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

태진아, <옥경이>

국어의 시작과 끝 2007. 5. 9. 04:39
 

태진아- 옥경이


희미한 불빛 아래 마주 앉은 당신은

언젠가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인데

고향을 물어 보고 이름을 물어봐도

잃어버린 이야긴가 대답하지 않네요

바라보는 눈길이 젖어 있구나

너도 나도 모르게 흘러간 세월아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았는지

물어도 대답없이 고개 숙인 옥경이

바라보는 눈길이 젖어 있구나

너도 나도 모르게 흘러간 세월아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았는지

물어도 대답없이 고개 숙인 옥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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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경험을 하나 이야기해야겠다. 여러분은 어떤가? 특정한 노래를 생각하면, 연이어 특정한 장면이 떠오르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아, 맞아, 그 때, 걔가, 참 그 노래를, 잘 불렀지. 이 때 잘 불렀다는 말은 가창력이 남달리 뛰어났다든지, 대책 없이(?) 열창했다든지 하는 것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딱히 그런 것도 아닌데, 잊으려고 해도 잘 잊히지 않는 그런 장면 말이다.

 

내게는 태진아의 <옥경이>가 딱 그렇다. 뭐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다. 20년 전 쯤 되나? 시골 고향 마을 회관에서 설날을 맞아, 정말 조촐한 노래자랑 대회가 열렸다. 마침 군대에서 휴가 나온 형이 바로 이 노래를 불렀다. 원래 내성적이었던 형인데, 군대 가면 사람이 바뀌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뭔가 찡한 느낌을 들게 하며 부른 노래가 다름 아닌 옥경이이다.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태진아씨가 다분히 자신의 아내 이름을 염두에 두고 만든 이 노래를 왜 그 형은 그렇게 애착을 가지고 불렀을까?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도대체 이 노래의 어떤 부분이 휴가 나온 군대 머리 총각과 어울리는 것이었을까? 사실 좀 궁금했다. 별것을 두고 다 고민한다고 말하지 마시라. 누구에게나 먹고 사는 일과는 아무 관계없는 그래서 참으로 사소한 것이지만, 늘 머릿속을 맴도는 궁금증이 하나쯤은 있지 않은가? 물론 그래도 ‘나’는 아니라면, 그 뿐이다.

 

이국 멀리 떠나와서 향수병을 앓는 남정네와 그 반려자의 애틋한 정을 노래한 줄 알았다. 그런 생각이 근 10년을 이어졌다. 그러다가 아니구나, 그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번뜩 들게 한 시가 있다. 이용악의 <전라도 가시네>라는 시를 읽다가 정말 우연히 태진아의 <옥경이>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울 듯 울 듯 울지 않는 전라고 가시내야/두어 마디 너의 사투리로 때아닌 봄을 불러 줄게/손대 수줍은 분홍 댕기 휘 휘 날리며/잠깐 너의 나라로 돌아가거라”

 

<전라도 가시네>는 여기 저기 떠돌다가 주막집을 들른 사내와 고향을 떠나 술집에서 일하는 여인네의 유대감, 그러니까 유랑민의 서글픈 심사, 그 유대감을 노래한 절창이다. 시인 이용악은 이 시를 통해 식민지배하라는 서글픈 조국의 현실과 삶의 터전을 잃고 ‘뿌리 뽑힌 삶’을 살 수밖에 없는 민족의 비애를 노래하고 있다. <옥경이>의 설정이 바로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잘 살펴보면 이 노래는 군에 입대하여 타향살이를 하는 청년이 군부대 근처 술집에 들러 아가씨와 마주앉아 외로움을 달래는 내용의 노래이다.

 

'희미한 불빛 아래 마주 앉은 당신'이란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겠는가?  어디서 본 듯한 그 여인을 보고 젊은이는 고향을 물어보고, 여기에 오기까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를 묻는다. 물론 여인은 말이 없다. 고향을 물어도 얼른 답하지 않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벌써 ‘잃어버린 이야기’에 눈물 흘리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남의 사정도 안 봐주고 눈치없이 캐는 사내를 보고는 결국 눈시울이 젖고 만다.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이지만, 어찌 그것을 사내가 눈치 채지 못하겠는가? 자신도 어찌 보면 비슷한 처지인 것을.

 

물론 <옥경이>가 인기를 끈 것이 이런 속사정 때문이라고만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 민족의 삶은 역사의 질곡 때문에 참 많은 이동을 해야 했고, 그러 인해 많은 사람이 이러한 유이민(流移民)의 정서에 공감을 한다는 사실이다. 식민지 시대의 유이민은 좀 지난 이야기라 하더라도, 남북분단으로 인한 타향살이, 60-8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의 이촌향도(離村向都). 그리고 미국, 일본 등지로의 이민 등. 참 많지 않은가? 우리 민족의 8할은 아마도 유이민의 정서를 쉽게 공감할 수 있지 않나 싶다. 태진아는 바로 그 정서를 파고들었던 것. 바로 그것이 <옥경이>가 인기를 누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90년대 이후에는 사회가 안정되면서 유이민적 정서는 그 절실함을 많이 잃지 않았나 싶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 그것은, 강산에가 노래했듯 <라구요>의 영역, 그러니까 말로만 전해 듣게 되는 간접 체험의 영역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그것은 아버지 어머니의 세대에 속하는 일이 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어떤가? 우리 주변에는 좀 다른 차원에서의 유이민이 부쩍 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동남아나 연변에서 한반도로 큰 꿈을 안고,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이민을 오고 있는 사람들 말이다. 어쩌면 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노래가 곧 나오지 않을까 싶다.

 

 

< 그 형이 노래를 불렀던 마을 회관이 있는 마을 풍경 - 전남 진도군 임회면 봉상리>

 

아 참, 그런데, 옥경이를 잘 불렀던 그 형은 제대를 하고, 취직을 하고, 가정도 꾸렸을 텐데,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짠짜잔' 하며 <야간열차>로 박진도가 노랬했듯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상경하였을, 그는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하희정 wizbooks@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