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대관, <네박자>
니가 기쁠때 내가- 슬플때
누구나 부르-는 노-래
내려보는 사람-도 위를보는 사람도
어차피- 쿵짝이라-네
쿵짝 쿵짝 쿵짜짜 쿵짝
네박-자 속-에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 있-네
한구절 한고비 꺾고 넘을때
우리네 사연을 담는 울고 웃는 인생사
연극같은 세상사
세상사 모두가 네박자 쿵짝
쿵짝 쿵짝 쿵짜짜 쿵짝 네박-자 속-에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 있-네
짠짠 짜리라라 짠짠짠
짜리 짜리리라라 짜짜짠
나 그리울때 너 외로울때
혼자서 부르-는 노-래
내가 잘난 사람-도 지가 못난 사람도
어차피- 쿵짝이라-네
쿵짝 쿵짝 쿵짜짜 쿵짝
네박-자 속-에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 있-네
한구절 한고비 꺾고 넘을때
우리네 사연을 담는 울고 웃는 인생사
소설같은 세상사
세상사 모두가 네박자 쿵짝
송대관의 음악은 인생론의 세계이다. 그의 인생론은 얼핏 보기에 통속적으로 보인다. 심오한 철학자의 논저에서 뽑아온 인생철학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살다보면 너도 알고 나도 아는 필부필부(匹夫匹婦)의 인생철학이다. ‘인생은 생방송 홀로드라마, 되돌릴 수 없는 이야기’ 정도의 인생론이다. ‘오늘 하루 힘들어도 내일이 있으니 행복하구나!’ 정도를 두고 심오하니 뭐니 할 것도 없겠다. 하지만 어떤가? 가장 통속적인 것이 가장 절박한 것, 가장 실감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소설 같은 세상사’라는 말이 흔한 말이지만, 정말 실감나는 때가 많지 않은가?
<네 박자>는 그의 노래 <유행가>와 엮어서 감상하면, 그 내용이 분명해진다. ‘나 그리울 때, 너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르는 노래’가 뭐겠는가? ‘이별도 있고 눈물도 있’으며, ‘한 구절 한고비 꺾고 넘을 때’, ‘우리네 사연을 담는’ 것이 뭐겠는가? ‘음정 박자 따로’여도 좋으니, ‘넘치는 감정으로 부르는 노래’라는 유행가이다. 그러니까, ‘네 박자 속에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 있네’(<네박자> 중에서)와 ‘유행가 노래 가사는 사랑과 이별 눈물이구나.’(<유행가> 중에서)는 같은 내용인 것이다.
다소 엉뚱해 보이지만, 이렇게 질문해 볼 수 있겠다. 왜 유행가가 4박자뿐인가? 2박자도 많고, 3박자도 많은데 말이다.(실제로 유행가의 대표격인 트로트의 기원에 대해서는 말이 많지만, 정설은 2박자의 볼룸댄스 리듬의 하나인 폭스트로트(foxtrot)로부터 파생됐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물론 4박자의 유행가가 많다는 것을 알지만 말이다. 혹시 ‘4’라는 숫자에 뭔가 미처 생각지 못한 심오(深奧)한 의미가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소설 작품을 두고 리얼리즘의 승리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세상을 사진 찍듯 사실적으로 묘사하다보면, 작품이 작가가 의도하였던 것 이상의 진실을 보여주는 것을 말한다. 유행가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예컨대, 단지 이별의 아픔을 여성의 입장에서 노래한 것일 뿐인데, 여성 해방이라는 시대정신을 담아낸다든지 하는 것 말이다.
