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

나미, <슬픈 인연>

국어의 시작과 끝 2007. 6. 16.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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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 <슬픈 인연>


멀어져 가는 저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난 아직도 이 순간을 이별이라 하지 않겠네

달콤했었지 그 수많았던 추억속에서

흠뻑 젖은 두 마음을 우린 어떻게 잊을까


아 다시 올거야 너는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아 나의 곁으로 다시 돌아 올거야

그러나 그 시절에 너를 또 만나서

사랑할 수 있을까 흐르는 그 세월에

나는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려나


아름다운 인연(因緣). 이 말보다 더 우아한 우리말 표현이 있을까? 거죽만으로는 더 멋진 표현도 있을 성 싶다. 하지만, 속내까지도 이렇게 아름다운 표현은 정말 드물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 중에는,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라고 한 피천득 선생의 수필 <인연>을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그 자체로 절로 수긍하게 하는 멋진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인연’이라는 말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 등과 같이 흔히 쓰는 말이지만, 그 속을 살펴보면 ‘철리(哲理)’라고 할 만한 깊은 뜻을 담고 있다. 불가(佛家)에서는 ‘인(因)’과 ‘연(緣)’을 구별하여 설명한다. 앞의 것은 내적인 직접 원인을, 뒤의 것은 외적인 간접 원인을 말한다. 비유하여,  꽃이라는 결과를 두고 말한다면, 씨앗은 ‘인’이요, 그것을 심고 가꾸는 것은 ‘연’이다. 결국 한 송이 꽃을 피우는 데에도 인과 연이 합작을 해야 하는 것이다. 불가에서는 이를 두고 인연과보(因緣果報)라 한다.


연인들 사이의 사랑도 그런 것이 아닐까? 두 사람이 만난 것은 ‘인’이 있어서겠지만, ‘연’이 없으면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다들 보기에 잘 어울리는 만남이지만, 서로가 노력하여 사랑의 꽃을 피우려는 노력이 부족한 경우도 있다. ‘인’은 있으되 ‘연’이 없어, 성과(成果)를 얻지 못하게 될 것이며, 둘의 만남은 결국 불행으로 끝날 것이다. 참 우연한 만남이고, 쉽게 상상하기 힘든 만남이었지만, 부단한 노력으로 아름다운 사랑의 꽃을 피우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연’이 ‘인’의 부족함을 채워서 좋은 성과를 얻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슬픈 인연>이란 뭘까? 사랑하였으나, 어쩔 수 없이 이별을 할 수밖에 없어서 슬픈 인연이라는 것일까? 생각해 보건대, 그것은 슬픈 사랑이지 슬픈 인연은 아니다. 사랑을 이루려는 노력이 부족하여 이루지 못한 사랑이어서 슬픈 것일 뿐이다. 그것을 두고 만남 자체마저 슬픈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굳이 ‘슬픈 인연’이라고 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이별해야만 하는 상황인데, 마음속으로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런 상황이라면 ‘만남’ 자체부터 불행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나 싶다. 지금은 이별하지만, 두 사람은 믿고 있다. 진정으로 사랑하였기에 다시 돌아와 만날 것이라고. 너나 나나 네가 없는 나는 너무나 외로울 수밖에 없고, 내가 없는 너는 너무나 외로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진정한 사랑은 몸이 같이 하지 못한다고 하여 끝나는 것도 아니다. 차라리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리움은 짙어질 수밖에 없고, 그 허전한 마음을 다른 어느 것도 채워 줄 수 없다. 그렇다면 결국 ‘아름다운 인연’인데, 왜 ‘슬픈 인연’이라고 했을까?


“그러나 그 시절에 너를 또 만나서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노랫말 속에 답이 있다. 서로는 다시 만날 것이다. 그러나 그 시절에도 지금처럼 서로를 사랑할 수 있을까? 그것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흔한 생각처럼 세월이 흐르고 서로가 변해서 예전과 같은 사랑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이었기에 정말 너무나 큰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음을 걱정하는 것이다. 회복하기 힘들만큼 깊은 상처, 그 상처를 안고도 사랑할 수밖에 없을 그 사랑의 인연이 슬픈 것이다. 그 슬픈 인연 앞에 울 수밖에 없고, 또 ‘그 날’이 오더라도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허나 어쩌랴. 그렇게, 그렇게 살다가, 살다  가는 것이 운명을 주관하는 절대자 앞에 한없이 부족한 인간의 운명인 것을. 운명을 사랑하는 것 밖에 달리 도리가 있는가?  

 

하희정 wizbook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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