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뉴스

네오 트로트, 젊은 세대 속으로

국어의 시작과 끝 2007. 5. 6. 01:37
젊어진 트로트, 신세대 파고든다
[주간조선 2006-04-20 09:56]
 

특집 / 네오 트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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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트로트 가수 설운도가 “트로트 음악도 좋은 스튜디오에서 충분한 제작비를 가지고 만들면 달라진다. 문제는 돈이다. 트로트 분야에 자본이 몰리지 않으니 양질의 트로트가 나오기는 어렵다”고 말한 적이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 음악계를 규정하는 단골 어휘는 ‘침체’였다. 젊은층 대상의 음악이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것은 이미 변방으로 내몰린 성인 대상의 트로트는 더욱 궁지에 빠졌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시장이 죽었는데 거기에 투자할 사람은 없다. 설령 트로트 음반이 나오더라도 설운도의 말처럼 영세성을 벗지 못해 제대로 품질을 갖춘 작품을 기대하기란 어려웠다.

그나마 트로트가 부활했던 1980년대에 지명도를 확보한 송대관, 태진아, 현철, 주현미, 그리고 설운도 등이 트로트의 ‘사망선고’를 막았다. 이들에 의해 트로트의 명맥이 겨우 유지되었는데, 일각에서는 이들의 독과점이 트로트의 발전을 가로막는다고 비판했다. 사실은 인상적인 신인이 나오지 않았기에 분명 TV에서 트로트는 살아 있었지만 대중음악 시장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활기는 없었다.

그러던 것이 갑자기 판이 달라졌다. 만성적인 침체상태를 벗어나 트로트가 활기찬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 것이다. 자칭 ‘트로트 가수’라고 하는 신인이 마구 쏟아져 나왔고, 관련 음반도 부쩍 늘었다. 마침내 트로트 판에 돈이 몰리게 된 것이다.

전기를 마련한 주인공은 두말 할 것도 없이 특급스타 장윤정이다. 그녀의 ‘어머나’는 2004년 후반부터 불이 붙더니 이듬해 초 큰일을 냈다. 지난해 2월 MBC TV ‘생방송 음악캠프’에서 ‘어머나’가 최고가수인 이수영의 ‘꽃들은 지고’를 누르고 당당 1위를 차지했다. 지상파 TV에서 트로트 계열의 곡이 차트 정상에 등극한 것은 1993년 김수희의 ‘애모’가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를 꺾고 1위가 된 이후 12년 만의 일이었다. 음악평론가 이대화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아니, 오랜만에 진짜 재미있고 박장대소할 일이 터졌다”고 말했다. 정말로 장윤정의 유쾌한 ‘카운터 펀치’ 한방으로 트로트는 오랜 한숨과 완전히 작별했다.

처음에는 장윤정 개인의 영광으로 끝날 것처럼 보였다. ‘어머나’의 대히트 이후 장윤정은 트로트 가수에 관심 없는 젊은층 대상의 TV 쇼프로에까지 ‘러브 콜’ 0순위로 뛰어올랐고, 좀처럼 트로트 가수를 소개하지 않던 인쇄매체까지도 앞다퉈 그에 대한 기사를 다뤘다. 그야말로 ‘장윤정 신드롬’이 탄생한 것이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머나’와 같은 대박을 꿈꾸는 후발주자가 줄을 이었다. 그러면서 장윤정 신드롬은 개인이 아닌 다수의 ‘네오(Neo) 트로트 붐’, 즉 ‘새로운 트로트’의 급부상으로 영토가 확대됐다. 아역 탤런트 출신으로 오는 4월 결혼식을 올리는 이재은이 ‘아시나요’로 네오 트로트 대열에 합류했다.