‘4’하면 ‘사(死)’와 음이 같아, 모두가 불길하게 생각하는 숫자인데, 뭔 말이냐고? 3층 다음에 4층 건너뛰고 5층인 것 다 알면서, 뭔 말이냐고? 아니다. ‘4’라는 숫자가 그런 인상을 주는 것은 사실이나, 그 근거는 참으로 미약하다. 오히려 예로부터 ‘4’는 완전성, 질서, 합리성, 정의 등 매우 긍정적인 상징적 의미를 갖는 숫자이다. 그것은 4가지 방위(=동서남북)를 나타내는 숫자이고, 4가지 계절(봄여름가을겨울)을 나타내는 숫자이고, 4개의 변(정사각형의 4변)을 나타내는 숫자이다. ‘4’는 온전한 세계의 모습을 상징하는 숫자이고, 변화하는 세계에 내재된 본질적 질서를 상징하는 숫자인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삼위일체(三位一體)라는 말이 더 친숙하지만, 예로부터 완전한 전체를 나타내는 말로는 사위일체(四位一體)가 더 보편적이었다. 세 다리로도 꼿꼿이 설 수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네 다리로 서 있는 것이 훨씬 안정감을 준다. 그래서 가장 동적인 것이 원이라면, 가장 안정적인 것은 4면체이며, 3면체는 좋게 보아 동적이고 나쁘게 보아 불안한 것이 아니겠는가? 3음보와 3박자, 4음보와 4박자를 거칠게 보아 비슷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면, 위의 설명은 참 잘 들어맞는다. 고려가요가 흔히 그러하듯 3음보가 동적이라면, 시조가 흔히 그러하듯 4음보는 정적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네 박자>에서 ‘4’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우선 그가 말하는 ‘유행가’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이 그에게는 유행가이다. 성리학에서 말하는 칠정(七情), 즉 기쁨[喜]·노여움[怒]·슬픔[哀]·두려움[懼]·사랑[愛]·미움[惡]·욕망[欲]의 일곱 가지 인간의 자연적 감정이 유행가 가사에 실체이다. 보통 사람은 특정 시기에 이 감정 중 하나에 치우치게 된다. 그러면 겉잡을 수없는 절망에 빠지게 되거나, 스스로에게 도취하게 된다. 이 때 필요한 것이 통속적인 그러나 가장 절박한 인생의 지혜이다. 즉, 슬플 때가 있으면 기쁠 때도 있고, 기쁠 때가 있으면 슬플 때도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는 삶의 지혜 말이다. ‘쿵’이 있으면 ‘짝’도 있다는 것인데, 이를 두고 그는 어차피 ‘세상사 모두가 쿵짝’이라고 노래한다. 이를 드라마틱하게 연장하면 ‘쿵짝 쿵짝 쿵짜짜 쿵짝’이 된다. 이는 봄이 오면 곧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곧 겨울이 온다는 자연의 이치를 삶의 이치와 유추시키는 논리와 흡사하다. 바로 이러한 사유의 끝에서 인생론적 지혜가 도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핏 보기에 그가 인생론적 지혜를 여기저기서 생각 없이 주섬주섬 챙겨온 듯싶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그것은 성리학에서 말하는 사단(四端) 즉 ‘불쌍히 여기는 마음’[惻隱之心(측은지심)], 자신의 불의(不義)를 부끄러워하고 남의 불의를 미워하는 마음[羞惡之心(수오지심)], 양보하는 마음[辭讓之心(사양지심)],잘잘못을 분별하여 가리는 마음[是非之心(시비지심)]의 네 가지 도덕적 감정으로 수렴된다. 예컨대 <네 박자>에서는 ‘내가 잘난 사람도 지가 못난 사람도 어차피 쿵짝이라네.’라는 말 속에 그의 인생철학에 집약되어 있다. 잘 났다고 너무 잘 난 척하지 말 것이며, 스스로 너무 못났다고 자포자기(自暴自棄)할 것도 없다는 것이다. 잘 나가다가도 한번의 실수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 인생이고, 못나 보여도 해뜰날이 있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서로를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 필요하고,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설명이 맞는 구석이 적지 않은데, 4음보 형식의 시조에 엄정한 성리학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것처럼, 그의 노래에는 우리 역사를 관통하는 성리학의 전통이 깃들어 있다고 말하면 너무 과장한 것일까?
하희정 대중음악평론가 wizbooks@korea.com
<참고>
사단칠정(四端七情)
인성(人性)을 설명하는 성리학의 주요개념.
