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은,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이 세상도 끝나고
날 위해 빛나던 모든 것도
그 빛을 잃어버려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 번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
잊지 못할 이별도 하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누군가와 같이 듣기에는 부담스럽지만, 혼자 듣게 되면 깊이 빠져들게 하는 노래가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런 노래에 앞서 흉금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 사이라 해도, 내보이기 어려운 영역의 감정이 있다. 우울증에 대해 깊이 아는 바 없지만, 그러한 감정 상태가 지속되면 우울증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닐까? 꼭 우울증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누구에게라도 어느 정도는 홀로 되새길 수밖에 없는 기억과 감정이 있을 성 싶다. 아마도 그것은 스스로가 들여다볼 수 있는 가장 깊은 영역의 감정의 바다 같은 것일 터이다. 감정의 심연(深淵). 그 어둡고 깊은 감정의 바다 말이다.
양희은이 처음 불렀고, 이은미와 김건모가 다시 부른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도 그런 범주에 속할 것이다.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라는 노랫말에서 알 수 있듯 첫사랑의 감정을 노래한 것이 아니다.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아니 알아 버린) 경험이 있고,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단계의 감정을 노래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사랑의 노래이지만 풋풋함이라든지, 설렘이라든지 하는 감정과는 전혀 다른 질감을 느끼게 한다. 좀 심하게 말하면 고목에서 푸른 잎이 되살아나는 것과 같은, 좀 온건하게 말하면 석부작의 풍란에서 꽃이 피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경험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누군가와의 열정적인 사랑이 끝나고, 식어버린 가슴에 다시 온기가 도는 사랑을 다시 시작할 때의 마음이란 참 착잡한 면이 있다. 사랑이라는 것이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하는 것이라야 행복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 사랑이 무엇인지 알아버린 연후에는 다시 사랑을 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사랑으로 인한 행복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를 아는 동시에, 사랑으로 인한 고통이 얼마나 쓰라린 것인가를 알아 버리면, 사랑은 참 어렵다. 착잡함의 감정이 그 어려움으로 말미암은 것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 노래 원곡의 제목이 <이젠 됐어요>(Ja Estadml)인 것도 우연은 아닌 듯싶다. 생각해 보건대 ‘됐다’라는 말에 얹어지는 감정의 무늬가 얼마나 복잡한가? 그 감정의 한 극단으로 가면 그것은 한량없는 만족과 더할 나위없는 만족이 놓여 있지만, 그 반대편에는 참으로 싸늘한 감정, 깊은 한숨 섞인 체념에 가까운 감정이 놓여있지 않은가? 다름 아닌 사랑의 감정이 그렇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물론 진행형의 사랑에서는 두 극단의 감정이 교차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없이 달아올랐다가 싸늘히 식어버린 사랑, 그 고체화한 사랑을 추회하는 입장에 서 본 사람이라면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그 감정을 명제화하고 있는 것이 이 노래이다. 사랑은 쓸쓸함이다, 라는 명제가 그것이다. 이 점에서 이 노래는 히식스가 부른 <초원의 빛>이라는 노래의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라는 노랫말과 본질적으로 전하는 메시지가 같다. 다시 생각해 보건대, 이 명제가 참이라면, 그것은 얼마나 깊고 또 두려운 것인가? 참으로 깊은 사랑을 하게 되면, 동시에 참으로 진한 고독의 감정을 갖게 될 것이라는 명제이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이 세상도 끝나고, 날 위해 빛나던 모든 것도, 그 빛을 잃어버려, 라는 대중가요에는 어울리지 않는 지나치게 무겁고 심각한 노랫말에도 공감하게 된다. 하지만 어쩌랴?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 번,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 잊지 못할 이별도 하는 것이 인간의 삶인 것을, 그러니 어쩌겠는가? 자신 앞에 주어진 사랑에 정성을 다하는 것 밖에는. 그 무서운 완료형의 사랑이 아닌 진행형의 사랑, 그 그늘 속에서 행복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하희정 wizbook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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