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

백영숙(白永叔)을 기린협(基麟峽)으로 보내며-박제가(朴齊家)

국어의 시작과 끝 2015. 8. 1. 02:08


                                                                                                                                              

  천하에서 가장 지극한 우정은 궁할 때의 사귐이라 하고, 벗의 도리에 대한 지극한 말로는 가난을 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아! 청운(靑雲)의 선비가 혹 굽히어 초가집에 수레타고 찾아오기도 하고, 포의의 선비가 혹 권세가의 붉은 대문에 소맷자락을 끌기도 하니, 어이하여 서로 간절히 구하는데도 서로 마음 맞기가 이다지 어렵단 말인가?

  대저 이른바 벗이란 것은 반드시 술잔을 머금고 은근히 대접하여 손을 잡고 무릎을 맞대는 것만은 아니다.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지 않는 것과,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절로 말하게 되는 것, 이 두 가지에서 그 사귐의 깊고 얕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대저 사람은 인색하지 않음이 없어 아끼는 것에 재물보다 심한 것이 없고, 또한 추구하는 것이 없을 수 없으매 혐오하는 바가 재물보다 심한 것이 없는데도, 그 아껴 혐오하지 않음만을 논하니 하물며 다른 것에 있어서이겠는가!《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마침내 구차하고 가난한데도 내 어려움을 알아주는 이 없네."라고 하였다. 대저 내가 어렵게 여기는 바에 대해 남들은 반드시 털끝 하나도 움직이지 않는 까닭에 천하의 은혜와 원망이 이로부터 일어나게 된다.

  저 가난함을 감추고서 말하지 않는 사람인들 어찌 남에게 구할 것이 전혀 없기야 하겠는가? 그러나 문을 나서 억지로 웃으면서 좋게 말을 해보지만 능히 오늘 밥을 먹었는지 죽을 먹었는지를 하나하나 들어 말할 수야 있겠는가? 평생의 일을 두루 말하면서도 오히려 감히 지척에 있는 빗장의 자물쇠에 대해 묻지 못하는 것은, 기미를 살피는 사이에 지극히 말하기 어려운 것이 있는 까닭이다. 반드시 어쩔 수 없게 되면 대략 이를 시도하여 잘 이끌어 나가다가 그 요점을 말했는데도 막연히 상대방의 눈썹 사이에서 반응이 없게 되면, 앞서 이른바 말을 하려 하다가도 말하지 않는 것이 되고 마니, 이제 비록 이를 말했어도 그 실지로는 말하지 않은 것과 같은 셈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재물이 많은 사람은 남이 요구할까 근심하여 먼저 그 없는 것을 일컬어 남의 바램을 끊어 버리는 까닭에 말을 꺼내지도 못하는 바가 있게 된다. 그렇다면 이른바 술잔을 머금고서 은근히 대접하여 손을 맞잡고 무릎을 맞대던 자도 모두 그 서글피 머뭇거림을 이기지 못한 채 구슬프게 낙심하여 돌아가지 않는 자가 드물 것이다. 나는 이에 있어 가난을 논의함이 쉬 얻을 수 없으며, 앞서의 말이 대개 격동됨이 있어 그렇게 말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대저 곤궁할 때의 사귐을 지극한 벗이라 함이 어찌 자질구레하고 비루하다 하여 그런 것이겠는가? 또한 어찌 반드시 요행으로 얻을 수 있기에 말하는 것이겠는가? 처한 바가 같고 보니 자취를 돌아볼 것이 없고, 근심하는 바가 한가지인지라 그 어렵고 힘든 사정을 아는 것일 뿐이다. 손을 잡고 괴로움을 위로할 때엔 반드시 그 굶주리고 배부르며 춥고 따뜻한지를 먼저 묻고, 그 집안사람의 생산을 묻는다.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도 절로 말하게 되는 것은 진정으로 슬퍼함에 감격하여 그렇게 되는 것이다. 어찌하여 지난날에 지극히 말하기 어렵던 것이 지금은 입을 따라 곧장 거침없이 쏟아져 능히 막을 수 없게 된단 말인가? 때로는 문으로 들어가 길게 읍을 하고는 하루 종일 말없이 있으면서 베개를 찾아 한숨 자고서 떠나가도 오히려 다른 사람과 십년 이야기 한 것보다 더 낫지 않겠는가? 이는 다른 것이 아니다. 사귐에 있어 마음이 맞지 않으면 말을 하더라도 말하지 않은 것과 같고, 그 사귐에 간격이 없다면 비록 묵묵히 둘이 서로 말을 잊더라도 괜찮은 것이다. 옛말에 "머리가 흰데도 낯설고, 길에서 잠깐 만나 사귀었는데도 오랜 친구와 같다"고 한 것이 바로 이를 이름이 아니겠는가?

