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국어어휘력

물색과 완벽

국어의 시작과 끝 2011. 10. 30. 10:22

뜻 모르고 쓰는 말: 物色과 完璧


흔히 쓰는 말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어처구니’란 무엇인가? 품사로 보면 ‘어처구니’는 명사이다. 무엇인가 꼭 있어야 할 것이 없음을 가리키는 말인듯 하다. 이 ‘어처구니’는 사실은 맷돌이 맞물리는 곳의 아래 쪽 튀어나온 부분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한다. 맷돌이란 위에 구멍이 뚫려 있고, 아래에는 튀어나온 부분이 있어 서로 맞물려 돌아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바로 아래 쪽에 튀어나온 부분을 어처구니라 하는데, 과연 어처구니가 없고 보면 맷돌은 맷돌로서의 아무런 구실도 할 수 없게 되고 만다. 그러니 어처구니가 없으면 되겠는가.

어처구니 뿐 아니라, ‘시치미를 뗀다’, ‘터무니가 없다’, ‘영문을 모른다’, ‘생트집을 잡는다’, ‘줏대가 없다’와 같은 경우도 다 그런 예들이다. 이들은 모두 과거 조상들의 생활과 연관된 일에서 비롯된 말들인데, 이제 그 본래 ‘故事’의 의미는 ‘枯死’해 버리고 成語로만 살아남은 것들이다.
故事成語란 문자 그대로 옛 일이 말을 이룬 것이다. 다시 말해 예전 실제로 있었던 어떤 일이 그 흥미나 교훈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다 보니, 아예 말로 굳어져 버린 것이다. 그런데 故事가 일단 成語가 되고 나면, 故事는 까맣게 잊혀지고 成語만 남게 된다. 이 글에서는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한자 말 가운데 그 본래 의미를 잘 모르고 사용하는 ‘物色’과 ‘完璧’이란 어휘에 대해 알아보자.

“좋은 신랑감 좀 物色해 봐!”

여기서 物色이란 무슨 말인가? 단순히 물건의 빛깔이란 뜻으로 쓰였다면 전혀 의미가 통하지 않는다. 物色이란 말은 본래 옛날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駟馬)에서 나온 말이다. 영화 벤허는 마지막에 네 마리 흰 말이 끄는 주인공의 전차와 검은 말이 끄는 상대의 전차가 숨막히는 승부를 다투는 장면이 압권이다. 그런데 벤허의 전차를 끄는 말이 전부 흰 말이 아니고, 세 마리는 희고 나머지 한 마리는 검다면 어떨까. 영 볼 성 사나울 것이다. 또 네 마리 말 중에 세 마리는 힘이 펄펄 넘치는 건장한 말인데, 한 마리는 로시탄테 처럼 비루먹은 말이라면 어떻게 될까. 수레는 그 한 마리 때문에 얼마 못가서 전복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수레 모는 자는 우선 ‘빛깔도 같고 힘도 비슷한’ 네 마리 말을 ‘物色’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때 빛깔이 같은 말을 ‘色馬’라 하고, 힘이 같은 말을 ‘物馬’라 한다. 우리가 뜻 모르고 쓰는 物色이란 말은 이렇듯 예전 수레에 매는 말을 고르던 일에서 오늘 날 ‘꼭 맞는 적절한 물건을 고른다’는 의미로 成語化한 것이다.


“빠지는 물건 없도록 준비가 完璧해야 해.”

完璧이란 말도 일상에서 흔히 쓰는 어휘이다. ‘璧’을 ‘壁’으로 잘못 쓰는 예도 많이 볼 수 있다. ‘벽이 완전하여 튼튼하다’는 뜻 쯤으로 생각하기 때문인 듯 하다. 이 때 ‘璧’이란 저 유명한 和氏璧을 말함이다. 楚나라 사람 和氏가 귀한 옥을 주어 왕에게 바쳤는데, 왕이 玉人에게 감정을 맡기니 돌이라고 했다. 화가 난 왕은 화씨의 왼 발 뒷꿈치를 잘랐다. 다음 왕이 즉위하자 화씨는 다시 옥을 바쳤으나 이번에는 오른 쪽 뒷꿈치를 마저 베었다. 그 다음 왕이 즉위하자 화씨는 楚山 아래에서 옥을 안고서 통곡하며 피눈물을 흘렸다. 연유를 들은 왕은 玉人에게 명하여 그 옥을 다듬게 하여 천하에 귀한 구슬을 얻었다. 이 화씨의 구슬은 그 후 여러 제후들이 탐내는 천하의 보배가 되었다.

이 구슬은 그 뒤 흘러 흘러 趙나라 왕의 수중에 들어 갔다. 당시 막강한 힘을 자랑하던 秦나라 昭王은 어떻게든 그 구슬을 자기 수중에 넣고 싶어서, 자기의 열 다섯 성과 맞바꾸자고 제안하였다. 난처해진 趙나라 왕은 이 문제를 朝議에 부쳤다. 藺相如(인상여)가 대답하였다. “지금 진나라가 성을 가지고 구슬을 요구하는데, 왕께서 윤허하지 않으시면 허물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구슬을 주었는데도 진나라가 성을 주지 않으면 잘못이 진나라에게 있습니다. 신은 원컨대 구슬을 받들고 가서 진나라가 성을 주지 않으면 신이 구슬을 온전히 하여 돌아오겠습니다.” 인상여의 말 끝에 ‘구슬을 온전히 하여’라는 대목, 즉 ‘完璧’이란 말이 나오는데, 완벽이란 여기에서 유래된 어휘이다. 마침내 화씨의 구슬을 품에 안고 진나라에 도착한 인상여는 처음부터 성을 줄 생각이 없었던 秦나라 昭王의 간계를 눈치 채고서, 秦王을 속여 趙나라로 화씨의 구슬을 온전히 보전하여 돌아왔던 것이다. 뒤에 이 구슬은 秦始皇의 손에 들어가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玉璽로 다듬어졌다.
-정민