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

젓가락

국어의 시작과 끝 2015. 11. 3. 08:30

 

젓 가 락

                                                                                                  李 應 百

 우리는 젓가락을 쓰는 민족이다. 고정된 사지창(四枝槍)으로 목적물을 마치 작살로 물고기를 찍어 올리듯 찍어서 먹는 포크 민족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젓가락으로 큰 것은 큰 것대로 작은 것은 머리카락이나 겨자 씨까지도 가려서 집을 수 있다.

뉴욕에서 있던 일이다. 어느 가게에서 미국인이 라면을 시켜 왔는데, 포크가 아닌 젓가락을 곁들여 어찌할 줄을 모르고 쩔쩔매고 있었다. 그때 마침 가게로 들어서는 나를 보자, 구세주라도 만난 듯 이것으로 어떻게 먹느냐고 했다.

우리가 늘쌍 하듯 젓가락의 중턱보다 좀 아래쪽을 엄지와 검지로 잡고, 두 가락 사이에 장지(長指)를 넣어 검지와 장지로 바깥쪽의 젓가락을 자유 자재롭게 열었다 닫았다 하며 목적물을 집기도 옮겨놓기도 하는 동작의 시범을 해 보였다. 그러나 검지나 장지만을 움직이는 동작이 되지 않고, 모든 손가락이 동시에 펴졌다 오므라졌다 하니 젓가락질이 제대로 될 리 없다. 그래 한참 승강이를 벌이다가 결국 젓가락질에 채 익숙지 않은 우리네 애들이 하듯 젓가락 끝에 국수를 끼어 주먹으로 젓가락을 막쥐고 간신히 먹은 것이었다. 그들이 우리가 젓가락질을 유연하게 하는 것을 무척 신기롭고 감탄스런 눈으로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젓가락의 미세한 작동은 두뇌 발달에 직결이 되어 주판을 잘 놓고 암산도 잘 하며, 여자들은 수(繡)를 잘 놓는다. 우리가 기능올림픽에서 몇 번씩 연속 우승을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손이 북두갈고리 같은 그들은 손가락의 동작이 몹시 굼떠 나사를 조이거나 푸는 동작도 우리처럼 재빠르게 하지 못한다.

우리 내외는 해외 여행을 할 때마다 각국 각 고장에서 파는 자그마한 찻숟가락과 동전을 모으는 데 취미를 붙였다. 중동과 아프리카를 제외하고는 다 다닌 덕에 찻숟가락과 동전이 많이 모였다

아직 나무 함지를 쓰던 시절에 구입해서 서슬이 채 닳기도 전에 쩍 갈라진 금이 갈수록 벌어져 그릇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런 것을 전문으로 고치는 데다 맡겨 감쪽같이 복원시켰다. 전체를 고루 물에 불려 틈이 자연스레 아물어졌을 때, 금 이쪽 저쪽에 통송곳으로 구멍을 뚫고 솔뿌리로 탄탄하게 꿰맨 것이 이리저리 무늬를 이루어 한결 운치까지 있게 된 것이다. 벽과 바닥에 이질감이 없이 잘 어울리도록 거의 검게 보일 정도로 짙은 다갈색 융단을 둥글게 오려 깔고 가운데다 각국의 동전을 소복이 그러 모아 올리고, 그 둘레에 해바라기 꽃잎처럼 찻숟가락을 크고 작고 길고 짧은 것을 엇갈아 가며 둥글게 돌려 늘어놓으니 마치 하나의 예술품과도 같이 되었다.

그 무렵 골동에 조예(造詣)가 깊은 친한 스님이 그것을 보고, 고려시대의 수저 한 벌을 갖다 주셨다. 검게 변한 놋수저는 길이가 지금 것의 거의 한 배 가웃이나 되는데, 숟가락 잎은 마치 연잎과도 같이 길둥글고 바닥이 움푹하게 패어 마치 지금의 화학 시약용 스푼과도 같이 생겼다. 저렇게 긴 수저로 거북상스러워 어떻게 음식을 먹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런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저승에서는 그보다도 더 길어 마치 긴 장죽(杖竹)과도 같은 수저를 쓴다고 한다. 그것으로 음식을 먹으려면 옆사람에게도 걸거침이 되기 쉬워 조심스럽고 부자유스럽기 짝이 없을 것이다. 지옥에 가 보니 각자 그것으로 되도록 많이 겅터듬어 먹으려고 아귀다툼에 쌈박질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혀를 끌끌 차고 이번에는 극락엘 가 보니, 그 긴 수저로 몹시도 정답고 평화스럽게 먹고 있지 않은가. 자세히 보니 서로 떠 먹여 주고 있더란다.

조선시대의 수저는 길이가 지금처럼 다루기에 알맞고, 숟가락 잎은 둥글고 펑퍼짐하게 생겼다. 그것은 그릇에 잘 어울리게 한 것이다. 놋주발이나 대접, 사기 밥그릇, 대접, 보시기, 종지 등의 속이 숟가락으로 음식을 떠먹기에 알맞게 둥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양식 스푼으로 죽을 떠 먹으려면 둥그스름하게 휘인 바닥에 뾰족한 끝으로 제대로 훑어 떠 먹을 수가 없는데, 우리의 숟가락은 밀착이 돼 부신 듯이 깨끗이 먹을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 그릇의 바닥이 서양 것처럼 직각으로 꺾이지 않은 까닭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우리의 상은 제상(祭床)을 제외하고는 판(板) 둘레에 최소 숟가락총 폭만큼의 운두가 둘려 있다. 그것은 첫째 그릇이 미끄러져 떨어지지 않게 함이요, 둘째는 거기에 걸쳐 놓은 수저를 신경 안 쓰고 집어 올려 쓸 수 있게 하려는 배려에서다. 얼마나 합리적인가.

둘레에 운두가 도두룩하게 둘리지 않고 막 끊긴 식탁은 그릇이 미끄러져 떨어지기가 일쑤고, 수저 굄을 따로 놓아야 수저를 편하게 집을 수 있다. 우리식 숟가락으로는 직각으로 꺾인 그릇 바닥의 음식을 고루 훑어 먹을 수 없는 불편은 우리의 둥글넓적한 전통을 단절시키고 서양식 모난 제도를 직수입한 데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현대인의 무딘 생각이 우리 조상들의 예지(叡智)에 얼마나 부끄러운 사실인가.

생활의 편리를 위해 공기 공해, 물 공해, 토질 공해, 식품 공해를 가져오는 총체적 자연 파괴 현상은 대립과 분석을 원리로 삼고 있는 서양식 과학의 소산이니, 자연과 인간의 일체화와 화협(和協)을 기조(基調)로 하는 동양 정신이야말로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길이라겠다.

기계에 의지해 크나큰 재해를 무릅쓰는 것보다 인류의 지혜를 평화롭게 여는 젓가락 문명은 달 속의 계수나무와 토끼, 떡방아의 낭만을 꿈으로 인간다운 인간 사회를 회복시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