  내 친구 백영숙(白永叔)은 재기(才氣)를 자부하며 이 세상에서 노닌지 30년인데도 마침내 곤궁하여 세상과 만나지 못하였다. 이제 장차 그 양친(兩親)을 모시고 끼니를 해결하러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려 한다. 아아! 그 사귐은 곤궁함을 가지고서였고, 그 대화는 가난을 가지고서였으니, 나는 이를 몹시 슬퍼한다. 그러나 대저 내가 영숙(永叔)에게 있어 어찌 다만 곤궁한 때의 친구일 뿐이겠는가? 그 집에 반드시 이틀의 땔거리가 있지 않았는데도, 서로 만나면 오히려 능히 차고 있던 칼을 끌러 술집에 전당잡히고서 술을 마셨고, 술이 거나해지면 큰 소리로 노래하며 업신여겨 꾸짖고 장난치며 웃어버리니, 천지의 비환(悲歡)과 세태(世態)의 염량(炎凉), 마음 맞음의 달고 씀이 일찍이 그 가운데 있지 않음이 없었다.

  아아! 영숙(永叔)이 어찌 곤궁할 때의 벗이겠는가? 만약 그렇다면 어찌 그렇게 자주 나와 종유(從遊)해 마지않았더란 말인가? 영숙(永叔)은 진작부터 당시에 이름이 알려져, 사귐을 맺은 벗이 온 나라에 두루 퍼져 있었다. 위로는 정승(政丞)과 판서, 목사(牧使)와 관찰사(觀察使)에서, 그 다음으로 현달(顯達)한 사람과 이름난 선비들이 또한 이따금 서로 밀어 허락하였다. 그 친척과 마을 사람, 그리고 혼인으로 교의(交誼)를 맺은 이가 또 한둘이 아니었다. 대저 말 달리고 활 쏘며 칼로 치고 주먹을 뽐내는 부류와 서화(書畵)와 인장(印章), 바둑 장기, 거문고와 의술(醫術), 지리(地理), 방기(方技)의 무리로부터 저잣거리의 교두꾼과 농부, 어부, 백정, 장사치 등의 천한 사내에 이르기까지 하루도 길에서 만나 정을 나누지 않은 날이 없었다. 또 집으로 연신 찾아오는 사람도 접대하였다.

  영숙(永叔)은 또 능히 그 사람에 따라 얼굴빛을 달리하여 각기 그 환심을 얻었다. 또 산천의 노래하는 풍속과 이름난 물건, 옛 자취 및 관리의 다스림과 백성들의 고충, 군정(軍政)과 수리(水利)를 잘 말하였는데, 모두 그의 뛰어난 바였다. 이것으로 여러 수많은 사귀는 사람과 노닌다면 또한 어찌 뜻을 얻어 마음껏 질탕하게 따를 한 사람이 없겠는가? 그러나 홀로 때때로 내 집 문을 두드리는데, 물어보면 달리 갈 데가 없다는 것이다. 영숙(永叔)은 나보다 일곱 살 위인데, 나와 더불어 한 마을에 살던 것을 돌이켜 보면, 나는 그때 아직 동자(童子)였는데 이제는 이미 수염이 나 있다. 십년을 손꼽아 보는 사이에 모습의 성쇠(盛衰)가 이와 같건만, 우리 두 사람에게는 오히려 하루와 같으니, 그 사귐을 알 수 있을 따름이다.

