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

2013 서울시 9급 14번 문제의 문제점

국어의 시작과 끝 2013. 9. 13. 04:37

 

 

 

14. 다음에 대한 설명 중 옳은 것은? ③

 

2013 서울시 9급

 

 

紅牡丹(홍모단) 白牡丹(모단) 丁紅牡丹(뎡홍모단)

 

紅芍藥(홍쟉약) 白芍藥(쟉약) 丁紅芍藥(뎡홍쟉약)

 

御柳玉梅(어류옥) 黃紫薔薇(황쟝미) 芷芝冬柏(지지동)

 

위 間發(간발)ㅅ 景(경) 긔 엇더니잇고.

 

葉(엽) 合竹桃花(합듁도화) 고온 두 분 合竹桃花(합듁도화) 고온 두 분

 

위 相映(샹영)ㅅ 景(경) 긔 엇더니잇고.

 

-본문의 고어 표기가 잘 안 됨.

 

① 삼국 시대에 출현한 장르로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이다.

 

② 고려 가요의 하나로, 유토피아적인 동경을 노래하였다.

 

③ 주로 사대부가 작가인 정형시로서, 조선 전기 이후 자취를 감추었다.

 

④ 조선 초기의 산문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이다.

 

⑤ 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로서, 고려 초기부터 발달하여 왔다.

 

 

 

 

 

* 사실 공무원 강의하기 전에 임용 국어를 강의하면서 경기체가에 대해서는 아주 상세한 내용을 정리해 본 적이 있는데, 이 문제를 풀기 적잖이 어려웠습니다. 비전공자들이 대부분인 수험생들의 고충이 이해가 갑니다.

 

제가 우선 문제 삼는 것은 경기체가가 정형시인가입니다. 제 견해보다는 사전의 풀이를 제시하는 것이 객관적일 것 같습니다. 정답이 ③이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됩니다.

 

 

 

 

 

 

 

경기체가는 각 작품에 따라 또는 시대에 따라 그 형식에 변화가 많다. (첨부 의견-정형시로 보기 어렵다는 말입니다)형식에 대해서는 조윤제 · 김태준 · 양주동 · 김사엽 · 이명구 · 정병욱 · 김창규 · 이종출 · 성호경 · 김문기 등에 의해 다양하게 설명되고 있다. 이들 여러 학설 중에서 조윤제 · 양주동 · 정병욱 · 이명구 · 김문기 등의 형식 논의가 주목되며, 동시에 연구사까지도 살필 수 있는 근간이 된다. 조윤제는 전절과 후절로 작품을 크게 나누고, 전절은 “3 · 3 · 4 3 · 3 · 4 3 · 3 · 4 위 2(4) 경기하여’로 구성되고, 후절은 “4 · 4위 2(4) 경기하여”로 구성되었음을 설명하고 있다. 양주동은 “3 · 3 · 4 3 · 3 · 4 4 · 4 · 4 · 4 위 3 · 3 · 4 (엽) 4 · 4 · 4위 3 · 3 · 4” 로 정리하여, 제3구를4 · 4 · 4로 굳히는 반면에, ‘경기하여’를 음수로 계산하는 특성을 보인다. 한편, 정병욱은 “3 · 3 · 4 3 · 3 · 4 4 · 4 · 4 3 · 3 · 4 4 · 4 · 4 · 4 3 · 3 · 4”로 정리하면서 ‘위(爲. 偉)’를 계산에서 빼고, 형태상의 특성으로, 음수율은 3음절과 4음절이며, 음보율은 일률적인 3음보에 4음보가 1회씩 끼어 있고, 구수율(句數律)은 6구체이며, 1연은 전절과 후절로 구분되고, 5~8연이 중첩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에 이명구는 정병욱이 음수에서 제거했던 ‘위’를 계산하여, “3 · 3 · 4 3 · 3 · 4 4 · 4 · 4 · 4 · 3 · 4 4 · 4 · 4 · 4 · 4 4 · 3 · 4”로 되어 있음을 정리하면서, 5~9장이 중첩되어 한편의 노래를 이룬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상의 학설이 음수율을 중심으로 그 기준형식을 살피고 있는 데에 비해, 김문기는 음보를 기본으로 그 율격을 파악하여 기본형식을 제시하고 있다. 즉, (이미지 삭제) 라고 제시하고, 각 장은 육행시 제1~3행은 3음보, 제4~6행은 4음보로 된 정형시라 주장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국어국문학 사전의 풀이입니다.

 

요약하면 경기체가가 정형시라는 주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유력한 학설은 아닙니다.

 

 

 

다음 조선 전기 이후 자취를 감추었다는 내용입니다. 다음 설명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독락팔곡: 조선 선조 때의 문인 권호문(權好文)이 지은 경기체가(景幾體歌). 현존하는 경기체가 가운데 가장 마지막 작품이다. 제목에는 8곡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7곡만이 문집인 《송암별집(松巖別集)》에 수록되어 있다. 1860년(철종 11)에 민규(閔圭)가 지었다는 <충효가(忠孝歌)> 1편이 더 알려져 있으나 이 작품은 경기체가가 이미 소멸된 지 3세기나 지난 뒤에 단지 그 양식을 흉내낸 작품에 불과하므로 문제삼을 것이 없다.

 

맞는 설명이라고 볼 수 있지만, 조금 애매합니다. 조선 중기가 더 맞지 않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