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인 1979년 MBC 대학가요제는 제법 세련된 모양을 갖추게 된다. 예선 참여 인원만 1,500여명이었으니, 본선 참가곡의 수준도 만만치 않았다. 당시 대상 수상곡은 김학래, 임철우의 ‘내가’이다. ‘내가’의 대중적 인기에는 못 미쳤지만, 은상 수상곡 ‘영랑과 강진’의 김종률은 기억해야 할 인물이다. 바로 그가 80년대 학생 운동권에서는 애국가처럼 여겨졌던 ‘임을 위한 행진곡’의 작곡가이기 때문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제목처럼 행진곡풍이며, 언뜻 군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비장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은 근본적으로 진혼가(鎭魂歌)이기 때문이다. 광주항쟁 당시 항쟁 지도부 홍보부장이었던 윤상원 열사와 일생을 노동운동에 헌신했던 박기순 열사의 영혼결혼식에서 불린 노래가 바로 이 노래다. 원래는 백기완 시인의 시였는데, 소설가 황석영이 노랫말로 재구성한 것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에서 핵심을 이루는 노랫말은 다름 아닌 ‘임’이다. 너무나 익숙해 당연하게 생각하기 쉽지만, 1920년대 만해 한용의 시에서 절정에 이른 시어 ‘임’은 결코 범상한 것일 수 없다. 한용운의 시에서 ‘임’은 ‘부재하는 숭고(崇高)’를 의미하며, 이 노래에 있어서도 크게 보아 다르지 않다. 이 노래에서 ‘임’은 물론 ‘앞서서 나간 이’를 의미하며, 그것은 역사가 만들어낸 숭고이다. 따라서 이 노래는 민중의 일어섬을 선동하는 노래이기 이전에, 현대사가 만들어낸 숭고에 대한 헌시(獻詩)의 일종이다. 이 노래는 이처럼 80년대 광주민중항쟁을 배경으로 한 것인데, 근년에도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광주항쟁을 기리는 의식에서 불리었다면 특별한 화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청와대 앞마당에서 총선에서 승리한 여당 초선 의원들이 자축하는 의미로 이 노래가 불렸다. 참으로 시대가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이 땅의 민주주의가 ‘앞서서 나간 이’들의 피로 이룩된 것임을 확인하는 장면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인 문맥을 떠나서 온전히 노래의 시학 측면에서 볼 때, 꼭 그것이 긍정적인 의미만을 갖는 것은 아니다. ‘임’은 부재하는 숭고일 때 진정한 의미를 갖는 것이지, 현실 속의 그 무엇이 숭고를 대신하기는 힘들다는 점 때문이다. 역사에 몸을 던져 산화한 이들의 넋을 기리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과거를 미화하는 데 있지 않다. 스스로 이룬 성과에 대한 미화는 더더욱 아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에서는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한평생 싸우자던 뜨거운 맹세/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고 노래한다.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순결한 영혼이 느껴지는 노래임에 분명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386 초선 의원들은 청와대에서 이 노래를 부르며 무엇을 맹세했을까? 운동권의 지도부로서 숱하게 불렀을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무엇을 떠올렸을까? 혹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아닌, 살아남은 자의 기쁨을 노래한 것은 아닐까? 더러는 그런 이들도 없지 않았던 것 같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대통령이 보수세력과의 연정을 제의했을 때, 깃발을 들고 거부하는 함성이 그리 크게 들려오지 않았던 것이 그 한 증거가 아닐까? 〈하희정|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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