예전에 젊은층을 대상으로 한 댄스가수로 데뷔한 적이 있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그녀는 트로트 분야로 전향해 성공했다. ‘아시나요’의 ‘콩나물 살짝 무쳐/ 된장찌개 끓이고/ 그대 돌아오면 다정히 안아주세요/ 아시나요 /이런 내 사랑을 몰라준다니(후략)’라는 가사가 이재은의 매력과 잘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장윤정과 이재은은 모두 1980년생. 나이 든 사람이 주름잡던 성인 트로트 음악계에서 보면 일종의 ‘세대반란’이다. 선두주자가 매력적인 여성이어서 그런지 젊은 여가수가 대거 트로트 쪽으로 몰려들었다. ‘길고 예쁜 여자들’(Long Pretty Girls)이란 뜻을 지닌 여성 4인조 트로트 그룹 LPG는 미스코리아와 슈퍼모델 출신을 주축으로 매력적인 외모로써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예전 같으면 이런 컨셉트의 여성그룹은 베이비복스나 핑클과 같은 신세대 대상 댄스그룹이 됐을 것이다. 3인조 여성그룹인 아이리스는 아예 ‘트로트계의 핑클’을 표방하고 나섰다. 자매 듀엣인 ‘뚜띠’도 처음에는 댄스음악 쪽을 타진하다가 결국 트로트로 방향을 바꿨다. 솔로 여가수로는 ‘나빠’의 이지나, ‘자기야’의 박주희 등이 있는데, 박주희의 경우 ‘트로트계의 이효리’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심지어 ‘남자 장윤정’도 나타났다. 장윤정을 발굴한 소속사의 신상품인 박현빈은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졸업 후 바이올린을 연주했는데 클래식 연주자의 꿈을 접고 트로트계로 방향을 틀었다. 또 아직 생소한 이름이지만 조한의 경우는 미국의 명문대를 다니다가 트로트 가수로 데뷔한 케이스다. 이처럼 수많은 젊은 가수지망생이 네오 트로트의 바다에 뛰어들고 있다.

그렇다면 네오 트로트 가수는 누가 만들까? 대표적인 기획사는 장윤정과 박현빈이 소속된 인우프로덕션이다. 뚜띠는 엄정화, 코요태 등과 함께 트라이펙타 소속이고, LPG는 찬이프로덕션에서 기획했다. 또 이재은은 김제동, 임창정 등과 함께 에이스 미디어에 속해 있다.

네오 트로트 작곡가 중에는 가수 박진영의 매니저 출신인 윤명선씨가 첫손가락에 꼽힌다. 윤씨는 장윤정의 ‘어머나’ ‘짠짜라’, 이재은의 ‘품’ ‘나무’, LPG의 ‘캉캉’ 등을 작곡했다. 특히 LPG의 ‘캉캉’은 프랑스 파리에서 물랭루주 공연을 본 후의 감정을 담아서 만들었다.


네오 트로트 붐이 뚜렷이 목격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음반이 모두 잘 팔리는 것은 아니다. 장윤정만 하더라도 ‘어머나’와 후속 앨범 ‘짠짜라’가 모두 판매량 4만~5만장 선에 불과하다. 이름값에 비해 판매실적이 저조한 편이다. 이를 모르지 않을 텐데도 우후죽순 격으로 젊은 트로트 가수가 늘어나는 것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믿는 구석으로는 뉴미디어 음원시장을 들 수 있다. 음악산업은 CD, 테이프와 같은 오프라인 시장에서 휴대폰 벨소리와 컬러링, MP3 등 온라인과 디지털 시장으로 대거 이동하고 있다. 네오 트로트는 바로 이 새로운 음원시장을 노리는 것이다. 실제로 장윤정의 ‘어머나’도 도입부의 ‘어머나, 어머나’ 단 두 마디가 주는 재미로 네티즌 사이에서 엄청난 폭발력을 발휘하면서 인터넷 싸이월드의 미니홈피, 네이버의 블로그, 그리고 휴대폰의 벨소리와 컬러링을 장악했다. 이것이 노래방으로까지 인기가 확산됐다.

때문에 음악계에서 ‘어머나’는 트로트 음악의 승리라기보다는 네티즌의 후원에 힘입은 ‘뉴미디어 세계에서의 대박’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오프라인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네오 트로트가 온라인과 디지털 시장을 과녁으로 조준해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해졌다. 특히 참신한 즐거움을 갈구하는 네티즌 입장에서는 네오 트로트가 주는 ‘뽕짝 같지만 유쾌한 음악’의 재미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에 네오 트로트 제작자는 현재 ‘네티즌의 맘에 쏙 들 가사’를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다. 그리고 방송 역시 지상파보다는 케이블 TV와 지역 방송을 겨냥하고 있다. 케이블 아이넷TV(inet TV) ‘성인가요 차트 50’, 청주방송 ‘전국 톱10 가요쇼’ 등이 대표적이다.

두 번째 믿는 구석은 지방 축제부터 환갑잔치에 이르는 각종 행사 출연이다. 트로트 음반시장 규모는 연 400억~500억원대로 추정된다. 한때 1만개가 넘었던 레코드숍이 전국 1000여개로 감소한 요즘에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팔리는 음반이 더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개그맨 김숙의 경우 아예 고속도로 휴게소를 겨냥한 음반을 내기도 했다.