맹자 성선설의 근거가 되는 사단은 측은지심(惻隱之心)·수오지심(羞惡之心)·사양지심(辭讓之心)·시비지심(是非之心)을 말하는데, 각각 인·의·예·지의 실마리가 된다. 칠정은 〈예기 禮記〉 예운(禮運)편에 나오는 희(喜)·노(怒)·애(哀)·구(懼)·애(愛)·오(惡)·욕(欲) 등 사람이 가진 7가지 감정을 말한다. 사단과 칠정에 대한 이론적 설명이 중요하게 취급되기 시작한 것은 중국 송대에 성리학이 성립하면서부터이다. 그 이전까지 유교에서는 인간의 심성 문제에 대해서는 깊이 있는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교를 심성 수양의 도리로까지 확대하고 또 체계적이고 통일적인 세계관을 수립하려 했던 성리학에서는 인간의 심성 문제에 대해서도 이론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성리학에서는 마음이 사물에 감촉되지 않은 상태, 즉 심의 미발(未發)을 성이라 하고, 마음이 사물에 이미 감촉된 상태 즉 심의 이발(已發)을 정이라 한다. 결국 미발의 성이 발한 것이 정이며, 사단과 칠정 모두 정을 가리키는 개념이라는 점에서는 같은 범주에 속한다. 그런데 주희는 사단을 '이지발'(理之發)로, 칠정은 '기지발'(氣之發)로 설명하여 양자를 구분하기도 했으나, 사단과 칠정의 이기 분속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지는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성리학이 도입된 초기부터 16세기까지 사단과 칠정을 이기론으로 설명할 때 각각을 이(理)와 기(氣)에 분속시켜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사단칠정논쟁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정지운(鄭之雲 : 1509~61)의 〈천명도 天命圖〉에서도 사단의 발은 순리이며 칠정의 발은 기가 겸한 것이라고 했다. 이황(李滉 : 1501~70)도 역시 이 〈천명도〉를 수정하면서, 사단은 이에서 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에서 발한 것, 혹은 사단은 이가 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라 하여 사단과 칠정을 각각 이와 기에 분속하여 설명했다. 그러나 1559년(명종 14)에 기대승(奇大升 : 1527~72)이 이황의 사단칠정론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에 이황이 자신의 견해를 설명하면서 8년에 걸친 사단칠정논쟁이 이루어졌다. 사단칠정의 이기 분속 문제가 16세기 후반에 이르러 커다란 철학적 문제로 대두하게 된 배경에는 이 시기 조선 성리학에 이제까지의 이기이원론과는 다른 이기일원의 이기론이 성립하기 시작했다는 사정이 있었다. 형이상학의 측면에서 이기이원론은 이를 기의 존재 근거로까지 인정하는 견해를 가리키며 이기일원론은 이를 기의 조리(條理)로만 인정하는 견해를 가리킨다. 이러한 차이가 사단칠정론에서는 기발과 함께 이발을 인정하는 견해와 기발만을 인정하는 견해로 나타난다. 이황은 이기이원론에 바탕을 두고 사단과 칠정을 각각 이와 기에 분속하여 설명했다. 그러나 기대승은 이기일원론적인 견해에 바탕을 두고 사단과 칠정을 설명함으로써 사단과 칠정을 명확하게 이와 기에 분속하는 것을 반대했다. 이에 대해 이황은 이기의 관계가 비록 밀접해서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사단은 이가 발함에 기가 따르는 것(理發氣隨之)이고 칠정은 기가 발함에 이가 타는 것(氣發理乘之)이라 해도, 사단은 그것이 유래하는 바가 마음 속에 있는 본연지성이요, 칠정은 그 유래하는 바가 기질지성이며, 또 사단은 기가 따르는 것이지만 주로 하여 말하는 것(所主而言)이 이에 있고 칠정은 그것이 기에 있기 때문에 각각을 '이지발'과 '기지발'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고 했다. 사단칠정 문제에 대한 이황의 이러한 견해는 이기호발설(理氣互發設)이라 불린다.
이기호발설에 대해 기대승과 그후의 이이(李珥 : 1536~84)는 사단과 칠정은 모두 기질지성 속에 갖추어 있는 이가 기를 타고 발한다는 점에서 그 유래하는 바가 같으며, 다만 발해서 순선한 것만을 가리켜 사단이라고 한다고 했다. 그들은 이황의 견해 가운데에서 기가 발함에 이가 타는 것만을 인정하고 그것으로 사단과 칠정이 유래하는 바를 모두 설명했으며, 칠정 이외에 따로 사단의 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칠정 가운데 사단이 포함되는 것이라고 했다. 기대승과 이이의 이러한 견해는 이기겸발설(理氣兼發設)로 불려진다. 1572년(선조 5)에 성혼(成渾 : 1535~98)은 사람의 마음을 형기(刑氣)의 사사로움에서 생기는 인심(人心)과 성명(性命)의 정리에 근원하는 도심(道心)으로 구분할 수 있듯이 성이 발한 정도 사단과 칠정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사단은 이에서 발한 것으로 칠정은 기에서 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견해를 제시하면서, 성혼과 이이 사이에 다시 사단칠정논쟁이 벌어졌다. 성혼의 이러한 견해에 대해 이이는 인심·도심의 구분과 사단칠정의 구분은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사단칠정을 각각 이기에 분속하는 이황과 성혼의 견해를 비판했다. 16세기 후반에 이루어진 호발설과 겸발설로 정리된 사단칠정의 이기론적 해석은 그후에도 우리나라 성리학의 중요한 이론적 탐구 대상으로 남아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었고, 성리학 이해에 깊이를 더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 가운데 이황의 호발설을 지지하는 견해를 주리론(主理論)이라 하고, 이이의 겸발설을 지지하는 견해를 주기론(主氣論)이라 하여, 우리나라 성리학의 양대 흐름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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