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의 시작과 끝(제2권) 원고의 일부입니다.
① ‘에’와 ‘에게’의 혼동
앞말이 유정(有情) 명사일 때는 ‘에게’를 쓰고, 앞말이 무정(無情) 명사일 때는 ‘에’를 쓴다. 유정 명사는 사람이나 동물처럼 감정이 있는 명사를 말하고, 무정 명사란 식물이나 기관․국가처럼 감정이 있을 수 없는 명사를 말한다.
㉠ 정부는 일본 시마네 현의 ‘독도의 날’ 선포에 대해 일본에게 강력히 항의하였다.
정부는 이 문제를 일본에게 강력히 항의했다.
국회는 교과서 왜곡에 대하여 일본에게 강력하게 항의하였다.
우리 정부에서는 러시아에게 상당액의 경제원조를 제공하기로 약속했다.
정부는 이번 기름 유출 사고를 해결하기 위하여 주변국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 관계 당국에게 공한(公翰)을 보내서 협조를 부탁했다.
우리 농민들은 한해(旱害) 대책을 정부 당국에게 요구한다.
㉢ 미현이는 날마다 화초에게 물을 준다.
㉣ 우리나라는 축구 결승전에서 중국에게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
㉤ 야구는 미국에게 이기고, 유도는 일본 선수에게 이겼다.
㉥ 아군의 수가 월등히 많아서 적에 쉽게 이겼다.
㉦ 재해 지역 선포를 대통령에 요청했다.
㉠, ㉡의 ‘에게’는 앞말이 다들 무정 명사이므로, 죄다 ‘에’로 고쳐야 한다. ㉢의 ‘에게’도 ‘화초’가 무정 명사이므로 ‘에’로 고쳐야 한다. ㉣ 역시 ‘중국’이 무정 명사이므로 ‘에게’를 ‘에’ 또는 ‘을’로 고쳐야 한다. ㉤은 결함투성이 문장이다. 우선 ㉣과 같은 이치로 ‘미국에게 이기고’는 ‘미국에 이기고’나 ‘미국을 이기고’로 고쳐야 한다. 그래도 이어지는 문장과 구조적으로 호응을 이루지 못한다. 따라서 ‘야구는 미국에 이기고, 유도는 일본에 이겼다.’ 정도로 고쳐야 한다. ㉥은 ‘적(敵)’이 유정 명사이므로 ‘에’를 ‘에게’로 고쳐야 한다. ㉦의 ‘에’도 ‘에게’로 고쳐야 하는데, 굳이 ‘에’를 쓰려면 ‘청와대에 요청했다’ 정도로 고칠 수도 있다.
② ‘을/를’과 ‘에’의 혼동
위에서 우리는 대격 조사 ‘을/를’과 처격 조사 ‘에’가 넘나드는 것을 봤다. 예를 들어 ‘중국에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을 ‘중국을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로 바꿔 써도 되고, 의미의 차이도 거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을/를’과 ‘에’의 넘다듦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 주의가 필요하다.
㉠ 정부는 국제 정세 변화를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 정부는 국제 정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 사회의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것을 모두 대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사회에 모두 대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 그는 눈의 구조를 착안하여 사진기를 발명하였다.
→ 그는 눈의 구조에 착안하여 사진기를 발명하였다.
그분이 이 재배법을 착안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경제성이 크다는 점에서였다.
→그분이 이 재배법에 착안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경제성이 크다는 점에서였다.
㉣ 국어 책에 보면 한글을 창제한 것은 세종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 국어 책에 쓰인 내용을 보면 한글을 창제한 것은 세종이라고 나온다.
㉤ 구약성서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이 백 살에 얻은 외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 구약성서 창세기에(또는 창세기를 보면) 아브라함이 백 살에 얻은 외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 미성년자에게 술과 담배를 파는 행위는 법에 위반하는 것이다.