그런데 행사 출연료 시장 규모는 500억원 이상이다. 따라서 네오 트로트 가수는 음반과 방송 출연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린 후 전국을 돌며 각종 무대에 오르는 것이다. 최고 대우를 받는 장윤정의 경우 1회 출연료가 1500만원에 이르고 뚜띠는 500만원 선이다.

스타앤스타 장민 사장은 “요즘은 음반판매 10만장을 넘기기도 어려운 때이기에 트로트 쪽에서는 일단 1만장 넘기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서 “이에 따라 기본적인 음반판매와 방송출연으로 자신의 인지도를 높인 후 이를 바탕으로 행사 출연에 더욱 적극성을 띠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 번째는 한류다. 물론 계은숙, 김연자, 장은숙 등 기존 트로트 가수가 일본에서 활동을 했지만 최근에는 네오 트로트 가수도 일본 등 아시아 진출을 시작했다. 역시 선두에는 장윤정이 있고, 4인조 LPG는 일본에서 출판된 한국어 학습 교재에 소개됐다. 일본의 다카라지마샤에서 나온 ‘한글 스타트-기초 완벽편’에 LPG의 인터뷰와 히트곡 ‘캉캉’이 수록된 것이다. 가사에는 일본어 발음과 단어 해설을 붙였고 노래 ‘캉캉’을 별책부록 CD에 담았다. LPG 소속사 찬이프로덕션은 일본 출판사 직원이 직접 찾아와 LPG와 인터뷰를 했고 노래 게재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통 트로트 가수 중에서는 네오 트로트를 놓고 “트로트의 정체성에서 많이 이탈한 하나의 변종일 뿐”이라고 차가운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가수 주현미는 네오 트로트가 ‘코믹 가요’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일부 네티즌도 ‘어머나’와 ‘짠짜라’에 보낸 성원이 트로트라는 장르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그저 재미있어서라는 분석에 동의한다.

네오 트로트가 정통 트로트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트로트는 2박자 형식의 음악이지만, 네오 트로트는 박자가 자유롭고 폴카, 라틴, 트위스트 심지어 힙합, 댄스 리듬과의 결합을 꾀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퓨전 트로트’라는 말도 나온다. 물론 어떤 것을 섞든 춤을 자극하는 리듬인 것이 공통이다. 정통 트로트 진영에서 네오 트로트를 트로트로 분류하지 않고 댄스음악의 일종이라고 비판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트로트는 1980년대 말 템포가 빠른 ‘폭스 트로트’로 흐름이 달라지기도 했으나 언제나 ‘서민의 애환’이라는 큰 정서의 틀 속에서 움직여왔다. 반면 네오 트로트는 애가(哀歌)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경쾌하고 코믹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무늬만 트로트고 실상은 ‘신세대 오락 콘텐츠’라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상업적으로는 ‘네오 트로트가 전통적인 트로트 양식과 차이가 있지만, 트로트가 아니라고 못 박기도 어려워 범(凡)트로트로 볼 수 있다’는 인식 아래 ‘트로트의 르네상스’로 파악된다. 젊은이가 트로트에 관심을 갖고, 노래방에서 부르고 또 투자가 몰려 제작이 활성화되는 것은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베테랑 작곡자이자 제작자인 이승대씨는 “우리 대중음악의 큰 강물은 트로트다. 네오 트로트는 기성세대와 신세대를 아우르고 있고 대중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길 만한 흐름”이라고 한다. 그는 “네오 트로트 붐을 통해 트로트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 내면의 음악적 정서를 다시금 확인한다”고 말했다.

물론 갑작스러운 네오 트로트 바람에 편승해 졸작을 쏟아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가벼운 유행은 소멸이 빠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트로트업계 종사자들은 일단 지금처럼 반응이 왔을 때 ‘가사의 퀄리티’를 제고하고, 녹음과 사운드 수준을 높여 좋은 기회로 잘 살리려 한다. 또 위기의식을 느낀 중견 트로트 가수와 정통 트로트 진영은 차별화 전략으로 전통성을 담은 트로트를 내놓기 위해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다. 트로트가 더 큰 위력을 갖추기 위해 네오 트로트와 정통 트로트가 서로 경쟁하며 콘텐츠를 다양화하고 외연을 확장할 필요가 있음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서일호 주간조선 기자(ihseo@chosun.com)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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