  아아! 영숙(永叔)은 평생 의기(意氣)를 중하게 여겼다. 일찍이 손수 천금을 흩어 남을 도운 것이 여러 번이었으나, 마침내 곤궁하여 세상과 만나는 바가 없어, 사방에서 그 입에 풀칠함을 얻지 못하게 되었다. 비록 활을 잘 쏘아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그 뜻이 또 녹록하게 남을 따라 오르내리며 공명을 취하기를 즐기지 않았다. 이제 또 집안 식구들을 이끌고서 기린협(基麟峽) 가운데로 들어가는데, 내 듣기에 기린협(基麟峽)은 옛날 예맥(濊貊)의 땅으로 험준하기가 동해에서 으뜸이라고 한다. 그 땅 수백 리가 모두 큰 고개와 깊은 골짝으로 나뭇가지를 더위잡고서야 건너고, 그 백성은 화전을 일구고 너와를 얹어 집 짓고 사니, 사대부(士大夫)는 살지 않는다고 한다. 소식은 1년에 겨우 한차례나 서울에 이를 것이다. 낮에 나가면 오직 손가락 끝이 문드러진 나무꾼과 쑥대머리를 한 숯쟁이들이 서로 더불어 화로에 빙 둘러앉아 있을 뿐이리라. 밤이면 솔바람소리가 쏴아- 하며 일어나 집 둘레를 흔들며 지나가고, 궁한 산새와 슬픈 짐승들은 울부짖으며 그 소리에 응답할 것이다. 옷을 떨쳐 일어나 방황하며 사방을 둘러보면 눈물이 흘러 옷깃을 적시면서 구슬피 서울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아! 영숙(永叔)은 또 어찌 이런 일을 한단 말인가? 한 해가 저물어 싸라기눈이 흩뿌리면, 산이 깊어 여우와 토끼는 살쪄 있으리니, 활을 당기고 말을 달려 한 발에 이를 잡고 안장에 걸터앉아 웃으며, 또한 아웅다웅하던 뜻을 통쾌히 하여 적막한 바닷가임을 잊기에 충분할 것이 아닌가? 또 어찌 반드시 거취의 갈림길에 연연해하며 이별의 즈음에 근심할 것이랴? 또 어찌 반드시 서울 안에서 먹다 남긴 밥을 찾아다니다 다른 사람의 싸늘한 눈초리나 만나고, 남과 말 못할 처지에 있으면서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하는 형상을 짓는단 말인가? 영숙(永叔)이여! 떠날지어다. 나는 지난 날 곤궁 속에서 벗의 도리를 얻었었소. 비록 그러나 영숙(永叔)에게 있어 내가 어찌 다만 가난한 때의 사귐일 뿐이겠는가?

 