→ 미성년자에게 술과 담배를 파는 행위는 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 ㉡의 ‘대처(對處)하다’는 ‘국제 정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다.’처럼 쓰이지, ‘~을/를 대처하다’의 구성으로는 쓰이지 않는다. ㉢의 ‘착안(着眼)하다’도 ‘~에 착안하다’나 ‘~음에 착안하다’처럼 쓰이지 ‘~을 착안하다’의 구성으로 쓰이지 않는다. ㉣은 외견상 ‘보다’가 타동사임을 간과하여 잘못 쓴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책을 보면’으로 고치면 된다. 그러나 실은 ‘책에 (쓰인 내용을) 보면~’이라고 할 것을 무리하게 생략한 결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도 비슷하다. ‘~를 보면’으로 고쳐야 하지만, ‘~창세기에 보면~’에서 ‘보면’을 없애기만 해도 자연스러운 문장이 된다. ㉥ ‘~에 위반되다’ 또는 ‘~을 위반하다’의 구성이 올바르다.
㉦ 그녀는 아이를 잃은 슬픔에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 그녀는 아이를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 그는 제 분에 못 이기고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 그는 제 분을 못 이기고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내기나 시합이냐, 감정이나 흥취냐]
‘이기다’는 타동사로서 대격 조사 ‘에/에게’, ‘을/를’을 선택적으로 취한다. 따라서 무턱대고 ‘이기다’ 앞에는 적격 조사 ‘을/를’이 와야 하며, ‘에/에게’만 오면 잘못이라고 간주하고 마는 것은 너무 단순하다.
‘이기다’가 ‘내기나 시합, 싸움 따위에서 재주나 힘을 겨루어 승부를 내다’의 뜻으로 쓰일 때는 대격 조사 ‘을/를’과 ‘에/에게’를 선택적으로 취할 수 있다. 그러나 ‘감정이나 욕망, 흥취 따위를 억누르다’ 또는 ‘고통이나 고난을 참고 견디어 내다’의 뜻으로 쓰일 때는 대격 조사 ‘을/를’만을 취한다. ‘유혹을 이기지 못하다’는 자연스럽지만, ‘유혹에 이기지 못하다’는 부자연스러운 이유다. ㉦, ㉧ 역시 ‘이기다’에 앞에 오는 말이 ‘슬픔’, ‘분(憤)’이기 때문에 ‘에/에게’를 쓰면 부자연스럽고, ‘을/를’을 써야 자연스럽다.
이와 관련한 설명에서 요령부득(要領不得)인 교재가 허다한데, 그것은 ‘을/를’을 목적격 조사라고 하는 것과 대격 조사라고 하는 것의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전자는 문장 성분과의 관계에 따라 격조사를 하위분류할 때의 한 범주이고, 후자는 형태를 중심으로 격조사를 하위분류할 때의 한 범주이다. 그 차이는 실로 적지 않다. 이론 문법의 영역이라면 몰라도, 이렇듯 문장의 오용과 관련해서는 학교 문법의 좁은 틀 안에서는 설명이 쉽지 않은 사례가 많다. 다음도 비슷하다.
㉨ 그녀의 새청 맞은 목소리가 다시금 귓전에 때리는 것 같았다.
→그녀의의 새청 맞은 목소리가 다시금 귓전을 때리는 것 같았다.
아직도 그녀의 생생한 목소리가 귓전에 울리는 듯하다.
→ 아직도 그녀의 생생한 목소리가 귓전을 울리는 듯하다.
어머니가 한 말이 아직도 귓전을 맴돌았다.
→어머니가 한 말이 아직도 귓전에 맴돌았다.
[조사 선택 제약]
㉨을 두고 ‘귓전’ 다음에 이어지는 동사가 타동사인지 자동사인지를 따지는 것은 문제 풀이의 초점을 잘못 맞춘 것이다. ‘귓전’은 자립 동사이지만, ‘귓전에 맴돌다’, ‘귓전에 아른거리다’, ‘귓전으로 듣다’, ‘귓전으로 흘리다’, ‘귓전을 때리다’, ‘귓전을 울리다’처럼 조사와의 결합이 어느 정도 제한적이다. 다른 조사가 오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관용적으로 특정 조사와 결합하는 특성이 있다. 의존 명사에는 이런 예가 많고, 자립 명사에는 많지는 않지만 더러 있다. 따라서 이런 경우의 조사 선택은 뒤에 오는 동사가 타동사냐 자동사냐의 차원을 넘어선다. 예컨대 ‘울리다’는 자동사도 있고, 타동사(사동사)도 있다. 자동사 ‘울리다’를 써서 ‘지금도 그의 목소리가 귀(귓전)에 울리는 듯하다.’와 같은 문장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관용적으로 ‘귀에 울리다/귓전을 울리다’로 쓴다.
