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알아야할 수필 개념
1. 소재의 다양성과 함축성
- 수필 문학은 그 소재가 대단히 광범위함. 수필은 글쓴이가 인생이나 사회, 역사, 자연 등 이 세계의 모든 것에 대해 느낀 것, 생각한 것을 서술하는 것. 그것은 일반인이 흔히 경험하는 것일 수도 있고, 일반인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특이한 것일 수도 있음.
1.1 생활 주변(=일상생활)의 소재 :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사물, 사건 등을 수필의 제재로 삼는 것. 소재의 기능과 효과를 묻는 문제가 주로 출제됨.
예) 건넌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두 녀석이 공부를 하는 것 같았다. 둘 다 스물한두 살씩의 왕성한 식욕들이다. 조금 있으니까 큰녀석이 나오더니 “아버지 왜 안주무세요?” 했다. 내가 무슨 걱정이라도 있어서 못 자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나는 차마 바른대로 말할 수가 없어서 “어째 잠이 안 온다.” 하고 말았다. 그러자 큰 녀석이 “지금 라면 끓이려고 하는데 아버지도 드시겠어요?” 하고 물었다. 나도 모르게 “그거 좋지.” 했다. -정진권, <밤참기>
1.2 비일상적인 소재 : 현대인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수필의 소재. 독자의 호기심을 이끌어낼 수 있고, 현대의 삶에 깨우침을 주는 소재인 경우가 많음.
예) '딸깍발이'란 것은 '남산(南山)골 샌님'의 별명이다. 왜 그런 별호(別號)가 생겼는가 하면, 남산골샌님은 지나 마르나 나막신을 신고 다녔으며, 마른 날은 나막신 굽이 굳은 땅에 부딪쳐서 딸깍딸깍 소리가 유난하였기 때문이다. 요새 청년들은 아마 그런 광경을 못 구경하였을 것이니, 좀 상상하기에 곤란할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일제시대에 일인들이 '게다'를 끌고 콘크리트 길바닥을 걸어 다니던 꼴을 기억하고 있다면, '딸깍발이'라는 명칭이 붙게 된 까닭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희승, <딸각발이>-
1.3 극한적인 체험 : 비극적인 운명과 같은 극한적인 체험을 내용으로 하는 수필의 소재. 절망적인 체험으로부터 얻은 깨달음을 내용으로 하는 경우가 많음.
예)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것을 "천붕(天崩)"이라고 한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뜻이다. 나는 아버지의 상(喪)을 당하고서야 비로소 이 표현이 옳음을 알았다. 그러나 오늘, 의사(醫師)의 선고(宣告)를 듣고, 천 길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지는 슬픔을 주체할 수 없으니, 이는 천붕보다 더 한 것이다. 6·25 때 두 아이를 잃은 일이 있다. 자식의 어버이 생각하는 마음이 어버지의 자식 생각하는 마음에 까마득히 못 미침을 이제 세 번째 체험한다.-유달영, <슬픔에 관하여>
1.4. 예술 작품에 대한 감상과 사색 : 문학작품, 미술작품, 민요 등 예술 작품에 대한 감상을 주 내용으로 하는 수필의 소재. 작품을 중심으로 한 경우와 작가와 관련시킨 경우로 나뉠 수 있음. 작품 자체에 대한 감상보다는 그와 연관된 생활인으로서의 성찰이 주 내용을 이루는 경우가 많음.
예) 조선조 최고의 여성 시문학을 일구어냈던 천재적인 예술가였건만, 궁벽한 변산반도에서 서른일곱 여자 나이로 죽어갔던 그녀도 가슴에 한을 품고 갔을 터이다. 여자에 관한 한 칠흑같이 어둡던 봉건의 시대에, 더구나 그녀는 사내들이 한사코 지분(脂粉) 냄새 더듬으려 들었던 기생의 몸. 그 나이 스물에 매창은 한 남자를 사랑했다. 촌은(村隱) 유희경. 도골선풍(道骨仙風)의 그와 시로 화답하던 밤. 그녀는 머리를 풀어 큰절을 올린다. -김병종, <화첩기행>
1.5 전통적 소재 : 고전시가, 전통 회화 등에서 자주 다뤄진 대상을 수필의 소재로 한 경우. 소재의 기품, 상징, 선인들의 삶의 태도, 현대인에게 주는 가르침 등을 내용으로 하는 경우가 많음.