送白永叔基麟峽序

天下之至㕛曰窮交。友道之至言曰論貧。嗚呼。靑雲之士。或枉駕於蓬蓽。韋布之流。或曳裾于朱門。何其相求之深而相合之難也。夫所謂友者。非必含杯酒接殷勤。握手促膝而已也。所欲言而不言與不欲言而自言。斯二者其交之深淺可知已。夫人莫不有恡。故所私莫過於財。亦莫不有求。故所嫌莫甚於財。論其私而不嫌。而况於他乎。詩云終窶且貧。莫知我艱。夫我之所艱。人未必動其毫髮。故天下之恩怨。從此而起矣。彼諱貧而不言者。豈盡無求於人哉。然而出門強笑語。寧能數擧今日之飯與粥乎。歷陳平生。而猶不敢問其咫尺之扃鐍。則幾微之際而至難言者存焉耳。必不得已而略試之。善導而中其彀。漠然不應於眉睫之間。則向之所謂欲言而不言者。今雖言之。而其實與不言同故多財者患人之求則先稱其所無。斷人之望則故有所不發。則其所謂含杯酒接殷勤握手促膝者。擧不勝其悲凉躑躅。而不悵然失意而歸者幾稀矣。吾於是乎知論貧之爲不可易得。而向者之言。葢有激而云然也。夫窮交之所謂至友者。豈其瑣細鄙屑而然乎。亦豈必僥倖可得而言哉。所處同故無形迹之顧。所患同故識艱難之狀而已。握手勞苦。必先其飢飽寒煖。問訊其家人生産。不欲言而自言者。眞情之惻怛而感激之使然也。何昔之至難言者。今之信口直出。而沛然莫之能禦也。有時乎入門長揖。竟日無言。索枕一睡而去。不猶愈於他人十年之言乎。此無他。交之不合則言之而與不言同。其交之無間則雖默然兩相忘言可也。語云白頭而新。傾葢而故。其是之謂乎。吾友白君永叔負才氣。遊於世三十年。卒困無所遇。今將携其二親。就食深峽。嗟乎。其交也以窮。其言也以貧。余甚悲之。雖然夫吾之於永叔。豈特竆時之交而已哉。其家未必有並日之煙。而相逢猶能脫珮刀典酒而飮。酒酣嗚嗚然歌呼。嫚罵而嬉笑。天地之悲歡。世態之炎凉。契濶之甘酸。未嘗不在於中也。嗟乎永叔。豈竆交之人歟。何其數從我而不辭也。永叔早知名於時。結交遍國中。上之爲卿相牧伯。次之爲顯人名士。亦往往相推許。其親戚鄕黨婚姻之誼。又不一而足。而與夫馳馬習射擊劒拳勇之流。書畵印章博奕琹瑟醫師地理方技之倫。以至市井皁輿耕漁屠販之賤夫。莫不日逢於路而致歀焉。又踵門而至者相接也。永叔又能隨其人而顔色之。各得其歡心。又善言山川謠俗名物古蹟及吏治民隱軍政水利。皆其所長。以此而遊於諸所交之人之多。則亦豈無追呼得意淋漓跌蕩之一人。而獨時時叩余門。問之則無他往。永叔長余七歲。憶與余同閈而居也。余尙童子而今焉已鬚矣。屈指十年之間。容貌之盛衰若斯。而吾二人者猶一日也。卽其交可知已。嗟乎永叔。平生重意氣。嘗手散千金者數矣。而卒困無所遇。使不得糊其口於四方。雖善射而登第。其志又不肎碌碌浮沉取功名。今又絜家屬入基麟峽中。吾聞基麟古國。險阻甲東海。其地數百里。皆大嶺深谷。攀木杪以度。其民火粟而板屋。士大夫不居之。消息歲僅得一至于京。晝出則惟禿指之樵夫鬅髮之炭戶。相與圍爐而坐耳。夜則松風謖謖繞屋而磨軋。竆禽哀獸鳴號而響應。披衣起立。彷徨四顧。其有不泣下沾襟。悽然而念其京邑者乎。嗟乎永叔。又胡爲乎此哉。歲暮而霰雪零。山深而狐兎肥。彎弓躍馬。一發而獲之。據鞍而笑。亦足以快齷齪之志而忘寂寞之濱也歟。又何必屑屑於去就之分。而戚戚於離別之際也。又何必覔殘飯於京裏。逢他人之冷眼。從使人不言之地。而作欲言不言之狀也。永叔行矣。吾向者竆而得㕛道矣。雖然夫吾之於永叔。豈特竆時之交而已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