[더 알아두기-자립 명사와 의존 명사의 조사 선택 제약]
① 자립 명사의 예
- 미증유(未曾有)의 파문을 일으켰다./불굴(不屈)의 의지로 싸웠다./재래(在來)의 습속일 뿐이다.[주로 ‘의’와 결합]
-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좁은 마당에 나와 공을 찼다./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마찬가지다./[주로 ‘로’ 또는 ‘이다’와 결합]
- 정은이는 물론이고, 정일이도 절로 걸음이 빨라졌다.[‘~은/는 ~이다’의 구성으로 쓰임]
- 잘난 체하는 꼴이 정말 가관이다. [주로 ‘이다’와 결합]
- 이번 선거에서는 당선될 가망이 있습니까?[주로 ‘이’나 ‘은’과 결합]
- 철롯둑에는 자갈돌이 무진장으로 깔려 있었다.[주로 ‘으로’와 결합]
② 의존 명사의 예
- 그런 행동이 자기가 옳다는 확신에서 나온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주어성]
- 가려던 터에 그가 먼저 찾아왔다./ 내일 갈 터이니 그리 알아라. [서술어성]
- 애써 태연한 척을 하다./ 동생은 내 말에 들은 척도 않는다. [목적어성]
- 난리 통에 뿔뿔이 헤어졌다./때는 장마 통이라 비는 주룩주룩 내렸건만…. [부사성]
㉩ 자전거를 타고 가다 육교를 만났다. 어쩔 수 없이 자전거를 메고 계단을 오르는 수밖에 없었다.
→ 자전거를 타고 가다 육교를 만났다. 어쩔 수 없이 자전거를 메고 계단에 오르는 수밖에 없었다.
[목적성과 이동성 문제]
㉥에서 조사의 선택은 매우 미묘하고 까다롭다. 우선 ‘을/를’은 ‘가다’, ‘걷다’, ‘뛰다’ 따위의 이동을 표시하는 동사와 어울려서 동작이 이루어지는 장소를 나타내는 조사로 쓰인다. ‘어제는 하루 종일 백화점을 돌아다녔다.’나 ‘병만족, 드디어 마다가스카르를 가다.’가 그런 예이다. 그런데 처격 조사 ‘에’와 그 쓰임이 다소 다르다. 대체로 ‘을/를’은 한 장소 내에서 이동할 때 쓰이고, ‘에’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할 때 쓰인다. 즉 ‘산을 오르는 것’은 산에 들어선 상태에서 위로 올라간다는 뜻이거나, 어떤 목적으로 산에 오른다는 뜻이다. 이와 달리 ‘산에 오르는 것’은 산이 아닌 곳에서 산에 오른다는 뜻이다. 즉 전자는 목적성이 강하고, 후자는 방향성이 강하다. 그래서 ‘에’는 이동성을 띤 서술어와 잘 어울린다. 이런 맥락에서 ‘병만족, 드디어 마다가스카르에 가다.’라고 하지 않고, ‘병만족, 드디어 마다가스카르를 가다.’라고 한 것은 ‘이동’이 아닌 ‘도전(≒목적)’의 의미를 강조한 어법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에’는 동작성이 없는 서술어와도 잘 어울린다. 그때 ‘에’는 처소의 의미를 갖는다. 예컨대 ‘산에 나무가 많다.’에서 ‘에’는 처소의 의미를 갖는다. 동작성을 강조하고자 한다면 ‘에’가 아닌 ‘에서’가 적절하다. 즉 ‘나는 동작구에 산다.’는 문장은 처소의 의미가 강하고, ‘나는 동작구에서 (수험생을 가르치며) 산다.’는 동작(=행위)의 의미가 강하다. 물론 ‘산에서 나무가 많다’는 문장은 성립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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