이따요 그래 그래 더 이따 이따 이따요)처럼 수동적인 여성상을 묘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박주희의 ‘자기야’(자기야 사랑인 걸 정말 몰랐니 …어쩜 좋아 자기가 좋아), 온희정의 ‘진짜로’(당신만 옆에 있으면 좋아 좋아 너무나 좋아…당신없인 나는 못살아 못살아 진짜로 진짜로), 박현빈 ‘곤드레 만드레’(다시는 너를 울리지 않을 거야 나의 여자로 만들 거야 내겐 언제나 너뿐이야 웃으며 내게 돌아와줘) 등 떠오르는 트로트 스타들 역시 진부하기까지 한 전형적 문구를 노래하고 있다.

이처럼 가부장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트로트 노랫말에 대해 젊은 여성들은 “가장 진보적인 장르인 대중가요의 역행이자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비판한다. 직장인 양정은(25) 씨는 “가끔 노래방에서 트로트를 부르거나 듣다보면 가사가 민망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고 털어놨다. 초등학교 6학년 딸을 키우는 김우진(45) 씨는 “딸이 트로트를 즐겨 부르는데 가사를 듣다보면 여성에 대한 잘못된 시각을 갖게 될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새로운 음악 유통시장인 벨소리, 컬러링 등 디지털 음원시장으로 바뀌는 동안 이에 발빠르게 적응한 변종 트로트가 늘어나고 있는 것도 신세대 트로트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강렬한 후렴구로 기억에 남는 곡을 만들려다 보니 ‘어머나’ ‘이따 이따요’ ‘자기야’ ‘진짜로’ ‘곤드레 만드레’와 같이 단순한 단어의 반복적 등장은 인기 트로트의 필수요소가 됐다. 또 노래방에서 부르기 좋은 곡을 만들기 위해 ‘당신없인 못살아’ 같은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가사나 트로트 가사의 획일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추세다.

문화평론가 강태규 씨는 “우리 일상을 촘촘하게 그려내면서 애환과 정서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강점인 과거의 트로트와는 달리, 최근 유행하는 일명 신세대 트로트는 무의미한 가사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김하나 기자(hana@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