예) 가령 우리가 혹은 눈 가운데 완전히 동화된 매화를 보고, 혹은 찬달 아래 처연히 조응된 매화를 보게 될 때, 우리는 과연 매화가 사군자의 필두로 꼽히는 이유를 잘 알 수 있겠지만, 적설과 하늘을 대비적 배경으로 삼은 다음에라야만 고요히 피는 이 꽃의 한없이 장엄하고 숭고한 기세에는, 친화한 동감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굴복감을 우리는 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매화는 확실히 춘풍의 태탕한 계절에 난만히 피는 농염한 백화와는 달라, 현세적인, 향락적인 꽃이 아님은 물론이요, 이 꽃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가장 초고하고 견개한 꽃이 아니면 안 될 것이다. -김진섭, <매화찬>
1.6 일화(逸話) :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아니한 흥미 있는 이야기. 역사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사실을 다룬 것은 일화라고 하지 않음. 역사적 인물의 숨겨진 이야기나, 널리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일화라고 함.
예) 추사 글씨 이야기를 하다보니 재미난 사건 하나가 생각난다. 진陳 군은 추사글씨에 대한 감식안이 높을 뿐 아니라 일반 서화, 고동古董에는 대가로 자처하는 친구다. 그의 사랑에는 갖은 서화를 수없이 진열하고 “차라리 밥을 한 끼 굶었지 명서화名書畵를 안 보고 어찌 사느냐” 하는 친구다. -김용준, <추사글씨>
2. 글쓴이의 태도와 교훈
- 수필에는 글쓴이의 대상(=소재)에 대한 태도가 드러나 있을 뿐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가 드러나는 것이 보통임. 경우에 따라서는 현대인에게 깨우침을 주려는 교훈을 주 내용으로 하는 경우도 있음.
2.1 물질 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적 태도
- 물질에 대한 탐욕, 사치스러운 풍조, 소유에 대한 집착 등 현대 문명의 병폐에 대한 비판적 자세를 보여주는 수필.
예)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흔히 자랑거리로 되어 있지만, 그만큼 많이 얽히어 있다는 측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법정, <무소유>
2.2 비인간적인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적 태도
- 비정한 현대 사회, 인간성 상실, 비인간적인 태도, 인정이 메말라 가는 사회 등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보여주는 수필.
부모는 간호부더러 시체실을 가르쳐 달라고 청하였다. “시체실은 쇠 다 채우고 아무도 없으니까, 가보실 필요가 없어요.”하고 간호부는 톡 쏘아 말하였다. 퍽 싫증난 듯한 목소리였다. “아니, 그 애를 혼자 두고 방에 쇠를 채워요?” 하고 묻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떨리었다. “죽은 애 혼자 두면 어때요?” 하고 다시 톡 쏘는 간호부의 목소리는 얼음같이 싸늘하였다. -주요섭, <미운 간호부>
2.3 예찬적 태도
-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예찬, 숭고한 사랑에 대한 예찬, 대상의 품격에 대한 예찬적 태도를 보여주는 수필.
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산을 바라보라. 어린애의 웃음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5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우리가 비록 빈한하여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때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 바, 기대하는 바가 없다 할지라도,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에라도 모든 것을 가져올 듯하지 아니한가. -이양하, <신록예찬>
2.4 회고적 태도
- 유년 시절에 대한 추억, 과거에 대한 그리움, 선조들의 삶에 대한 흠모 등을 보여주는 수필.
예) 나는 지금도 설날이 되면, 어머니 옆에서 설빔이 되기를 기다리던 초조한 기쁨, 엿을 고고 강정을 만들고 수정과를 담그고 흰떡을 치던 모습, 빈대떡 부치던 냄새, 이런 흐뭇한 기억이 되살아나 향수(鄕愁)에 잠긴다. 우리 어머니들은 설빔 하나 만드는 데도, 설 상 하나 차리는데도 이처럼 수많은 절차를 거치고, 알뜰한 정성과 사랑을 쏟고 가족을 돌보고 이웃을 대접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들은 어떤가?-전숙희, <설>
2.5. 풍자적 태도
- 세태에 대한 풍자, 대상에 대한 해학, 인물에 대한 해학의 태도를 보여주는 수필
예) 어려서 시골서 어느 상가(喪家)에 갔더니, 상주가 '스틱'을 양손에 맞쥐고 서서 소위'곡'을 하는데, 그 '아이고, 아이고' 소리가 울음이 아니라 단조로운 '베이스'의 유장한 '노래'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사람들에게 조상을 받으며, 한편으로 부의금 수입 상황을 집사자에게 물어 보며, 또 가인(家人)들에게 잔일 기타 무엇을 지휘하며,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나면 또 '아이고, 아이고', 끝날 줄 모르는 경음악이다. 내가 그것이 하도 우스워서 그야말로 나도 모르게, 만당(滿堂)의 조객이 모두 침통한 얼굴로 묵묵히 앉아 있는 중에, 돌연히 '하하하하'―한자로 번역하자면 '가가대소'를 그대로 발한 것이다. 그래 동리 늙은이에게 단단히 꾸중을 듣고 자리를 쫓겨나와 뒷산에 올라 또 한바탕 남은 웃음을 실컷 웃은 기억이 있다.-양주동, <웃음설>
3. 수필의 서술 방법과 종류
3.1 교훈적 수필 : 글쓴이의 체험이나 깊은 사색을 바탕으로 하는 교훈적인 내용을 담은 수필. 그 내용이나 문체가 다 같이 중후한 것이 보통이며, 글쓴이의 인생관이라고 할 수 있는 세계관과 삶의 태도 등이 강하게 드러나는 것이 특징. 중수필로 분류될 수도 있음.
<예>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마라 하였으나, 대개는 속 마음이 외모에 나타나는 것이다. 아무도 쥐를 보고 후덕스럽다고 생각은 아니할 것이요, 할미새를 보고 진중하다고 생각지 아니할 것이요, 돼지를 소담한 친구라고는 아니할 것이다. (중략) 그런데 소는 어떠한가. 그는 못 믿음성도 없고, 여우의 간교함, 사자의 교만함, 호랑의 엉큼스럼, 곰의 우직하기는 하지만 무지한 것, 코끼리의 추하고 능글능글함, 기린의 외입쟁이 같음, 하마의 못 생기고 몸 잘 못 거둠, 이런 것이 다 없고, 어디로 보더라도 덕성스럽고 복스럽다. -이광수, <우덕송(牛德頌>-
→ 소(牛)의 덕성을 찬양하면서, 그것을 우리 인간들이 본받을 것을 권장하고 있음’
2. 극적인 수필 : 글쓴이나 다른 사람이 체험한 어떤 사건을 생각나는 대로 서술하되, 그 사건의 내용 자체에 극적인 요소들이 있어서, 대화나 작품의 내용 전개가 다분히 희곡적으로 이루어지는 수필.
<예> 내 구두 소리가 또그닥또그닥, 좀더 재어지자 이에 호응하여 또각또각, 굽 높은 뒤축이 어쩔 바를 모르고 걸음과 싸우며 유난히도 몸을 일어 내는 그 분주함이란, 있는 마력(馬力)은 다 내 보는 동작에 틀림없었다. 그리하여, 한참 석양 놀이 내려퍼지기 시작하는 인적 드문 포도 위에서 또그닥또그닥, 또각또각 하는 이 두 음향의 속 모르는 싸움은 자못 그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나는 이 여자의 뒤를 거의 다 따랐던 것이다. 2,3보만 더 내어디디면 앞으로 나서게 될 그럴 계제였다. 그러나, 이 여자 역시 힘을 다하는 걸음이었다.-계용묵(桂鎔黙)의 <구두>-
→ : 자신의 구두 발자국 소리가 기이했던 탓으로, 어떤 낯모르는 여인에게 자칫 불량배로 오해받을 뻔한 수모를 당한 체험담을 극적인 구성으로 보여줌.
3. 서정적 수필 : 일상생활이나 자연에서 느끼고 있는 감상을 솔직하게 주정적, 주관적으로 표현하는 수필.
예) 봄이 오면 무겁고 둔한 옷을 벗어버리는 것만해도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주름살 잡힌 얼굴이 따스한 햇볕 속에서 미소를 띠고 하늘을 바라다보면 곧 날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봄이 올 때면 젊음이 다시 오는 것 같다.- 피천득의 <봄>
→ 봄이 가져다 주는 기쁨과 서정을 참신한 표현을 통해 이야기 하고 있음.
4. 서사적 수필 : 인간, 사회, 세계의 어떤 사실에 대하여 대체로 글쓴이의 주관을 개입시키지 않고,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수필.
예) 겸이포리 중화군 해압면 흥문리-나의 목적지-까지는 20리이었다. 그래서, 나는 겸이포에서 아침을 먹기로 하였다. 음식점을 찾는 동안에, 나는 소위 ‘금줄’을 거기서도 발견하였다. 뒤에 물으니, 황평도에서는 아이를 낳은 뒤 첫 7일간에는 이 금줄을 쳐 둔다고 하였다. 명칭은 역시 ‘송침’이라고 하나, 보통 때에는 문간에 솔가지를 매달아 두는 것이 이 지방의 특색이다.- 손진태의 <토속 연구 기행기>
→ 제목 그대로 각 지방 특유의 풍속을 연구하기 위한 여행의 기록인데, 전형적인 서사적 수필이라 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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